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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인이었을 때

내가 시인이었을 때

마종기 (지은이)
문학과지성사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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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인이었을 때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내가 시인이었을 때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2044637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25-10-10

책 소개

맑은 지성과 투명한 언어로 사랑의 시를 조탁해 온 마종기 시인의 시집 『내가 시인이었을 때』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천사의 탄식』(문학과지성사, 2020) 이후 5년 만의 시집으로 수록된 작품 모두 시인이 산수(傘壽)의 길목을 지나오며 씌어진 것들이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해변의 디아스포라 | 그해의 사순절 | 동화사 가는 길 | 재두루미 한 쌍 | 통증의 기원 | 백두산 어지럼증 | 모기의 날 | 그 나라의 양지 | 바람의 이름으로 | 흰나비의 증언 | 발 씻는 남자 | 아바타를 떠나며 | 겨울의 응답 | 동생의 기일 | 입동 즈음에

2부
후기 현악사중주 | 첫사랑처럼 | 누이동생의 이별 | 그림자의 하루 | 늦가을 와온해변 | 큰일을 치르며 | 성묘 가는 길 | 먼 길 | 비밀의 마을 | 눈에 대한 소견 | 아침의 발견 | 두루미 한 마리 | 왕 중의 왕

3부
만년의 과수원 | 딴 방을 쓰며 | 우아한 나무 | 잡담 길들이기 23 | 잡담 길들이기 24 | 글피나 그글피 | 고군산군도에서 | 고군산군도에서 2 | 친구를 보내며 | 노을의 가족 | 약속 | 신화의 강 | 아르헨티나 무지개 | 하나개 바람 | 내가 시인이었을 때

산문
영웅이 없는 섬

해설
깊고 아름다웠던 날들의 기원 · 정끝별

저자소개

마종기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의대,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마치고 1966년 도미,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영상의학과 의사와 의대 교수로 근무했다. 19 5 9 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뒤, 『조용한 개선』 『두번째 겨울』 『평균율』(공동 시집), 『변경의 꽃』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그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하늘의 맨살』 『마흔두 개의 초록』 『천사의 탄식』 등의 시집을 펴냈다. 그 밖에 『마종기 시전집』, 시선집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아주 사적인, 긴 만남』(공저)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우리 얼마나 함께』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공저) 『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대산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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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동화사 가는 길에 피어 있던 민들레는
아직도 그 큰 바위 옆에 살고 있을까.
잘 키운 새끼들 수많은 노란 얼굴이
내가 가면 반갑다고 다가와줄까.
70년 전 난리통에 점심은 못 먹어도
초여름 그 들길에 화사하게 피어 있던
들꽃과 바위와 산새 들과 시냇물,
그 안에서 자라던 내 어린 희망들이
지금도 오순도순 잘들 살고 있을까?

1952년, 열세 살짜리 신문팔이 피란민 학생,
그 신문에 내 동시 「동화사 가는 길」이
아직도 싱싱한 남도의 들길에 사는데
오늘은 고무신 신고 걷는 길 아니고
셔틀버스 시간표 보고 느긋이 앉아 가는
아니면 휴대폰으로 추적해 차를 몰고 가는
편하고 싱겁게 가는 가까운 포장도로.
긴 세월에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내게 남은 것은 주름살 깊은 동화사.

아무래도 내가 다시 찾아 나서야겠다.
연한 초록빛 가슴 뜨거웠던 계획들이
지금은 정말 어디쯤에 살고 있는지?
혹시 함께 손잡고 살지 않아서인가,
내가 혼자 잘난 척 뛰어다녔기 때문인가.
아침 해 뜨고부터 해 질 녘까지
한발 한발 고개 숙이고 물어봐야겠다.

―「동화사 가는 길」 전문


젊은 날에는
좋은 시인이 되고 싶어 몇 번이고
술 마시고 취해서 땅에 쓰러졌다.
바른 길 외치다가 감방에도 갔다.
종국에는 온몸에 상처만 쌓이고
나라를 멀리 떠나 외로워져서야
나그네가 된 나에게 네가 다가왔다.
어두워 몸부림쳐도 외면만 하고
동반자 하나도 허용하지 않던 길,
그늘에 가려 추운 대답을 기다리면
그제야 눈길만 몇 개 보내주었지
그 갈증, 그 부끄러움 속에서 살았다.

천지가 가물거리는 나이에 와도
느린 발걸음의 길은 멀기만 한데
헐벗은 몸에서만 꽃이 핀다니
나이도 잊고 상처도 잊어야겠지.
시를 찾겠다고 입술을 깨물던 내 피가
혹시 보였니, 끈질긴 불면도 보였니?
고통만이 고통을 치유한다고 했지.
회복의 기미는 어디에도 없고
헤매던 불구의 혼을 감추고
모두 떠난 먼 길에 다시 나서리라.

―「먼 길」 전문


비가 오다가 날이 개도
공중에 남아 있던 빗방울들 모여
산뜻한 무지개를 만드네.
비가 귀한 이 땅에서는
나이를 더 먹어야
온몸이 젖을 수 있다네.

무지개가 자라난 자리에는
아직도 그 색깔이 남아
하늘과 땅을 화사하게 칠하고
죄지은 인생을 후회하면서
오색 물감에게 낭비한 비가
오늘에야 약속을 하겠다며
내 몸까지 씻어주네.

무지개를 키운 땅이여,
깊이 잠든 마을을 깨우며
노래하는 내 여름의 뒤뜰이여,
폭우 끝에 보이는 지난날의 유혹이여.

―「약속」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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