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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0526715
· 쪽수 : 254쪽
· 출판일 : 2022-03-23
책 소개
목차
추천사 ‘작가의 몸만들기’와 작가의 예술정신 / 김호운
작가의 말
달래꽃
틈
다다음 생에도
손
10cm
선(線)
은밀하게
낯선 봄
◆작품해설
개인과 개인의 ‘틈’에서 읽어내는 사회적 상상력의 세계 / 김성달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아이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 작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주위에 사람도 없었고, 있다한들 한국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었지만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다. 은밀한 이야기, 은밀하니 분명 소중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티나에게 주고 싶었다. 다소 가라앉았지만 그래서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는 인상, 그래서 결코 이기심도 아니고 악도 아닌, 진실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티나가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똑같이 까만 내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티나… 목이 메었지만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이가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끝까지 말하기로 했다. 책상 아래 작은 공간을 티나와 나만의 비밀로 가득 채웠다. 비밀은 팔짱을 끼지도 않고, 스케치북이나 쿠키를 던지지도 않는, 착하고 부드러운 선율로 가득 찼다. 그러니까, 티나… 나는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했다. 비밀은 여기까지, 나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달래꽃」)
502호가 다시 빈집이 되었지만, 순영은 차마 현관문을 열지 못했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초초 미세한 틈만 있어도 흘러드는 편견과 혐오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빨리 더 넓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순영이 자신을 가두었던 건 물리적 벽이었지만 그 너머에 더 많은 유무형의 완고한 벽이 있었다. 순영은 순영대로, 귀례는 귀례대로, 총무는 총무대로, 건축주는 건축주대로, 각자 자신의 벽에 갇힌 셈이었다. 스스로 만든 벽에 갇혀 사는 게 참된 삶이란 말인가. 인간의 적이 인간이라는, 외면하고 싶었던 명제가 진실이었든가, 햇빛만으론 안 될 거 같았다. 현관문을 닫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더더욱 아니었다. 망연히 서 있던 순영은 포장용 테이프를 몽땅 꺼냈다.(「틈」)
매직미러 너머로 보이는 사람은 명훈이었다. 명훈은 벽에 걸린 푸른색 캔버스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창문도, 창밖의 나무도, 커튼 뒤에 숨어서 비밀스러운 입맞춤을 하는 남녀까지도 모두 파란색인 그림은 뭉크가 유부녀와 은밀한 사랑에 빠졌을 때 그린 것이다. 완전히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갈망은 이목구비 없이 뭉쳐진 남녀의 얼굴로, 용인 받지 못하는 사랑은 우울한 푸른색으로 표현되었다.( 「다다음 생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