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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9805449
· 쪽수 : 138쪽
· 출판일 : 2023-04-30
책 소개
목차
1부 터골 들어가며
3 작가의 말
8 두릅 따기
9 가장 아름다운 꽃
10 고양리 고개 밭
11 곧은 길
12 길 아래 인삼밭
14 아쉬운 비
15 시큼한 열무김치
16 그때 농가 마당
17 올해 아로니아 꽃
18 논에 물이 차고
19 차가운 염하 바람
20 거스르는 염하
21 한밤 꿩 소리
22 대명리 어르신
24 아쉬운 아로니아
25 소나무 산 소쩍새
26 옛날 세 자매
28 산길 여우
30 형아를 기다리며
31 차가운 찬우물
32 삼포밭 원두막
33 앵두 네 그루
23 푸룬나무 묘목
35 아름다운 빛
36 고된 작업
37 그때 그 모습
38 장날 도구머리 고개
39 모자라는 고추 모종
40 목자궁 묘지 야생화
42 쇄암포 급물살
43 말 없는 보름달
44 흥건한 이슬
45 감자꽃 피어나지만
46 산비탈 빈 밭
47 피곤한 암소
48 마루 뒷문
49 마당에 감나무
50 빨래는 마르고
51 감자밭 김 매면서
52 달빛 담은 논
53 씻어주는 밤비
54 모 심은 논
2부 터골 고개 지나서
56 오월에 가신 분
57 동쪽 하늘 보면서
58 옹정리 새 도로
59 도구머리 고개 앉아
61 논둑 까치
62 밝은 반달
63 밤나무산 도깨비
65 터골 아주머니 텃밭
67 지게 길 칡넝쿨
68 달밤 고라니
69 유공자 어르신
71 할머니 묘소 다듬고
72 터골 산비둘기
73 아무 말 없이
74 터골 황소
75 살아 보아야
77 밭고랑 흙더미
78 옥수수 송이 뜯고
79 빈집 철거
81 한여름 저녁
82 절골천 흐르는 곳
83 절골 돌장승
85 농약 뿌리기
86 허물어진 농가
87 산바람 따라서
88 고달픈 대추나무
89 익지 않는 수박
91 어쩌다 벌레
92 어두운 밤길
93 농가 지붕 낙엽
95 안마당 잡초
96 질긴 열무김치
3부 터골 나가며
98 걱정스런 밤비
99 늬역재 고갯길
100 마을 쉼터 집
101 장대비 소리
102 집터에 감나무
103 이른 코스모스
104 그분의 어깨를 보면
106 매수리 마을 지나며
107 도수레 고개 묘지
108 고양리 실향민 묘지
109 그분들이 부르고
110 두 아이들
111 새벽 산비둘기
112 책을 말리고
113 흙탕물 염하
114 포구 흔적
115 한여름에 가시고
116 백중 공양
117 허물어지는 묘소
118 올해 벌초
119 가을 꽃잔디
120 강화도 개피떡
121 할머니 친정 소식
122 작품해설「고향 이야기는 마음치유의 명약이 된다」- 김성구
저자소개
책속에서
작품해설
고향 이야기는 마음 치유의 명약이 된다
김 성 구(시인, 문학평론가, 철학박사)
심재황 시인의 제5시집 『옹정리 터골 이야기』는 변해가는 고향의 이야기와 함께 변해가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낭만적으로 승화시켰다.
시인이며, 소설가로 잘 알려진 [유리알 유희]라는 작품으로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르만 헤세(Herrmann Hesse, 1877~1962)는 22세 때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한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발표하였다. 『낭만적인 노래』는 릴케의 인정을 받으면서 문단도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헤세가 감동적 작품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열정과 유년시절의 풍부한 경험들이었다고 한다.
