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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초상

바람의 초상

(40년간 기록한 농촌간호사 일기와 편지)

박도순 (지은이)
윤진(도서출판)
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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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초상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바람의 초상 (40년간 기록한 농촌간호사 일기와 편지)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0985215
· 쪽수 : 472쪽
· 출판일 : 2025-11-25

책 소개

농촌 보건진료소장으로 살아낸 40년의 편지와 일기를 담은 산문집이다. 열악한 현장에서 사람을 돌보는 마음의 기록이 깊은 여운을 남기며 느린 글쓰기의 힘을 전한다.

목차

제1부 몸 성히 진학하느냐 | 1986∼1988
우리 가족
나의 친구 나의 선생님
일기1
사랑하는 이에게

제2부 오지 않는 새 | 1989∼1998
발령
결혼

제3부 갈림길 | 1999∼2016
박사님께 소장님께
일기2

제4부 이정표 | 2016∼2021
교수님께 소장님께

제5부 거기 사람 있어요 | 2019∼2025
일기3
길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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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박도순 (지은이)    정보 더보기
40여 년 가까이 보건진료소에서 근무한 간호사. 간호대학 졸업 후 보건진료소장으로 무주군에서 근무를 시작하여 퇴직을 앞두고 있다. 「간호는 예술」이라는 신념을 간호 철학으로 삼고 있다. 삶의 맥락에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간호를 실천하며 삶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을 기록한 편지와 일기를 묶어 산문집 『바람의 초상』을 펴냈다. (사)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작가회의, 대한간호협회, 한국농촌간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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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서문

