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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그림을 그리며

솔 그림을 그리며

권택범 (지은이)
열린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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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그림을 그리며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솔 그림을 그리며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1201970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25-12-30

책 소개

고향과 자연, 길 위의 사유를 시조의 단정한 틀에 담았다. 큰 말 대신 자세한 관찰로 계절과 생활의 촉감을 살리고, 진정성과 성실함으로 시조가 태도임을 보여준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고향
고향의 봄
산나물
고향
고향집
이사 가는 길
여우 이야기
연원 풍경
이승의 끝날
사모곡
치매 졸업
찔레꽃
꽃 나그네
윤사월
하지
감자
망초꽃
달 이야기
모임
어머니

2부 민들레
민들레 홀씨
흰 목련
풍경
개나리
광교 호수
갈대 물림
이팝나무꽃을 보며
귀한 손님
산수유
능소화
안 봐도 비디오
매미
늦더위
철부지
가을 그림
동화 마을
까치밥
남대리 새벽
흰 눈이
습설이
다음 장면
양수리에서
이별
귀한 택배

3부 권금성
권금성
무릉 계곡
추암 공원
가을 나들이
소금산 추경
족욕(문경)
일터
치과
늙은 면접
동병상련同病相憐
올해도
울렁증
고인의 톡
연말에
빈 망태
한 해를 보내면서
돌림판
고시촌 공원
삼일절
현충일
산책 모임
알밤
새해 조찬
솔 그림을 그리며
한라산 백록담

4부 백두대간
대간 길
지리 덕유산 권역
덕유산을 향하여
비에 젖어
삼도봉
속리 소백산권
봄날에
굽이치는 산길
새재 일출
소백산권
도솔봉
소백산
백두대간 종주
관동별곡
기생 나무
삽당령
초록 목장
설악산권
마등령-미시령-진부령
구룡령

5부 안동 권문
안동 권문
덕의 향기
송고공
사정공 사상
귀봉공
운곡서원
향사
가을 서원
연원 모임
연원의 여름
기로연
용추기운
산불을 보며
시연공 업적

■평설: 서정의 눈으로 그린 삶의 풍경__이석규

저자소개

권택범 (지은이)    정보 더보기
《시조사랑》 등단(2020) 한국시조협회 이사 시조집 『솔 그림을 그리며』 백두대간 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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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서정의 눈으로 그린 삶의 풍경
— 권택범 시조의 진정성과 사유


이석규
(사)한국시조협회 명예이사장, 가천대 명예교수

1. 들어가며

권택범 시인은 맑고 깨끗한 분이다.
무엇을 바라보든 눈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를 본다. 순수하고 정직한 거다. 게다가 섬세하고 예리하다. 더 넓게, 더 깊게 접근하기 위한 관찰과 통찰을 쉬지 않는다. 그것은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이루고자 하는 끊임없는 자기 연단일 것이다.
그는 매우 부지런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보이는 모든 일을 처리한다. 더욱이 남이 보지 못하는 일도 찾아서 해결해 낸다. 내 일 남의 일이 따로 없다. 특히 공적 일에서는 정확한 상황판단으로 필요를 담박 알아차리고 아주 엽렵하게 정리하고 도우며 해결한다. 놀라운 것은 남들에게는 힘든 일이 그의 손안에서는 쉬운 일이 된다. 아예 그 일이 어려운 일일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것 같다.
그는 또한 여러 가지 분야에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원예와 식물 분야에 조예가 깊다. 산과 들에 있는 수많은 꽃이나 풀 그리고 나무에 대하여 그 특성은 물론 효용성까지 넓고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일상생활에 잘 활용할 줄 안다.
그가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 못지않게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린다. 그가 다니는 ‘더 사랑의 교회’에서 크고 작은 광고나 게시물을 그리는 일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성실한 크리스천이다. 장로나 무슨 직분을 맡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봉사와 무엇보다도 믿음의 주체이신 예수 앞에 항상 경건하며 성실을 다하고자 한다. 일상생활에서 선함과 겸손과 봉사를 행동으로 보여 주는 사람이다, 당연히 인간관계에서도 부드럽고 긍정적이다. 언제나 일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힘쓰고자 한다.
언어적 감각도 아주 좋아서 뒤늦게 시조를 배우더니 금방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아직 직장 일 등으로 매우 바쁘게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시조집을 내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충심으로 축하드린다.
예술가로서, 시인으로서 큰 경지 이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질이나 수련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언어운용 예술성 기타 분야를 치밀하게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늘 사색하고, 묵상하며 내적 발전을 위하여 성찰하는 그의 일상을 볼 때, 시인으로서 깨달음이나 기량면에서 상당한 경지에 이르게 될 것으로 믿고 기대한다.

