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 흔적 1~3 세트 - 전3권

-1권-
제안
정이선
제안Ⅱ
복귀
헌터스: 헌터와 so시민들1
이면
균열
헌터스: 헌터와 so시민들2
전조
헌터스: 헌터와 so시민들3

-2권-
가상
헌터스: 헌터와 so시민들4
원상
헌터스: 헌터와 so시민들5
잔상

-3권-
잔상Ⅱ
헌터스: 헌터와 so시민들6
흔적
휴가
파티
식사
겨울, 그리고
헌터스: 헌터와 so시민들7
겨울, 그리고Ⅱ
종이책을 펴내며

지금껏 정이선은 자신이 새까만 바닷속으로 천천히 침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단순히 절망의 구렁텅이라거나, 더러운 진창이라고도 표현하지 못할 종류의 개념이었다. 그는 그날 이후로 제 삶에 빛이 들기를 기대한 적 없지만 빛을 가장한 어둠을 맞닥뜨리리라고 상상한 적도 없다./ 그러나 정이선은 형용하기 어려운 막막함 속에서 끝내 저열하고도 얄팍한 희망을 찾고야 말았다. 그것은 일견 안도와 닮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기적인 기쁨의 형태를 띠었다. 그는 그것을 인정한 순간 아주 몹시도 자신이 혐오스러워졌으며 또 동시에 후련해졌고, 그래서, 그러니까 결국엔……./ 사현의 손을 잡고야 말았다. 찰나 정이선은 제 손에 맞닿은 온기에 비참해졌지만 끝내 그 손을 놓지 않았다. 귓가에 떨어지는 그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정이선은 자신이 이제 떨어질 곳이 어디인가 생각했다. _1권

정이선은 느릿느릿 눈을 깜빡이다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끼고 사현과 눈을 마주했다. 초점이 또렷한 새까만 눈동자, 안개 낀 것처럼 희뿌옇지 않은…… 살아 있는 사람의 눈동자. 그 눈동자는 한참 동안 정이선을 응시했고, 정이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이선은 그 어떠한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다. 비 내리는 창문을 뒤로 둔 그의 얼굴은 조금 창백했고, 색소가 옅은 눈동자는 그저 천천히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은 멀쩡한 상태라기보다는 모든 감정이 뒤엉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짓뭉개진 상태와 유사했다. _1권

“뭐,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아도 돼요. 성교를 하자는 의미가 아니니까.”/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정이선의 표정이 미묘해진 순간, 사현이 그의 앞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달빛이 어렴풋하게 존재하는 공간 속에서도 그의 행동은 똑똑히 보였다. 그 사현이 자신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충격적으로 눈에 새겨졌다./ 숨도 쉬지 못한 채로 굳은 정이선을 보며 사현이 미소했다./ “내가 이선 씨한테 봉사하겠다는 의미예요.” _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