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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543211
· 쪽수 : 172쪽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_ 시인의 생가는 시일 뿐
외투 / 난쟁이 그림 / 몽실 탁구장 / 권정생과 김용락 / 평등한 집 / 말아도 / 이상과 소월 / 길 끝 보리술집 / 동피랑에 오면 / 기상도 장정 / 양 치는 시인 / 김수영을 읽는 밤 / 세관원들의 오두막집 / 수향산방 전경 / 이인성과 이쾌대 / 고목과 길 / 이생진과 커피 / 여서도 갈 때는 / 마크 트웨인! / 빵을!
2부_ 복福은 한 입 거리 수단일 뿐
소걸음 / 독락獨樂 / 일로연과도一路連科圖 / 경주 박물관에서 / 비급전관 / 조신을 만나다 / 허균에게 / 오키나와 홍길동 / 암자에서 연암을 읽다 / 흥덕왕릉 / 고산방학도孤山放鶴圖 / 상화와 고월과 목우와 고양이 / 추사의 佛光을 보며 / 정자와 연못이 있는 풍경 / 우화루 호랑이 / 돝섬에서 띄운 편지 / 이인상의 송하관폭도 / 여섯 송이 해바라기 / 식사 / 위층 아래층
3부_ 실망은 기대의 후속 편일 뿐
평행봉 고수 / 1955년 대구, 이중섭은 / 대구 르네상스 다방과 그 이후 / 김종삼과 시인학교 그리고 이후의 시인들 / 라면 혹은 냄비에 대한 추억 셋 / 숙맥과 도사 / 무협지를 읽으세요 / 양말을 곡하다 / 꿩 두고 닭 / 라일락 카센터 / 모깃소리 / 야구의 영혼에 씌다 / 마다가스카르의 웃음 / 배달 소년 / 그는 선생이다 / 미나리의 말 / 민들레 / 청도淸道 기행 / 개도와 낭도 사이 / 우포늪에서
시인의 산문 _고월 이장희를 찾아서
저자소개
책속에서
동네 탁구장에
몽실이를 닮은, 작은 체구에 다리를 조금 저는 아주머니가 있다.
상대의 깎아치기 기술로 넘어온 공은
되깎아 넘기거나 살짝 들어 넘기고
강하고 빠르게 들어오는 공은
힘을 죽여 넘기거나 더 세게 받아칠 줄 아는 동네 고수다.
하루는 권정생 닮은, 빼빼 마른 아저씨가 탁구장에 떴다.
허술해 보여도 라켓 몇 개를 지닌 진객이다.
몸 좀 풀 수 있냐는 요구에
몽실 아주머니가 아저씨의 공을 받아주는데
조탑동의 인자한 그분과 다르게
이분은 탁구대 양쪽만 집중 공략하는 극단주의자다.
이쪽으로 찌르고 저쪽으로 때리기를 반복하니
불편한 다리로 한두 번 몸을 날려서까지 공을 받아주던
몽실 아주머니가 공 대신 화딱지를 날렸다.
(중략)
이오덕처럼 바른 말만 하는 관장의 주선으로
다시 라켓을 잡긴 했지만
이전보다 눈에 띄게 위축된 아저씨는 공을 네트에 여러 번 꽂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탁구엔
이쪽저쪽을 삥 뽕 삥 뽕 넘나드는 재미가 있다.
몸 쓰며 기분 내는 일이란
사람 사이 간격도 좁히는 것이어서
탁구장 옆 슈퍼에서
몽실 아주머니와 권정생 닮은 아저씨가 우유로 건배를 한다.
아, 이 재미를
오줌주머니 옆에 찬 교회 종지기 권정생은
평생 누리지 못했겠구나.
- 1부 ‘몽실 탁구장’ 중에서
마라도 어원을 알려 드릴까요.
먼저, 소주와 맥주를 일 대 이로 말아요.
막걸리와 맥주를 삼 대 일로 말아도 좋아요.
안 말고 싶다고요, 그럼 독도 하세요.
말고 싶은 사람만 잔을 들어서
(다함께) 말아도! 마라도!
어원을 믿지 않는 건 자유지만 말리지는 마세요.
몽마르트에 온, 포의 검은 고양이는
사티의 음악을 말고, 로트레크의 그림을 말고
독주 압생트는 이들을 일찍 말았습죠.
말고 싶은 쪽을 찾아 헤매다가
위트릴로에게 사생아를 물려준 수잔 발라동은
모델을 발라당 벗고 스스로 붓을 든 화가로 나섰고요.
베를렌과 랭보, 고갱과 고흐
그 사이 팽팽한 긴장도 압생트가 대신 말았지요.
세잔과 졸라의 경우는
술 세 잔 더 말면 분명해질 거예요.
이제 서울을 말아 봐요.
구본웅의 우인상에 남은 이상은
불우한 가계와 소설을 말아 날개를 붙이려 했지만
김유정과 함께 폐병으로 주저앉죠.
이상의 연인 변동림은 김환기를 만나고
김환기는 김광섭의 시를 말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남기더니
다들 주소지를 말고 뭇별이 되었네요.
북쪽의 소월은 꿈을 말고 후배 백석은 연애를 말고
이태준과 김용준의 우정은 전쟁이 말아버렸죠.
북의 경성, 남의 경성 오가던 김기림, 이용악, 김규동은
끊어진 길 한쪽에서 그리움만 말았는데
선 하나 말지 못한 게 평생이니 웃을 수도 없어요.
좀체 섞이지 못한 김수영과 박인환도 저 세상에선 말고 있으려나요.
- 1부 ‘말아도’ 중에서
1924년, 《금성》 3호엔
이전에 없던 고양이가 두 마리나 있다.
봄을 부르는 고월의 고양이와 함께
은행나무 아래, 졸고 있는 목우의 고양이를 누가 봤을까.
그들의 별난 우정까지를.
상화의 라일락나무 아래, 시집을 펴면
고월의 버드나무 위로
목우의 은행나무 그늘로
고양이 걸음으로 사라지는 옛 기척이 있다.
- 2부 ‘상화와 고월과 목우와 고양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