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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41613402
· 쪽수 : 612쪽
· 출판일 : 2025-10-02
책 소개
각자의 컴컴하고 협소하고 외딴 방에 갇힌 존재밖에 더 되겠는가.
_박찬욱(영화감독)
자신의 내적 진실에 도달하려는 한 정신의 고투가 있었고,
그걸 표현하기 위해서 한국문학사가 처음으로 경험한 문장들이 가세했다.
그후로 이것은 하나의 문학적 기준이 되었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외딴방』은 지금의 나를 가능하게 만든 출발점이자 문학적 근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때때로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나는 『외딴방』을 펼쳐든다.
_박상영(소설가)
오랫동안 내가 사랑해온 작가는 신경숙이다.
『외딴방』을 붙들고 느꼈던 감동과 슬픔, 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환희를 잊지 못한다.
소설은 내게 나 자신과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가냘프고 투명한 ‘막’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했다.
_김금희(소설가)
한국문학의 길을 유유히 밝히는 북극성
『외딴방』 출간 30주년 기념 개정판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빛나며 문학이라는 끝없는 길 위의 지향점이 되어준 영구결번의 명작, 신경숙 장편소설 『외딴방』이 출간 30주년을 맞아 개정 출간되었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1993년 창립 직후 신경숙의 첫 장편 『깊은 슬픔』(1994) 출간에 이어 계간 『문학동네』 창간호(1994년 겨울호)부터 작가의 두번째 장편 『외딴방』을 일 년에 걸쳐 연재하고 책으로 펴냈다. 훗날 문학동네와 발자취를 함께한 대표 도서이자 신경숙 일생일대의 업적이 되는 『외딴방』 연재를 시작하며, 신경숙은 이렇게 기록해둔 바 있다. “열여섯에서 스물이 되기 전까지” “서울에 처음 와서 사 년가량 내가 보고 느꼈던 것들을 쓰려 한다”고, “때로 이렇게 밀어넣어도 마음을 비집고 떠밀려와버리는 이야기도 있는 모양”이라고. 작가는 “내 속에서 늘 현재였”던 “그녀들”, 동료였던 여성 공장 노동자들과 근로를 마친 후 밤의 교실에서 수학하던 산업체특별학급 학우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쓰여나간 『외딴방』은 삼십대 초반에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오른 한 소설가의 치열한 집필 과정을 고스란히 조감케 한다. 과거의 기억과, 그것을 소설로 되살리고 있는 지금 작가의 내부에 일어나는 영향을 동시에 기록하는 『외딴방』의 ‘현재진행형 글쓰기’는 페이지를 넘기는 바로 그 순간 다음 장의 이야기가 즉각적으로 쓰여가는 듯한 경이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작가의 집필 속도를 따라잡아 그와 함께 호흡하게 만드는 전략 외에도, 『외딴방』은 여러 독특한 기법을 시도하고 그에 따른 효과들로 작품의 완성도를 착실히 높여낸다. 그러한 성취가 인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글을 쓴 작가가 이미 문학에 통달해 있으며 각각의 기법을 본능적인 감각으로 선택하고 발휘하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기승전결이라는 서사의 기본 구조를 버리고, 글을 쓰는 현재 시점의 잦은 틈입으로 생생한 현재성을 확보하며, 작가 자신에게 끊임없이 회귀하고 다시 나아가는 문장으로 글쓰기라는 행위의 본질과 의미를 확립해간다.
현실을 세밀하게 복원함으로써 마주한 삶의 진실로 개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 단위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리얼리즘이라면, 『외딴방』은 그 기법상의 성취를 통해 전통적 리얼리즘의 조건을 충족함은 물론 새로운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90년대 한국문학 최고의 수확으로 일컬어진다. 『외딴방』이 제시한 ‘새로운 리얼리즘’이란 리얼리즘의 지향과 모더니즘 양식의 결합, 즉 세련된 구성 속에 한 인간의 생애를 오롯이 담아내는 기예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경숙은 글쓰기라는 꿈에 가닿기 위해 자연의 품을 떠나 차갑고 불안한 도시로 뛰어든 한 소녀의 기억을 조각조각 섬세히 이어붙여 한 폭의 거대한 모자이크화를 완성한다. 그렇게 『외딴방』은 주경야독의 역경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힘을 간직하며 꿈을 이뤄가는 소녀를 그린 성장소설이자 70년대 말~80년대 초 도시 여성 노동자들의 선명한 얼굴을 포착한 노동소설로, 당대의 정치·사회·문화·생활 전반을 소상히 기록한 역사소설로, 그리고 삶의 비극으로 잃게 된 소중한 이들과 온전한 작별을 이루는 애도의 소설로 자리매김한다.