헤르만 헤세가 그의 작품세계에서 내면의 변화를 주제로 그리면서 자기 탐구를 통해 삶의 근원적 힘을 깨달음으로 관조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고 자연과 인간을 순수하게 사랑하며, 삶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듯이, 심재황 시인은 인간적 내면의 잔잔함에 풍요로움이 시작되는 옹정리 터골을 거닐면서 유년의 뜨락에 피어있는 인생의 향연을 시문학으로 승화시켜나갔다.
경기옛길 강화길 제4길-한남정맥길 48번 김포대로로 따라가다가 통진두레문화센터를 지나 먹거리 가게에 들러 몇 가지 간식을 것을 사들고 가다보면 강화옛길로 산책하도록 만든 옹정리로 가는 계단으로 내려선다. 우측에는 논이 있고 좌측에는 터골천이 있다. 이곳이 심재황 시인의 유년의 뜨락이 펼쳐진 곳이다. 터골천을 따라 옹정리 들판을 한 바퀴 돌면서 통진읍 옹정리가 품고 있는 역사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통진(通津)은 한강하구에 위치하고 있던 작은 고을로 강화도를 건너는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오늘날 김포시의 북쪽 편에 위치한 지역으로 월곶면, 통진읍, 하성면 등을 포함한다.
이곳의 지명은 고구려 때에 평유압현(平唯押縣)이라 하였고, 757년 신라 경덕왕 때 분진현(分津縣)으로 바꾸고 장재군(長堤郡) 영현이 되었다. 고려 태조 때에 수주(樹州, 동시기에 장재군에서 개편됨)에 속한 통진현으로 바뀌었다.
통진은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 되며, 염전과 논이 반반이고, 주로 생산되는 농산물은 벼·조·기장·콩·팥·메밀이고, 토공(土貢)은 지초(芝草)이며, 약재(藥材)는 사자발쑥이다. 염전이 3곳이요, 어량(魚梁)이 2곳이다. 주로 숭어·참치·미네굴·쌀새우[白蝦]가 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縣) 북쪽 조강에서 황대구[黃大魚]가 나는데, 〈이 고기는〉 다른 곳에는 없으므로 선덕(宣德) 때에 명나라 사신이 황제의 명으로 와서 구해 갔다고 기록돼 있다.
현재 통진읍 옹정리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146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명종때 영의정 심연원의 신도비와 경기도 유형문화재 147호로 지정된 선조 때 세워진 청릉부원군 심강의 신도비가 있다.
태종실록 22권 기록을 보면 1411년 영락(永樂) 9년에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박신(朴信)이 임금께 아뢰었다.
"통진현(通津縣) 사람 전 내부 소윤(內府少尹) 이방선(李方善)은 사천(私賤)인데, 각기(脚氣)를 잘 고치어 사람이 그의 지은 약 한 냥쭝만 먹으면 곧 낫습니다." 이 보고를 받은 임금이 놀랍고 이상하게 여기어 곧 명하여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중종실록 26권, 중종 11년 10월 4일자 2번째 기사를 보면 “부사정(副司正) 김사귀(金士貴)가 통진현(通津縣)에서 백옥을 채굴(採堀)하여 올리니, 상을 주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통진지역은 남북분단 전까지 서울로 향하는 수로였기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였다.
선사시대의 유물로 알려진 고인돌 지석묘 3기가 고정리 뒤편의 구릉지에 있다. 고인돌사회의 문화와 축조 방법과 기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김포통진두레놀이는 1960년대에 옹정리에서 농번기 때 마을사람들이 행하던 두레풍속을 놀이화함으로써, 1998년 경기도무형문화재 제23호 놀이분야로 지정되었다.
이렇게 통진읍 옹정리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마을사람들이 오순도순 사랑을 나누며 함께 사는 아름다운 마을이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아가던 추억의 고향이 사라져버리고, 창고단지와 아파트도시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안타까움을 어찌할 수 없어, 심재황 시인이 남기는 시들을 통해 21세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서로가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두레놀이로 승화시켜가기 위해 옹정리가 보이는 오봉산에 올라갔다. 오봉산에 올라서서 옹정리를 바라보니 앞에는 터골이요, 뒤쪽에는 쇄암리요, 좌측으로 고양리요, 우측으로 석정리라, 무엇이 그리 바쁜지 쇄암리 강가에는 급물살이 흐른다. 해 뜨는 쪽으로 해란산과 천마산이 든든하게 서 있으며, 해 지는 서쪽으로 강화도가 보이는구나. 오봉산에서 하산하여 터골로 들어가 보자.