나와 너
온갖 참된 삶은 만남이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관계’ 속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나’는 ‘너’와의 만남 속에서 비로소 형성된다는 것이다. 『바람의 초상』은 그 말의 가치와 깊이를 오롯이 실감하게 만든다. 이 책은 박 소장님이 간호학과에 입학한 20대 초반부터 보건진료소장으로 은퇴하기까지 40여 년간 농촌 간호 현장에서 주고받은 편지와 일기를 담은 삶의 초상이다. 이 기록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며 간호 실무 전문서도 아니다. ‘나’와 ‘너’가 만나 시간 속에서 빚은 관계의 산물이며, 한 사람이 간호사로 살면서 타인의 삶과 고통을 얼마나 정직하고 따뜻하게 때로는 얼마나 치열하게 감당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고백서이다.
지난가을이었다. 무주로 여행을 갔다. 그때 들렀던 장안보건진료소 사택에 쌓인
서류뭉치를 지금도 기억한다. 가족과 주고받은 손 편지, 연인과 주고받은 연애편지, 출력된
이메일까지 꼼꼼하게 정리하여 서류철에 보관한 흔적들. “아니! 이런 것이 어떻게 아직도
남아 있는 거죠?”라는 질문에 소장님은 “너무 소중해서 차마 버릴 수 없었다”라고 대답했다.
버려지지 않은 그 기록들은 단지 개인의 아카이브가 아닌 관계의 표식이며, 이 책으로 탄생하게 만든 숨은 공력자라 아니 할 수 없다. 「관계」 덕분에 한 간호사는 고립된 농촌 오, 벽지 간호 현장에서 ‘너’를 마주하며 ‘너’를 기다리며 ‘나’를 견디며 나로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소장님이 일하는 보건진료소. 그 공간에 오시는 환자들은 밝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명랑하고 행복한 사람들은 보건진료소에 별로 오지 않습니다. 아픈 이야기, 슬픈 이야기를
풀어놓고 어두운 이야기를 풀어놓죠.” 진료가 끝난 후 문을 나서는 환자의 뒤태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그대로 진료실 안에 남아 그녀는 그들이 놓고 간 아픔과 슬픔에 젖어 허우적거리다가, “나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되뇐다. 그러나 그녀는 매번 다시
일어선다. “나는 다시 아프고 슬픈 누군가의 삶을 기꺼운 마음으로 동행하리라. 그것이 신이
나를 부르신 목적일 것이고, 일단 그렇게 살아보자” 다짐하면서. 이 문장은 이 책의 중심에서
조용히 빛난다.
특히 간호사라는 직업이 갖는 무게와 농촌 간호 현장의 복잡함을 어떤 이론서보다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곳곳에 담겨 있다. 고향으로 돌아와 마주하는 환자들은 낯선 사람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람, 동네 어르신들, 어찌 보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이웃이다. 이러한 비-익명성의 관계 안에서 박 소장님의 역할은 더 미묘해진다. “병원을 배경으로 한 논문에서 설명하는 간호사와 어려운 환자와의 대인관계는 농촌 간호사의 너무 알아 어려운
관계 맺기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너무 잘 알아서, 너무 오래 알아서, 오히려 불편한 거리. 그 속에서 간호사로서의 자아와 한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모습에서 간호사와 대상자 관계에 대한 소장님의 깊은 고뇌를 느끼게 한다.
진료실에서 소장님은 진심으로 환자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증상은
그 자체로 생의 아픔이며 삶의 역사다. “찬바람이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머리가 시리시리
해가꼬 수건을 머리에 똘똘 말아서 쫌매야 잠이 오지, 그냥 못 잔당께요.” 이 말을 진료 기록지에 어떻게 옮겨 적어야 할까. 고민은 단지 임상 용어를 찾는 데 그치지 않는다. 증상 속에 스민 삶의 결을 놓치지 않으려는 간호사로서의 청안(靑眼)이 깃들어 있다. 진료의뢰서에 어떤 철자로 적어 보냈을지 소장님을 만나게 되면 꼭 묻고 싶다.
소장님은 질문한다. “경청과 공감에 지쳐버린 간호사는 누가 돌봐줘야 하는가?” 환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의료진에게 쏟아낸다. 그러나 간호사는, 돌보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어디에
쏟아야 할까?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저는 죽을 것 같은 피로감을 쓰는 행위로 해소합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죠. 씻김굿처럼. 글밭 고랑 사이로 들어가 몸과 마음을 웅크린 채 쓰고 읽다 보면,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닌 새로운 인류가 되어버린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쓰기를, 책 읽기를 도무지 끊을 수 없어요” 이 고백은 지난한 농촌 간호 현실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관계를 이어가고, 믿고 견디며 버틴 한 존재의 생존 방식이다. 간호사란 결국, ‘자기 고통쯤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통을 함께 지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지켜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본문 곳곳에 후배 간호사들과의 만남도 등장한다. 일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에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만나는 중이고, 곧 꽃도 만나고 토끼도 만나겠죠. 제가 지나오는 길에 보았던 나무는 더 자라 있을 것이고. 꽃은 졌을 것입니다. 맹수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혀 다른 풍경을 만날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무기로 삼지 않는다. 다만 지나온 길에 만난 나무와 맹수를 보여주면서도 후배들은 그 길에서 다른 꽃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자세는 진짜 선배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겸손이고 사랑이 아니겠는가.
『바람의 초상』은 또한 한 여성으로서의, 한 어머니로서 삶의 고백이기도 하다.
보건진료소를 집 삼아 네 명의 아이를 키우며, 읍내로 원거리 통학을 시키고, 보건진료소 고유 업무와 가족 사이에서 자주 갈등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너무 반짝거리는 것만 드러낸 것 같아 미안하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라. 반짝거리는 빛 아래에 녹아 흐르는 눈물과 가시까지도 미루어 읽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말은 소장님이 살아낸 삶, 그리고 이 책 자체를 설명해 주는 본연 자체이다.
이 기록은 간호사가 쓴 글이지만, 간호사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 바치는 조용한 찬가이며, 진심으로 존재 자체인 모든 이에게 건네는 위로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 존재에 대한 사색, 삶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이처럼 투명하고도 따뜻한
기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묻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누구를 돌보고
있는가. 나의 ‘너’는 누구인가. 너의 ‘나’는 누구인가.
이 책이 저마다 은밀한 귀소 본능을 책꽂이에 채우며, 저마다 어울리는 독자를 찾아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나’들이 새로운 ‘너’를 만나 다시 한번 참된 삶의 자리로 저벅저벅 걸어가기를.

2025년 부산 동아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유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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