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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0631822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23-12-24
책 소개
목차
축사…10
추천사…13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Ⅰ…16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Ⅱ…18
프롤로그…19
제1장 김학영의 뿌리
800년의 역사, 고려시대의 명장의 자손…26
일제강점기에 태어나다…28
차남으로 태어난 죄…31
초등학교에 진학하다…34
해방을 1년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다…36
여전히 남아 있는 일본의 잔재…39
고향 순창군 풍산면에 대한 그리움…40
고향을 그리는 詩 <다시 살고 싶은 豊山>…43
제2장 예고 없는 시련의 그림자
중학교에 가기 위해…48
순창중학교의 학생이 되다…51
예고 없이 찾아온 6.25 전쟁…52
정전협정이 맺어지던 날…55
나를 살린 어머니의 닭죽 한 그릇…58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뛰었건만…60
한 번 더 믿어보는 수밖에…62
형님의 의가사 제대…65
추운 겨울의 어느 날, 서울 땅을 밟다…72
오지 않는 친구, 낯선 곳에 홀로 남다…75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분…79
하는 수없이 순창으로…84
다시 서울로 올라갈 결심을 하다…87
선생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서기를 결심하다…90
광운전자고등학교에 진학하다…94
이만 환이 만든 두 집의 평생 우정…98
제3장 젊은 날의 자화상
법학도 김학영, 그리고 군입대…104
논산에서 경산으로, 다시 25사단으로…110
행운을 가져다준 과거의 인연…113
복학 그리고 전학련…116
제4장 건설인으로 살다
건설인으로서의 출발, 그리고 결혼…124
토목기술자 시험에 합격하다…127
대도실업의 부도…130
억울한 누명을 벗기까지…133
사람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시련…137
안진건설주식회사…140
다시 찾아온 희망, 신풍건설산업주식회사…142
신풍건설산업주식회사의 성장을 이끌다…145
또 다시 시작된 시련을 헤치고…147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던 문화재 공사…149
사천진항 방파제 축조 공사…151
진군터널(47진군터널) 축조 공사…151
초대 지사장으로 있으면서…153
건설에 대한 회의에 빠지다…156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다…158
금강 상류 남면제 개수공사…160
대신제 개수공사…162
열정과 노력으로 일군 부…163
건설인으로 산 오십여 년…165
제5장 가족 그리고 아내 정재엽과 다섯 남매
누님과의 추억…170
현영(賢永) 형님에 대한 그리움…171
동생 성영(成永)에게 힘이 되어주다…172
김학영의 다섯 손가락, 아이들 이야기…175
· 장남 김규필…175
· 장녀 김미현…177
· 차녀 김미경…178
· 삼녀 김미정…180
· 차남 김규선…180
아내와의 첫 만남…183
가족에게 주었던 선물…184
가족의 생일…186
가족 나들이…188
내 아내, 정재엽에게…191
· 정재엽 여사에게 바치는 詩 <아내에게>…197
제6장 아흔, 다시 부르는 노래
노후를 준비하며…202
그리운 고향에 대한 향수…203
서운관정공파 후손으로서의 바람…206
6.25 참전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212
건국대학교 4.19회에 참여하면서…215
김학영의 喜怒哀樂…222
아흔에 적는 김학영의 버킷리스트…226
에필로그…229
약력…231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1935년 11월 15일에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죽곡리 160번지에서 삼남 일녀의 셋째로 태어났다. 내가 살던 곳은 안동 김씨가 처음으로 터를 잡고 살던 곳이 아랫대실로 불리다가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하죽(下竹)'이란 이름의 부락으로 불렸다.
태어나던 해는 일제강점기로 일본의 강압적인 수탈을 경험했고, 1945년도에는 해방의 기쁨도 맛보았다. 1950년에는 6.25 한국 전쟁도 겪었다. 4.19부터 5.16 등 대한민국의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부끄럽지만 나를 포함해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라 부르기도 할 것이다.
"학영아!!! 학영아!!! 퍼뜩 집으러 가거라." 동네 어르신들께서 산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모으고 있던 나를 큰소리로 부르더니, 이내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라는 말씀을 하였다. 급히 찾는 모양새를 보아 아마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서둘러 산에서 내려가 집으로 향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고통스러워하며 신음하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앓아누우신 아버지를 두고 '주장(헛것에 휘둘렸다는 의미)'을 맞은 것이라 수근 거렸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이렇게 된 것이 귀신 때문이라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어머니께서는 굿을 하며 아버지께서 병석에서 일어나길 기원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이리저리 수소문하면서 몸에 좋다는 것을 모조리 구해다가 아버지의 회복을 위해 애를 쓰셨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의 정성과 가족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소생하지 못하시고 1944년 음력 11월 22일에 한 많은 오십삼 년의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당시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다.
친구는 돈 이만 환을 쥐고 바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나는 하루 종일 역 대합실에서 기다렸지만 친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란 걱정이 커지고 두려움으로 무서웠지만 갈 곳도 없었기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늦는 것이라 믿으며 그 추운 날 밤 역 밖에서 또 하염없이 추위에 떨며 기다리다 지쳤고 도저히 추워서 견딜 수 없어 주위를 둘러보다가 야간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몇 명이 모여 있는 역 대합실로 들어갔다. 야간열차를 탈 승객들을 위해 조개탄으로 난로를 때고 있었다. 덕분에 얼어 붙은 몸을 녹일 수 있었지만 야간열차를 타고 모두 떠나고 나만 남게 되자 역무원은 대합실 내 몇 명이 남았나를 확인하고 조개탄을 가져가버렸다. 결국 난로는 꺼져버렸다. 대합실 바닥은 냉기가 올라오고 창문 틈으로 추운 겨울바람이 비집고 들어오니 추위로 덜덜 떨리는 몸은 추위뿐만 아니라 친구의 배신을 깨달으며 더욱 참기 힘든 몸서리까지 쳐지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