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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천천히, 깊이, 시를 읽고 싶은 당신에게](/img_thumb2/9791190893619.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0893619
· 쪽수 : 324쪽
· 출판일 : 2021-06-15
책 소개
목차
1장. 1936년의 아름다운 시
거미 가족을 걱정하는 백석/ 가장으로서 눈물겨운 이상/ 뺨의 얼룩을 간직한 김기림/ 구름보다 높고자 했던 임화/ 별똥 찾아간 정지용
2장. 고흐, 그 시작과 끝
시간을 이겨낸 [감자 먹는 사람들]/ 미치고 싶으나 미칠 수 없는 세계/ 고흐에 미친 사람, 이생진.정희성
3장. 맛있는 국수 이야기
삶의 모서리에 치일 때 국숫집으로/ 아배 앞에는 왕 사발, 아들 앞에는 새끼 사발/ 목이 긴 그리움/ 한 푼어치 평화를 의심하다/ 숙맥끼리 나누는 퉁퉁 불은 국수/ 텅 빈 국숫집을 거드는 마음
4장. 시큰한 모량역 이야기
가랑비에 젖는 모량역/ 더 이상 떠나지 마라/ 모량리의 선후배 시인/ 간이역 시인, 박해수/ 왕벚꽃 꽃비 내리는 모량역
5장. 김남주 시인과 책방 이야기
김남주의 넓은 등을 그리워하는 박몽구/ 카프카와 하루키, 김남주와 이승하/ 책방을 운영한 시인들/ 김남주의 대책 없는 순결성/ 책 도둑과 삼수갑산
6장. 폐사지에서 숨은그림찾기
폐허의 비밀을 찾아서/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길을 잃고 길을 찾는/ 붉은 마을로 들어가는 길
7장. 꿈을 달아놓은 다락 이야기
잘 말린 무화과나무 열매와 상처/ 자전거 도둑과 진주 귀고리 소녀/ 꿈과 상상을 조물조물하는 다락/ 새끼 말향고래의 꿈/ 공중에 달아놓은 즐거움
8장. 동화를 사랑한 시인들
그림 형제의 삶과 길/ 그레텔, 젖은 눈으로 세상을 보다/ 잠자는 미녀의 가짜 평화/ 분홍신을 신고 마음껏 스텝을 밟는 자유/ 조금 나은 것들에 대한 희망/ 구름 안장 얹고 주저앉거나 떠나거나
9장. 밥과 책에 대하여
일용할 슬픔의 높이/ 먹고사는 일이 거리낌이 되어/ 기침 소리도 멎게 하는 책 읽기/ 책과 밥과 휴식
10장. 장엄한 낮술 이야기
낮술 권하는 박상천/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시간, 정현종/ 비 내리는 낮술을 아는 김수열/ 술에 취해 집을 잃어버린 고영/ 낮술로 논배미 융단 탄 홍해리/ 몽롱하다는 것이 장엄하다는 천상병/ 술집에 출석하는 시인들/ 북녘 대폿집에서 반가이 울고 싶은 신경림
11장. 백석의 함주시초 꼼꼼 읽기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 북관/ 노루가 안쓰러운 시인/ 귀주사의 밤 풍경/ 서로 미덥고 정다운 친구들/ 장글장글하고 쇠리쇠리한 백석
12장. 소월과 스승
그리운 것은 산 너머에/ 스승을 배우며 자기 길을 가고
저자소개
책속에서
섬에 미친 시인, 이생진은 또한 고흐에 미쳐 시집 한 권을 온전히 고흐 이야기로 채웠다. 그중에서도 한 사내의 생애를 두루 꿰뚫어보는 아래의 시는 단연 압권이다. [중략] [별이 빛나는 밤](1889) 그림 앞에 서면, 원화가 아니더라도 한동안 말문을 닫게 된다. 고흐에 감전된 사람일 것 같으면 별무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지 않도록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어야 한다. 생 레미 시절, 정신병원에 있던 고흐가 전력을 다해 그렸을 그림이고, 그의 전 생애가 함축된 그림이다. 이 외롭고 아름다운 세계가 가능했던 건, 고흐 곁을 “떠나는 사람들”에 기인한 바 크다는 게 시인의 생각이다.
시구 어디에도 국수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지만 시 전체가 국수에 대한 이야기다. 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것’, ‘반가운 것’의 정체는 국수다.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유장한 역사처럼 국수의 면발은 길다. 그런 국수가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모습이란 여간 정다운 게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장소인 아르굴(아랫목)에서, 육친끼리 머리 맞대고 먹는 국수가 어떤 성찬보다 풍성해 보이는 것이다.
백석의 국수엔 마을 공동체에 대한 추억과 가족에 대한 유대가 담겨 있어 더욱 맛이 난다. 게다가 현재형 문장으로 독자에게도 국수를 준비하거나 국수를 먹는 어느 지점에 다가앉게 함으로써 국수에 대한 감칠맛을 돋운다. 하지만 이 시를 현재의 풍경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것은 무엇인가” “친한 것은 무엇인가”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라며 감탄조의 의문형으로 거듭 물어오는 데서 잃어버린 추억을 환기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정영주 시인은 시집 『말향고래』에서 다락에 관한 인상적인 시 세 편을 남겼다(「다락방의 말향고래」 「다락방1」 「다락방2」). 그 뒤를 따라 또 다른 다락의 세계로 한 발 더 들어가보자. [중략] 「다락방의 말향고래」에서 말향고래는 유년을 지키는 수호자로 부름을 받았다. 시인은 말향고래를 유년의 다락방 이미지와 교차시킨다. 말향고래가 새끼를 품듯 ‘어린 나’를 품어주고 ‘나’ 역시 스스로 새끼 말향고래를 키우기도 하는 데서, 말향고래와 ‘어린 나’의 밀착은 더 강해진다. 말향고래의 배 속은 곧 아이의 다락방이다. 동굴 같고 밀실 같은 아이의 다락방이 그 또래의 향을 간직하며 말랑한 곳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주위가 불안해서다. 말향고래에겐 작살로 위협하는 고래잡이 선원이 있었지만, 아이에겐 아이러니하게도 술에 취한 아버지가 그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