이 작품에서 글쓰기의 주체이자 대상인 작가는 소설의 출발점과 종착지에 다음의 질문을 새겨놓는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이 물음 아래 쓰인 『외딴방』에는 작가 신경숙이 도달하고자 한 문학의 총체가 담겨 있다. 하나의 시대를 오롯이 품은 한 개인의 현재진행형인 생애를 다시금 단 한 권으로 품어낸 『외딴방』은 오직 문학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낸 동시에 문학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낸 소설이다. 닳지 않는 생명력을 지닌 모범으로서의 문학을 향유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지난 삼십 년간의 독자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
나는 대체로 책에 운명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인데 작가가 마침표를 찍은 후 그 책의 운명은 그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보살피는 손길이 따로 있고, 그중 가장 따스한 것은 독자의 다정한 손길이라고 생각한다. 출간 후 삼십 년이란 시간을 버텨온 이 작품이 그 증명이려니 여기려 한다. 삼십 년을…… 헤아려보면 새벽하늘에 떠 있는 달을 무심결에 바라볼 때처럼 물끄럼해진다. 이 책의 첫 독자가 이십대에 읽었다면 그는 오십대가 되었을 것이고 삼십대에 읽었다면 육십대가 되었을 것이며 십대에 읽었다 해도 사십대가 되었겠구나, 싶어서. 동시대를 살고 있으나 태생지도 이름도 만난 적도 없이 앞으로도 마주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로 우리는 각자 다른 삶을 살게 되겠지만…… 다가올 시간의 어느 틈에 당신의 외딴방 속에 이 작품이 물처럼, 나무처럼, 공기처럼 스며들어 “망설이지 말고 날아가”는 순간으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썽이는 게 살아 있는 것 같고 충만하기는 하나,
좀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내가 되기를 바라보기도 한다.
읽고 쓰는 삶을 계속해나가다 가만히 마무리할 수 있기를. _신경숙, ‘출간 30주년 기념 작가의 말’에서
목차
1장 _009
2장 _139
3장 _281
4장 _417
해설 | 백낙청(문학평론가) _561
『외딴방』이 묻는 것과 이룬 것 _561
초판·개정판·출간 30주년 기념 작가의 말 _599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어린 소녀는 또랑가에 서서 또랑 너머의 겨울 들판을 보고 있다. 들판은, 아득한 흰 눈 아래, 유일하게 이방을 향해 열려 있는 철길 쪽에서 다시 몰아치기 시작하는 눈바람 아래, 청둥오리 무리들을 품고 있다. 풀씨며 나무열매며 무척추곤충 들을 잃어버리고 눈 속에서 벼이삭을 찾고 있는 청둥오리떼가 소녀에겐 아름다워 보인다. 그 광활한 겨울 들판을 뒤덮고 있는…… 배고픈 무리들이.
나는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으로선 도저히 가까이 가볼 수 없는 삶이 언어 바깥에서 흐르고 있음을 절망스럽게 느끼곤 한다. 글을 쓸수록 문학이 옳은 것과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고통을 느낀다. 희망이 내 속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나 또한 희망에 대해 얘기할 수 있으면 나로서도 행복하겠다. 문학은 삶의 문제에 뿌리를 두게 되어 있고, 삶의 문제는 옳은 것과 희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옳지 않은 것과 불행에 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희망 없는 불행 속에 놓여 있어도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이질 않은가.
언니가 뭐라구 해도 나는 언니를 쓰려고 해. 언니가 예전대로 고스란히 재생되어질지 어쩔지는 나도 모르겠어. 때로 생각했지. 언젠가 내가 그녀들을 내 친구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때, 그때 언니와 그녀들이 머물 의젓한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사회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의젓한 자리 말야. 그러려면 언니의 진실을, 언니에 대한 나의 진실을, 제대로 따라가야 할 텐데. 내가 진실해질 수 있는 때는 내 기억을 들여다보고 있는 때도 남은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도 아니었어. 그런 것들은 공허했어. 이렇게 엎드려 뭐라고뭐라고 적어보고 있을 때만 나는 나를 알겠었어. 나는 글쓰기로 언니에게 도달해보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