터골에 들어서니 마을사람들이 두릅 따고 있다. 심재황 시인도 두릅 한아름 따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며칠 전에 움트고 있었는데
두릅나무 막대기 끝마다
새순 봉오리들이 돋아나요
이제 새순이 퍼져나니까
하나하나 톡 톡 따내요
- 「두릅 따기」 중에서
심재황 시인은 두릅 순을 하나씩 따듯이 인생도 한발씩 앞으로 내딛는 삶의 원리들을 가슴에 담아둔다.
우리가 삶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사라져가는 고향 터전을 지키기 위해 아로니아 가꾸는 시인의 손길이 보고 있다.
두 달 전에 바싹 잘라 놓았는데
밑동에서 싹이 다시 삐져나오니
다시 잘라내야만 합니다
두 달 전에 어쩔 수 없이
굵은 낫으로 가지를 쳐내고
벌초기로 곁줄기도 솎았는데
오 년 전에 줄 맞추어 심었는데
이제 쓸모없는 작물이 되었으니
파내고 대체하는 게 마땅하지만
그래도 냇가 쪽으로 한 귀퉁이에
스무 그루 정도는 남겨두어요
지난 날 힘든 일은 잊어야 하는데
아로니아는 아쉬움을 남겨요
- 「아쉬운 아로니아」 전문
포근한 옛 정서는 사라지고, 공장과 아파트들이 들어선 땅에서 옛 정을 찾아보기란 어려운데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고향의 마음이 있었다. 심재황 시인이 농사짓기를 위해 경운기를 구입하던 중에 일어난 이야기에서 고향 어르신의 배려와 사랑과 깊은 정을 찾았다.
대명리 어르신의 자상하신 배려는
경운기 무게보다도 크게 느끼면서
경운기 소리보다도 크게 들립니다
- 「대명리 어르신」 중에서
해질녘 뒷산에서 울어대던 소쩍새 소리는 시인이 잠들기 전까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였다. 소쩍새는 올빼미과(科)의 여름철새이지만 일부는 텃새로 살면서 주로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夜行性)이므로, 밤에 '소쩍당 소쩍당', '소쩍 소쩍 솟솟쩍' 노래를 한다. 새털은 진한 잿빛에 누런 갈색 무늬가 있고, 머리에는 갈색 세로무늬가 있어서 올빼미와 비슷하게 생겼다. 옛날 시인들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옹정리에서 더 이상 소쩍새의 노래를 들을 수가 없다.
울타리 너머 소나무 산속에서
소쩍새 소리가 들려요
초저녁에 날아와서
한밤을 기다리다가 울고 갔어요
언제부터 소나무 산속에서
소쩍새 소리는 들리지 않아요
한밤에 달빛이 비쳐도
소쩍새 소리는 들리지 않아요.
