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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9282714
· 쪽수 : 112쪽
· 출판일 : 2024-10-15
책 소개
목차
005 시인의 말
____ 제1부
013 파송되다
014 붉은 벽돌 성당
015 생화
016 바닷가 소식
017 밥
019 버스 정거장 야채를 판다
020 푸른 공명
022 갈치장수의 노래
024 씨앗 단상
025 결동하다
026 위태하다
027 뿌리 근처
028 장사항
029 단단한 숲
030 갯벌
____ 제2부
033 천북
034 목리
035 황제처럼
036 덕소 가는 길
037 벌판서 안부 묻다
039 낡은 농구화 한 켤레가 놓여 있다
041 박 반장
043 잎차례
044 짠지 해서 밥 먹는다
045 인연생因緣生
046 구월에 부치는 편지
047 개복숭아
048 방아다리
049 마지막이라는 말
____ 제3부
053 가래여울
054 자전거 안장 위의 풍경
055 회항하다
056 불온하다
057 구월 편지
059 명일동 134번지
060 서울 소식
061 달팽이
062 근수
064 겨울나무
065 이엉
066 부재
067 귀족
____ 제4부
071 물오리 가족
072 내밀하다
073 뱅어포
074 꽃배롱
075 민들레 민 씨
076 재 넘어 거기
078 도둑 비둘기
079 등나무
080 낫 날, 사마귀
082 복사꽃 핀다
084 책장 정리하다
085 눈 내린 밤
086 동지 밤
087 곰팡이
089 터미널에서
090 좌판 앞에서
091 同伴하다
092 | 해설 |
사소한 것들이 이루는 ‘푸른 공명’, 그 단단한 숲 | 박진희
저자소개
책속에서
푸른 공명
서리를 밟고 대숲으로 들어간다
숲이 우려낸 공기가 아침햇살에 파랗게 번진다
두 뼘마다 박힌 마디, 고비마다 마디를 딛고 일어섰다
쓱싹쓱싹 한 움큼의 톱밥을 쏟으며 겨울 대를 썬다
금방이다, 한 생이 끝나는 건 금방이다
푸른 대, 시신을 끌고 산길을 내려온다
울퉁불퉁한 길의 요철이
형해形骸를 타고 올라 소리씨를 만든다
마디마다 생겨난 소리씨들이
마디 속을 통통 튕겨 소용돌이로 솟구친다
벽에 부딪쳐 다시 튕기는 탱탱한 소리 공,
막힌 마디를 넘은 소리가 대숲에 퍼진다
마디와 마디 사이의 막힌 일상 속에서
내 생각의 중심은 어디일까
톱날에 댄 마디처럼
막힌 흉중의 한가운데를 저 톱날에 썰어 볼까
싸락눈 내리는 한밤중, 대숲은 적막하다
싹둑 잘린 아픈 마디에 푸른 피가 흥건하다
땅 속, 뿌리 진동에 귀 기울일 적에
저 아래 죽순 움트는 소리가 올라온다
베어진 자리 옆이다
짠지 해서 밥 먹는다
점심을 혼자 먹는다
맹물 속, 그릇바닥 훤히 들여다보인다
마룻바닥에 퍼질러 짠지 해서 밥을 먹으면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살면서 너무 큰 것 바라지 않았는가
짠지 하나로 밥을 먹으면
짠지 해서도
온전하게 밥을 먹을 수도 있다는 것 알고 나면
한 수저에도 더 많이 얹으려 한 내가,
이것저것 더 많이 가지려 한 내가
내게 죄스러운 것이다
달랑 짠지 해서 밥을 먹으면
온몸 하나로 흰쌀밥 대적하는
맹물 속 짠지를 닮고도 싶은 것인데 실은,
살면서 안팎으로 온통 짜진 내게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딱, 그 중간에
긍정의 소금간을 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