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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를 위한 루바토

미지를 위한 루바토

김선오 (지은이)
  |  
아침달
2022-11-01
  |  
16,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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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를 위한 루바토

책 정보

· 제목 : 미지를 위한 루바토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9467708
· 쪽수 : 168쪽

책 소개

시집 <나이트 사커>, <세트장> 등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시인 김선오의 첫 산문집. 저자가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린 시적 단상을 담은 25편의 산문을 특별한 장정으로 엮었다.

목차

1부
사실 나는
부드러운 반복
시작하기 전에 시작되어 있는
영혼과 반영
미래로의 회귀
여름의 시퀀스
자막 없음
Nasa Live Stream - Earth From Space : Live Views from the ISS

2부
미지를 위한 루바토
생각, 연습
타인의 풍경
불과 녹
달걀과 닭
없는 개
토코와 나
메모들

3부
어떤 얼굴들
흉터 건축
전생에 대하여
누락된 꿈의 조각들
논바이너리적 시 쓰기
팬데믹
진짜와 진짜
죽음 연습
K에게

책속에서

시인이 별로 되고 싶지 않았다. 현대시에 매혹되어 닥치는 대로 시집을 집어 읽었던 고등학생 시절에도, 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처음으로 글자를 적어 내려갔던 순간에도 시인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시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문학소녀, 문학소년, 그런 말들은 특히 싫었다. 친구들에게도 내가 시를 쓴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야자 시간에는 공부를 하는 척하며 교과서에 실린 한용운과 백석의 시를 필사했다. 아름다워서 울 것 같았지만 비밀이었다.
―「사실 나는,」 부분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은 시는 없다. 쓰는 사람은 쓰는 순간 자신이 쓴 시의 독자가 되기 때문이다. 쓴 사람이 있다면 읽은 사람도 있는 셈이기에 독자 없는 시는 세상에 없다. 궤변처럼 들리겠지만 존재하지 않는 시만이 독자 없이 존재하는 특권을 누린다. 종이 위에 활자로 남겨지거나 입 밖으로 말해지기 전 누군가의 상상으로만, 혹은 착상으로만 존재하는 시의 상태. 그것을 시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러한 상태의 시가 쓰기나 말하기 혹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육체를 거쳐 세상에 나온 시보다 더 좋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쓰이지 않은 시에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조야한 아름다움과, 부드러운 새 살과, 무한한 가능성 자체가 내재하기 때문이다.
―「시작하기 전에 시작되어 있는」 부분


똑같은 루바토가 두 번 연주될 수는 없다는 점은 클래식 음악의 큰 매력이다. 아직 루바토를 완벽히 구현할 수 있는 기계는 없기에 인간만의 영역이라는 것도(이는 곧 감정을 완벽히 구현할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연주자에게 곡이 실체적으로 다가오는 순간, 그 곡이 가진 감정에 완벽히 감응하게 되는 순간, 루바토는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어떤 음의 시간을 빼앗아 어떤 음에게 주어야 하는지, 곡에 대한 몰입도가 높을수록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는 사실은 음악의 신비로움이다.
그리고 나는 오직 시의 초고를 쓸 때 루바토와 비슷한 감흥을 느낀다.
―「미지를 위한 루바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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