- 「소나무 산 소쩍새」 중에서
심재황 시인의 발걸음은 도구머리 고개를 넘어 장터에 도착하고, 잊혀져가는 고향 땅에 시인의 마음을 담은 고추모종을 사다가 땀을 흘리며 심었으니 어느새 초록시심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지난달에 미리 예약해 두어서/ 고추 모종 200개를 가져왔어요// 밭고랑 길이가 20미터는 더 되고/ 같은 고랑을 여러 개 마련해 놓았으니/ 적어도 200개는 더 구해야 되겠어요.//
- 「모자라는 고추 모종」 중에서
고향의 그리움은 정을 나눈 사람들에게서 더욱 그러하다. 그분들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에 계실까. 심재황 시인이 고향 선산에 찾아가 보니 옛날 옹정마을 어르신들이 반갑게 봄꽃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된 묘소들은 봉분이 주저앉기도 하지만/ 앞에서부터 야생화들이 퍼져나가고 있어요/ 씀바귀 괭이밥 각시붓꽃 꿀풀/ 민들레 제비꽃 매발톱 할미꽃/ - 중략 -/ 어른들 가실 때마다 이곳에 모여서/ 슬프고 아쉬워도 위로하며 지냈어요/ -중략-/ 그 옛날 마을에서 보았던 초여름 야생화는/ 이곳 목자궁 묘지에서 피어나고 있어요//
- 「목자궁 묘지 야생화」 중에서
변해가는 고향산천은 점점 낯설어만 가고, 쇄암포 급물살은 변해가는 세월의 속도만큼 빠르게 흐르고 있다. 아마도 그 옛날의 추억과 흔적들도 저 물살이 쓸고 가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원모루 포구 지나던 물살은
쇄암포에 이르면 갑자기 좁아지고
한 옆으로 비틀어져 나가면서
산기슭 가파르게 깎아내 버리네
회오리 물살은 거침없이 역류하고
흠뻑 젖은 개펄에 광풍만 몰아치니
산새들 날아다닌 흔적도 없네
흐름 한가운데 버텨있는 강 섬에
바삭 바위 밑동아리는 깎이고 깎여서
모두 부서져 내리지는 않을지
바삭 바위 포구인 쇄암포 물속에는
검은 용이 무엇인가에 놀라서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는지
- 「쇄암포 급물살」 전문
유년의 추억이 사라져가는 고향땅을 거닐면서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말없이 비추는 고향산천을 바라보려니 유구무언일 뿐이다.
오늘 밤 무슨 말이 있겠나요
오늘 밤 무슨 생각이 있겠나요
무슨 말을 전할 수 있으려나요/
- 「말 없는 보름달」 중에서
「산비탈 빈 밭」을 바라보니 옛날에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농사를 지으시던 모습이 떠오르니 “그처럼 힘들게 가꾸시던 분들이 그립고” 그리울 뿐이다. 그리운 분들 중에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시인의 깊은 시심을 울려내고 있다.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진한 여물 냄새로 진동한다.
할머니가 삶고 있는 여물은
아직 진한 냄새만 건네져요
- 「피곤한 암소」 중에서
할아버지에 관한 추억은 감나무 묘목을 심으시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후손들에게 무엇인가 남겨주시고 싶으신 그 마음이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렸다. 할아버지께서는 마송 장날에 감나무를 사오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번에 감나무 묘목을/ 마당 여기저기에 심어 놓으면/ 나중에라도 손자들이 바라보겠지/ 올라가지는 말고 따먹어야 되는데//
- 「마당에 감나무」 중에서
시인의 그리움은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더욱 사무친다. 아버지는 하실 말씀을 못하시고 잔만 비우시는데 아버지의 빈 잔을 채워드리던 그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계시다가/ 막걸리를 한 모금 드시고/ 한동안 아무 말도 안하시고/ 다시 막걸리 잔을 비우셨어요// 저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버지 빈 잔을 채워 드렸어요// 아버지는 막걸리 드시고 주무셨어요//
- 「아무 말 없이」 중에서
손가락이 다 망가지도록 밭일을 하시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감자밭에도, 꽃잔디가 피어 있는 산소 앞에도, 늙은 감나무에 매어 놓은 빨랫줄에도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심재황 시인의 가슴에 피어나는 그리움은 꽃잔디가 되어 한아름 피었다.
