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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8469246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1장
서울은
여름이 완전히 끝났다
석봉 토스트
이상한 계절
카카오톡
해체의 변
나를 지키는 방법
불꽃놀이 외 13편
-2장
11시 30분
엄마와 나
기타 레슨
데미안 라이스
나의 비밀스러운 공간들
잘 살고 싶은 마음 외 16편
-3장
이승열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매트리스
Bike
가난한 사람의 시간
심야식당
해고 통보 외 17편
-4장
발라드
약 먹을 시간
여기서 그대를 부르네
평양냉면
민주네
기묘한 밤
내 옆에 있는 사람 외 17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 후로 보름에 한 번꼴로 집에 잠깐 들러 엄마에게 얼굴을 비치고 돌아왔다. 아직 약간의 의무감 같은 게 남아 있을 무렵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한 달에 한 번에서 두 달에 한 번으로… 다시 석 달에 한 번에서 넉 달에 한 번으로… 이제는 명절이나 되어야 집에 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15년이다. 그렇게 인생의 절반을 가족과 떨어져 독립적으로 살았다. 이전의 15년은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졌다. 그 이후의 15년만이 뚜렷하다. 완벽하게 개별적이지만 언제나 이어져 있는 관계. 이것이 내 가족의 모습이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인생이 있고, 지나친 간섭과 개입은 서로 불편하게 할 뿐 아니라 악영향을 끼친다고 믿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가족사에서 늘 한두 발자국 떨어져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형은 내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느 날 형은 자신이 쓴 글을 나에게 보여줬다.
“나는 우리가 사랑이라는 미몽과도 같은 맹신하에 막연히 간과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조금 더 세심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가령 아버지가 요즘엔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생활의 변화는 없는지. 행여 작고 소박한 것이나마 기쁨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을 기다리거나 기대하고 바라는 일은 없는지. 친구건 이웃이건 혹시나 말을 붙이거나 허풍을 떨거나 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은 생겼는지. 엄마는 직장에서 몇 시에 휴식을 취하는지. 어느 시간이 좀 지루하다고 느끼며 오전에는 주로 뭘 하고 점심시간은 몇 시까지인지 일하다가 맘 상하는 일은 없는지. 십수 년간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내 엄마의 시간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화도 없이 한 주일이 흘러가고 한 달이 지나갈 때 그들은 손톱만 한 물고기를 키우고 자주 어항의 물을 간다. 소주를 마시며 시간을 버티고, TV를 보다 잠들며, 말없이 하루를 마감한다. 그들도 무언가 괜찮은 시간을 기다릴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저물어가는 서녘과도 같은 자기들의 인생을 대면하게 되겠지. ‘늙지 마세요.’ 말하지만 어떻게 늙지 않을 수 있는가. 유예된 시간은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나는 어딘가가 아리다. 그리고 부끄럽다. 나는 부끄러워서 마음이 바쁘다.”
나는 약간의 참담함을 느꼈다. 동시에 엄마가 계신 양로원을 갈 때마다 자신의 일요일을 빼앗긴다고 생각했던 뫼르소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