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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0526081
· 쪽수 : 352쪽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노을빛 스커트
나비, 나비!
두꺼비집
심연深淵
오, 카프리!
갈 수 없는 나라
가로수 그늘
보다 큰 집
환幻
해설 / 김성달
인간다움에의 옹호와 우상에의 거부
저자소개
책속에서
스커트의 선홍색 노을빛에 눈이 부셨다. 아랫단에서 엉덩이까지는 노을빛이고, 그 위는 검청빛에 먹혀드는 티어드 스커트(층층이 주름이 잡힌 사다리꼴 스커트)였다. 제일 아래는 꿈결처럼 고운 주황색이었다. 주황색은 점점 진해져 능소화의 붉은색으로 변했다가 진홍이 되고, 진홍은 불길처럼 타올라 검붉은 핏빛을 띄우고 있었다. 그리고 검청빛에 먹혀드는, 저녁노을이 어둠에 잠길 때까지의 과정이 재현된 스커트였다. 나는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스커트로 환생한 천상의 스커트를 보며 망연자실 서 있었다. 점점 더 붉어져서 어둠에 잠기는 하늘…. 숨이 컥 막혀왔다.(「노을빛 스커트」)
분홍나비처럼 날아간 핸드폰은 개천에 머리를 박고 가라앉았다. 개천은 잘 익은 흑미 막걸리처럼 뽀글뽀글 괴어올랐다. 뽀글거리는 거품에 석양빛이 비치어 색채의 파편을 퍼뜨렸다. 빛과 색의 난반사, 사방에서 튀어 오른 빛의 파편들이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올랐다. 하양, 빨강, 노랑, 파랑, 보라, 검정, 연두, 초록, 주황, 파랑 나비들이 살랑살랑 춤추며 떠올랐다. 몽롱한 꿈속에서 수천 수억의 나비들이 잡힐 듯 말 듯 춤을 추었다.(「나비, 나비」)
점점 잦아드는 소리로 읊조리는 숙희의 눈에 방울방울 눈물이 맺혔다. 나는 보았다. 그녀의 눈물방울에는 어두운 창밖에 시선을 주고 있는 남편과 친구들의 얼굴, 분해서 떨고 있는 내 얼굴이 비쳐져 있었다. 비치는 것, 갑자기 푸른 글씨가 얼비치는 종이와 이윤우라는 이름이 떠오르더니 결혼식장에서 숙희의 옆에 서 있던 남자의 이름에 겹쳐졌다. 숨이 딸깍 멎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숙희가 오늘 내내 기가 펄펄 살아있었단 말인가.(「두꺼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