손가락은 이미 물집이 잡혔고/ 다음 달 초에 햇감자 캐면/ 저녁에 가마솥에 삶아서는/ 작은아들 원섭이 한테 먹이고/ 큰딸 미섭이에게도 먹여야지//
- 「감자밭 김매면서」 중에서
가벼워진 빨래는 바람에 살랑거리고/ 엄마는 빨래 넘어 샛길을 바라보아요// 원이가 올 때가 지났는데/ 빨래가 마르기 전에는 올 텐데//
- 「빨래는 마르고」 - 중에서
빨간 꽃잔디가 피어나기 시작해요// 봄에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랍니다// 어머니 잠든 곳에 피어나니까요//
- 「가장 아름다운 꽃」 중에서
터골 고개 지나면 옹정리 입구 삼거리에 새 도로가 포장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스듬히 휘어진 길이었는데 이제는 반듯하게 고쳐서 자동차들이 직진으로 달려간다. 퇴근하는 저녁때가 되면 늦은 시간까지도 차들은 빵빵 소리를 내면서 바쁘게 달려간다. 큰길은 포장되고 직선으로 뚫려 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지만 옹정리 터골의 시계는 멈춰선지 오래다. 밤나무 산에는 도깨비가 아직도 살고 있는지 물어보지도 못했고, 터골 아주머니의 텃밭은 하늘과 땅과 바람이 경작하기 시작한지도 꽤나 오래된 듯하다.
한밤에 가로등은 없어도/ 차들은 밝은 빛을 쏘면서 질주합니다// 밤나무 숲에 새들도 놀라겠어요/ 어쩐지 자다가 깨어나 소리지르네요//
- 「옹정리 새도로」 중에서
저기 밤나무 산에는/ 도깨비가 머물고 있으니/ 혼자 들어가지 말라고/ 들어가서 뛰놀지 말라고/ 할머니는 말씀하셨어요//
- 「밤나무산 도깨비」 중에서
아프신 아주머니는/ 거실에만 누워계시기에/ 마음속에 텃밭을 담고 계실 거예요//
- 「터골 아주머니 텃밭」 중에서
터골 사람들이 잘 다니던 지게길이 있었다. 아저씨는 지게지고, 아주머니는 보따리 이고 마을 고갯길을 넘었었다. 산나물 한바구니 캐어 오는 아낙네도 이 길로 다녔다. 그분들은 이제 모든 일손을 멈추고 이 길마저도 구름과 바람과 달빛에게 다 내어주고 칡넝쿨에게 관리하라고 맡겨 놓은 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지금은 아무도 지나지 않아요
넝쿨로 덮여있어요
이제는 아무도 다닐 수 없어요
- 「지게 길 칡넝쿨」 중에서
심재황 시인은 고향의 구석구석을 어루만지며 가꾸어보지만 세월의 무게를 낮출 수가 없어 간신히 흔적만 남아 있는 거리를 오가며 포구의 흔적만 바라본다.
남쪽 조강포구 넘어가면/ 저기 북쪽 관산포구 인데// 포구들 흔적이 희미하네// 잠시 건너가고/ 잠깐 건너오고// 며칠이나 지내다가/ 다시 오고 가고 했지만// 이제 나룻배도 없고/ 이야기만 전해 오네//
- 「포구 흔적」 전문
조상들의 묘지들은 허물어져가고, 세월의 흔적만 남아버리는 묘소들이 늘어간다. 심재황 시인은 몇 년간 벌초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언제까지 벌초를 계속할 수 있을 지는 장담을 못한다. 지금 젊은이들은 조상의 묘지에 벌초를 하는 일이 없어질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30년이나 해오는 벌초를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강화도에서 이사 나오던 날 서문 밖 동네 아주머니께서 한 보자기나 싸서 주셨던 개피떡이 생각이 난다.
거의 삼십년이나 해오는 일이어서
해마다 작업은 그런대로 하지만
그런데 하실 분이 없어요
언젠가 빈자리가 되겠어요
- 「올해 벌초」 중에서 -
개피떡을 한 보자기나 싸서 주신
서문 밖 동네 아주머니도
이제 그곳에 계시지 않을 거예요.
