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90526890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22-11-28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1~20 / 10~248쪽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마도 아버지는 제일 힘든 일을 시킬 것이다. 흙을 반죽하는 일을 할 것이 뻔하다. 점토는 찐득거리며 다리를 물고 늘어진다. 흙과 흙 사이의 공기 구멍을 없애기 위해 일주일 이상 반죽한다. 마른 길도 걸을라치면 힘든데,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흙 위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골고루 밟아주는 일은 정말 보기도 힘들다. 보나 마나 아버지는 그 일을 시킬 것이다. 덩치로 보면 무난히 넘길 것 같지만 요령 없으면 쉬운 일도 어렵게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사내가 딱 맞다.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눈에 자꾸 어른거리는 사내의 벗은 몸에 만정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화색이 들자마자 기다렸다는 불쑥 솟은 곳. 손등 발가락까지 꼼지락거리던 털은 무슨 조화인가. 너무 신기한 몸에 숨이 멈출 것 같았다. 남자의 특정 부위라 생각이 들자 확 달아오르던 가슴은 무슨 지랄 같은 충동인가?
그릇의 전부가 깨지거나 뒤틀려 있다. 몇 달 동안의 일이 전부 허사가 돼버렸다. 생활 용기는 그렇다 치고 그릇을 한번 구울 때마다 걸작을 만들어 개경으로 보낸다. 그래서 가마에 불을 붙이려면 관아에 신고하고 허가가 떨어져야 한다. 그 이면에 진상품을 상납하는 묵언의 조건이 있다. 진상품에 대한 조정의 하사품은 백미 열 가마에 황소 한 마리로 대단했다. 그리고 최고의 예우로 수장에겐 개경 나들이가 부상으로 주어진다. 왕을 알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십여 년 전 이곳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불행히도 그때는 연하가 수장이 아니었다. 연하는 그런 수장을 보고 결심했다. 나도 왕을 볼 것이야. 그때부터 연하는 욕심을 키웠고 그 결심이 밑거름되어 남보다 빨리 수장이 되었다. 연하는 수장의 신임을 얻어 기술 익히기에 온 힘을 기울였다. 수장에게 자식이 없었던 것이 연하에겐 다행이었다.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세상사다. 무조건 선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연하를 기다린 것이다.
팔자를 거스르려니 따라온 것은 외로움뿐이다. 한 사내의 여자가 되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랐건만. 정에 허우적거리지 말고 정을 즐기라던 작부들의 넋두리. 그러나 송이는 언제나 정에 목마르다. 나이 헛먹은 주책 마음을 다스릴 재간도 없다. 외로움이 내지르는 고통에도 속수무책이다. 연하는 무심하기가 흐르는 세월하고 동류항이다. 사랑이라, 얼마나 갖고 싶은 것인데. 연하의 마음속에 들어가 천방지축 날뛰고 싶은 마음. 그런데 숨죽이고 있으려니 금계랍 맛이다. 참는 것도 한도가 있다. 가끔 서 의원의 끈끈한 눈빛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무시한 송이다. 외로워 잠깐 엉거주춤하고 돌아보면 서 의원이 있다. 반갑다기보다 소름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