2. 고향

지난 100여 년의 세월은 워낙 급변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나이가 든 분들은 너무나도 달라진 현실 속에서, 대부분이 힘들었지만 자유롭고 따뜻했던 어린 시절의 많은 추억을 그리움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권택범 시인도 예외가 아니다.

⑴ 어리던 날

초록빛 떡갈 신갈 푸나무 한 짐 지고
무논에 흩뿌려서 첨벙첨벙 밟아대곤
갈색 물 우러날 때면
풍년 꿈에 젖었지

비탈진 언덕배기 보리 이랑 반짝이고
두메 골 다락무논 정겨운 소몰이 가락
골 가득 메아리 소리
봄 여무는 한나절
-「고향의 봄」

옛날 어린 시절 봄 한 철 농사짓던 산골 마을의 정경과 그 속에서 성실하게 농사짓던 정직한 농부들의 동적인 일과가 그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소박하지만 인심 좋던 농경 시절에 대한 추억이 저절로 고개를 든다.

산나물 뜯으려고 산등성 돌고 돌아
향기가 흐르도록 머리에 이고 지고
오일장 정겨운 흥정
간고등어 몇 마리
-「산나물」

그 시절은 가난했다. 농사짓는 나머지 시간에 주로 아낙들은 산나물을 뜯어온다. 집에서 먹기도 하지만 장이 설 때는 장마당에 내다 팔기도 한다. 산나물을 뜯어 팔고 그 돈으로 식구들 특히 아이들이 아주 어쩌다 맛볼 수 있는 간고등어 몇 마리를 사 들고 으쓱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기까지 하루의 삶의 모습을 단시조 한 수에 간결하게 담고 있다. 쉽지 않지만 부지런한 일상과 가족, 자녀들에 대한 소박한 애정이 스며 있다.

겨울밤 문설주에 달그락 나무 문패
잠 못 드는 새벽녘에 문풍지 바람 소리
더더욱 소름이 돋네
앞산 골 여우 울음

그런 날 아침이면 어느 지붕에 망자의 옷
그놈이 어찌 알고 이른 문상 했었을까
생과 사 미리 아나 봐
묘지라도 파려나
-「여우 이야기」

문명의 이기가 사회를 지배하기 이전의 농촌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런 예의 대표적인 ‘도깨비’라는 어휘는, 신비롭지만 속담에만 살아 있다. 여우, 호랑이, 귀신 이야기들도 많이 있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아날로그 이전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을 종종 두려움에 빠뜨리곤 했다. 그리하여 권선징악(勸善懲惡)을 강조하는 교육 수단으로 적용되기도 했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았던 옛사람들의 때로는 어리석다고 느낄 만큼 순진한 모습과 함께, 두려운 일을 두려움으로 여기던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⑵ 어머니

등에는 아이 업고 머리엔 한 짐 이고
고갯길 땀 흘리며 이사하는 어린 새댁
길옆에 단풍잎 하나
원 그리며 떨어진다

상수리 큰 나무숲 완만한 마루턱에
누른빛 개를 닮은 산짐승과 마주칠 때
큰애는 돌 주워들고
엄마 앞에 나선다

한 많은 이삿길은 무섭고 어려웠지
새 삶터 찾아가는 진땀 나는 설운 그날
엄마는 용감한 여자
철부지들 울타리
-「이사 가는 길」

아빠는 부재다. 아기와 사내아이 하나, 어른이라곤 엄마 혼자서 인적 없는 숲속 길 지나 업고이고 이사하던, 화자의 어느 어린 날의 회상이다. 외롭고 무서운 상황과 미래가 불안한 한 가족의 서러운 이야기다.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자식들을 보호하는 엄마에 대한 신뢰와 무서움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도우려고 용기를 내던 한 아이의 진정이 잘 나타나 있다. 어린 날, 아빠 없는 한 가족의 이사하던 한 장면이 꿈결처럼 안쓰럽다.

연한 순 앞세우고 하얀 얼굴 수줍어라
들과 산 척박한 땅 넝쿨 지어 품어 안고
낮달도 쉬었다 가는
하얀 내음 엄마 꽃
-「찔레꽃」

희고 소박한 그러나 넝쿨로 척박한 땅을 품어 안고 있는 마음씨 착한 찔레나무와 꽃 이야기다. 맑은 향기가 은은해서 낮달이 쉬었다 갈 만큼 예쁘고 예쁜 찔레꽃, 시인은 소박한 찔레꽃에서 친근하고 다정한 엄마를 느낀다. 그렇게 포근하다.