- 「강화도 개피떡」 중에서
심재황 시인의 고향 옹정리 터골은 할머니께서 시집온 곳이다. 김포군 검단면 감정리 하동정씨 집안의 딸로 태어나 이곳 터골로 시집온 할머니께서는 6.25 한국전쟁사에 숨겨진 비화로 역사에 묻히어 사시었다. 할머니는 어쩌다가 툇마루에 혼자 앉아서 말없이 동남쪽을 바라보셨는데 저기 산 너머에 친정 이었다.
할머니는 터골로 시집와서/ 친정에 가본 적이 없어요/(중략) 나중에 들은 소문은 사실인데/ 기막히게 슬픈 소식이었는데/(중략) 어쩌다가 툇마루에 혼자 앉아서/ 말없이 동남쪽을 바라보셨는데/ 저기 산 너머에 친정 이었어요//
- 「할머니 친정 소식」 중에서
파란만장한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희비애락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 내 가족사가 들어있다는 것은 현실이다. 통진읍 옹정리의 역사적 숨결과 더불어 심재황 시인의 고향 터골에 얽힌 사연들을 읽어가면서 우리가 지켜 가야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30년을 넘게 고향의 숨결을 지켜오면서 조강포구의 급물살처럼 변해가는 터골의 옛 자취가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을 시로 엮어가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정체성을 생각하게 한다.
심재황 시인이 잔잔히 옹정리 터골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들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지키고 싶은 고향은 어떤가? 온 나라가 중장비로 마구 파헤치고 쇠말뚝을 박고 건물을 지어 도시를 만드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역사의 흔적과 인간의 최종 보루인 함께 살아감에 대한 공동체는 사라진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웃과 오순도순 함께 사는 마을이 없어지고, 다중 잠금장치로 접근 금지를 시킨 주택들만 무질서하게 세워지면서 그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두발 가진 벌레들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더듬이로 살아가는 살벌한 도시로 변하고 있다.
함께 살아가야할 가까운 지인들이나 세상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불빛과 첨단과학기술에 노예가 되어 손바닥 액정에 갇힌 스몸비 스마트폰을 보고 길을 걷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스마트폰과 좀비를 합성한 말.
가 되어가고 있다.
사라져가는 고향을 복구할 수는 없을 지라도 마음속 고향까지 잃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점점 파괴되어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만이라도 고향을 노래하는 시집 한 권을 읽어가면서 사라져가는 에덴을 회복해야할 것이다.
심재황 시인이 간절한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옹정리 터골 이야기』는 오늘날 사라져가는 고향마저 잊은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시금 고향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을 열어줄 좋은 시치료 명상시집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천천히 읽으며 명상한다면 스몸비가 되어가는 현대인들을 치유할 수 있는 명약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옹정리 터골 이야기를 통해 고향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고향에 대한 마음의 정서를 회복시킬 좋은 시집을 출간하신 심재황 시인에게 감사드린다.
1부
터골 들어가며
두릅 따기
며칠 전에 움트고 있었는데
두릅나무 막대기 끝마다
새순 봉오리들이 돋아나요
이제 새순이 퍼져나니까
하나하나 톡 톡 따내요
지금 하나하나 따야지만
다음 주 지나게 되면
다시 새순이 돋아날테지요
햇살이 따가워지기 전까지
새순이 퍼지 나가기 전까지
다시 톡 톡 딸 수 있어요.
가장 아름다운 꽃
봄에는 꽃이 피어나요
아름다운 꽃을 보았어요
봄에 가장 아름다운 꽃 일거예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기 시작해요
빨간 꽃잔디가 피어나기 시작해요
봄에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랍니다
어머니 잠든 곳에 피어나니까요.
고양리 고개 밭
오리정 마을 지나서
염하 쪽으로 가다보면마을회관 느티나무 지나게 되고언덕 샛길 오르면무성하던 아로니아 밭인데
한쪽 큰 밭은 그대로 인데
아래쪽 작은 밭은 베어내서
깔끔히 갈아서 정리해 놓았네요아직 고랑 둔덕은 만들지 않았는데이 넓은 밭에 무슨 작물이 심어질까
더운 여름에 새 작물 가꾸기에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남겨질까.
곧은 길
오랜만에 가는 길은
넓혀지고 곧게 뻗어져서
멀리멀리 보이던 산줄기는
바로 달리면 도달하고
한참이나 지나가던 들길도
금방 지나가게 되고
이내 저수지 변두리 돌아서
저 아래 갯벌 마을에 들어가네
멀리멀리 가던 길이
이제 금방 가면 다다르고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것은
하나하나 지나치고 지나가네.
길 아래 인삼밭
저 아래 염하가 훤하게 보이고바람이 수시로 불어오기도 하여어느 때는 서늘하기도 했는데길가 아래 기다란 밭은
인삼 종삼이 심어지고검은 지붕 울타리 둘러졌네요작년에는 참외 심었고그전에는 들깨 심었고그전에는 고구마 심었고그전에도 고구마 심었는데올해는 인삼 심어지고
지붕과 울타리 둘러쳤으니
이제부터 몇 년 동안은적어도 사오년은 그대로 남겠어요
해마다 갈고 쓸고 뿌리고 심고
덮고 솎아내고 자르고 캐내고다시 갈아내는 고단함은 줄겠어요이제 밭에서 고단함을 나눌 분들도한 분 한 분 이곳을 떠나가시고요
염하 바람을 맞으며
밭에서 일하시던 분들도
이제 한 분 한 분 멀리 가셨어요.
아쉬운 비
제발 비가 더 내려야 하는데더구나 자주 내려야 하는데
이번 주에는 고양마을에 맡겨 둔
참외와 수박 모종 심어야 되기에
갈아 놓은 밭이 촉촉해져야 하는데땅속 깊숙하게 젖어 들어야 하는데
이번 주에 한번 모종을 심고 나서
며칠간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린 모종에서 순잎이 몇 개 나고
줄기가 고부라져야 안심이 됩니다
그때까지 자주 비 내리기를 바라는데아니면 호스로 물 대기라도 해야지요.
시큼한 열무김치
열무김치는 익어가면서
국물이 우러나오고
맛이 들어가면서
깔끔하고 싱싱하지만
이번 열무김치는
벌써 시큼해지고 있어요
열무김치를 담그고 나서
바로 가져와야 했는데
이미 시큼한 맛이 들었는데
입맛을 살살 끌어요
맨밥에 비벼도 시큼하고국수에 비벼도 시큼해요
이제 날이 더워지면
시큼한 맛은 시원하지요.
그때 농가 마당
그 시절에 마당은 넓었고
지붕도 한길이나 더 높았고
뒤쪽 산길도 한참이나 멀었는데
이제는 왜 이리도 좁고 낮은지
작년에 자라던 잡초는
겨울 동안 그대로 말라붙어서
발길에 차이는 대로 부서지는데
그 아래 잔풀이 다시 솟아나네요
그 시절에 마당은 넓었는데
이른 아침마다 싸리비로 천천히 쓸었고
곡식 담은 멍석이 몇 개나 죽 펼쳐졌고
가래를 밀면서 함박눈을 저리 치웠어요
쌓인 눈덩이 사이에 질은 길이 나면
할머니는 아래 집으로 마실 가셨어요.
올해 아로니아 꽃
올해에도 아로니아 꽃송이들
어김없이 파르르 피어나요
지난달에 새잎이 나기 전에
대폭 가지치기 해 버리고
큰 줄기 대여섯 개만 남기고
곁줄기는 바닥에서 잘라버리고
퍼져나간 줄기와 잔가지들도
과감히 잘라서 내던지고
허리 높이 아래로 남기고
아로니아 하얀 꽃송이는
새로 돋아난 잎사귀와 어울려서
멀리서 보면 연녹색으로 보여서
올해 남아있는 아로니아에
한동안 눈길이 가겠어요.
논에 물이 차고
사각형 논마다 물이 흥건히 고이고가래질 단정한 논마다 물이 고이고
저쪽 논은 완전히 잠겨 있고
이쪽 논은 물고랑을 타고서
시원하게 흘러들고 있어요
논물이 찰랑대면서
바닥에 깔려진 고운 흙이 일어나요
다음 주 모심기 이앙기 소리 우렁차고
저녁까지 들리겠지만 소란하지 않아요
해지고 나서도 부릉부릉 들리지만
조용한 시골에 소란하지는 않아요.
차가운 염하 바람
늦은 봄 오후가 되기만 하면
산만하게 바람이 일어나는데
이파리 돋은 나무는 흔들리고
잔풀도 버티기 어려워 흔들리고
마을 아래 염하 타고 올라오니
이곳 바람은 유난히 차갑고
서쪽 염하 너머 해 질 때까지
쉬지도 않고 불어대는데
해마다 늦은 봄 이맘 때
염하 타고 올라오는 바람은
터골 마을로 차갑게 지나가요.
거스르는 염하
그제 비 내려서 물이 불어나고
물길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네
남쪽 하류에 바닷물이 만조인지
좁은 쇄암포 덕포에서 막혔는지
고양포구 염하는 거슬러 흐르네
건너편 강화 쪽은 바다로 흐르는데
이쪽 고양포구 물은 거슬러 돌면서
원모루나루 강변을 치면서
철철 소리 내며 북쪽으로 오르네
염하에 회오리 물살이라더니
염하 물길이 역류한다더니
급한 물살이 맴돌아 치면서
탁한 물살이 거슬러 올라가네.
한밤 꿩 소리
한낮에 오리나무 길 지날 때
부스럭 소리로 짐작은 했는데
참나무 숲으로 둘러진 그곳에
다시 꿩이 찾아들었나 봅니다
마른 나무잎 푹신하게 깔리고
낮에는 나무 사이로 햇살 들고
북쪽 언덕 바람은 막혀있는데
관목 나무 이파리 그늘이 되어
편한 보금자리로 여겼나 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도 한밤중에
두 번씩이나 크게 짖어대는데
꾸엉 꾸엉 꿔엉 꾸겅 꿩 꿩
한밤인데 포근하게 잠들다가
무엇인가 깜짝 놀랐나 봅니다.
대명리 어르신
저녁에 대명리 길가 농장에 찾아가서
사용하던 경운기를 사기로 했어요
대명리 어르신은 참으로 자상하십니다
동그란 노란 눈으로 골똘히 생각하시더니
경운기를 직접 운전하여 가기보다는
화물차로 운반하는 게 안전하다고
여러 번이나 권유하십니다
옹정리 터골까지는 거리야 멀지 않더라도
큰 도로 옆을 한동안이나 지나며 하며
작은 2차선 도로를 따라서 가야하기에
농토 벗어난 경운기는 불안하고 불안하다고
여러모로 생각해도 안전을 위해서는
화물차로 운반하는 게 좋다고 권유하십니다
어르신은 직접 화물차 운전자에게 연락하여
운반 일정까지 대략 정하여 주십니다
무거운 경운기를 화물차에 적재하려면
자신이 가진 장비로 들어 올려 주신답니다
대명리 어르신의 자상하신 배려는
경운기 무게보다도 크게 느끼면서
경운기 소리보다도 크게 들립니다.
아쉬운 아로니아
두 달 전에 바싹 잘라 놓았는데
밑동에서 싹이 다시 삐져나오니
다시 잘라내야만 합니다
두 달 전에 어쩔 수 없이
굵은 낫으로 가지를 쳐내고
벌초기로 곁줄기도 솎았는데
오 년 전에 줄 맞추어 심었는데
이제 쓸모없는 작물이 되었으니
파내고 대체하는 게 마땅하지만
그래도 냇가 쪽으로 한 귀퉁이에
스무 그루 정도는 남겨두어요
지난 날 힘든 일은 잊어야 하는데
아로니아는 아쉬움을 남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