섣달의 엄마기일 서럽고 짧은 일생
오십 년 배고픈 삶 떠나신 지 사십여 년
이 밤도 별빛 되어서
먼 길 달려 오소서

칠 형제 키우시다 신당골에 누우셨네
가신 자 언제였소 노인이 된 우리 형제
추억은 소쿠리 보리밥
먹기 바쁜 철부지들

달 뜨는 밤이거든 산 노루 벗하시어
싸리꽃 향기 따라 이승을 거니시다
소쩍새 슬피 울어도
못 들은 척하세요
-「사모곡」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닌가. 어머니가 세상을 등지신 지 40여 년이 지난 기일을 맞아, 어머니를 추모한다.
물려받은 가난 속에서, 어머니 홀로 7형제를 키우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소쿠리에 보리밥을 담아줘도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을 일곱 형제들 뒷바라지에 어머니는 늘 배곯으셨다. 정말로 마음 편히 따뜻한 식사 한 번이나 못 하셨을 것이다. 이제는 떠나실 때의 어머니보다 20살은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 비로소 먹고 살 걱정, 자식들 키우는 근심, 염려로 여념이 없으셨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머니의 고통과 고난을 진심으로, 구체적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다. 그 시대의 상황이나 형편 언제나 쉬지도 못하고 종종 뛰시는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안타까움이 화자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제목 그대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모思母의 노래다.

⑶ 동시조

가을날 장마 멈춘 오솔길 버섯마을
부끄러워 숨었나요 꼬마 지붕들 밑으로
까르르 웃음소리에
포자 가루 날리네
-「동화 마을」

버섯이 군락을 이룬 조그마한 땅을 보며 그것을 의인화하여 동화처럼 아름답고 재미있게 형상화한 멋진 작품이다.

주홍빛 감 홍시가 혼자 남아 흔들리네
참새가 부리 가득 붉은 단맛 파고 있다
낮달도 부러운 듯이
숨어보며 입다심
-「까치밥」

다 따가고 홀로 남은 까치밥 홍시 하나를 참새들이 맛있게 파먹는 모습을 낮달도 부럽게 보고 있다. 어린이의 감수성으로 읊은 아름다운 동시조 작품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홍시의 효용과 가치를 크게 살려내고 있다.

3. 삶 속에서

⑴ 애환

둥근달 하늘 가득 은빛 빨래 널어놓고
물소리 바람길에 돌아눕는 청정 산림
고라니 새끼 데리고
찬 이슬에 젖는다
-「남대리 새벽」

새벽의 맑은 하늘, 아직도 남아 있는 새벽달, 달빛 그리고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산림의 청정함, 문명이 발을 들이기 이전의 자연의 아름답고 삽상한 자연과 자연에 속한 약하고 순결한 생명들의 모습을 따뜻한 정감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치통에 두 손 들고 의사 앞에 입 벌리네.
입 안의 굉음 소리 천둥 치듯 골 울린다
맘대로 뱉지 못하는
억겁 같은 고행 중
-「치과」

치과 치료의 불편하고 참기 어려운 현상을 짧은 단시조 한 수로 효과적으로 보여 준다.

아내는 한의원에 이 아픈 난 치과 찾아
애마(車)는 시동 말썽 정비공장 가겠다네
노을빛 고운 저녁에
기한 연장 바쁘다
-「동병상련(同病相憐)」

사람이나 물건이나 세월 가면 늙고 낡아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요즘은 문명이 발달해서 가구나 사람의 육신의 각 부분을 여러 번을 고쳐 쓸 수 있다. 100년 전에 비하면 사람은 평균 수명이 두 배 이상 늘어났고,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도 품질이 비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면에서는 변한 것이 없다. 광대무변(廣大無邊)의 섭리 아래서 생의 종말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아쉽고 허무한 느꺼움을 온전히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시의 화자는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 공통점을 통하여 피할 수 없는 느꺼움을 보다 사실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대화가 오가던 창 차마 닫지 못하네
그대의 생전 모습 목소리도 들리는 듯
허망한 톡 창을 열고
소리 듣네, 눈을 감네
-「고인의 톡」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 가까이 카톡 하던 분들이 세상을 뜨는 경우가 생긴다. 창은 그냥 남았는데, 결국 지워 없애야 하겠지만, 그때마다 무심할 수가 없다.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 있고, 화자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느꺼움이 없을 수 없다. 다른 세상으로 떠나간,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감회가 애잔하고 허전하다

⑵ 사색과 성찰

길섶에 민들레꽃 해 가릴라 밟힐세라
살짝이 피었다가 낙하산에 씨를 달고
서러움 하늘에 가득
날아가네 멀리도

노란 꽃 척박한 땅 초록 톱날 보초 세워
높다란 솟대 위에 하얀 결기 둥근 무장
하늘을 치솟는 공수군단
점령 못 할 땅 없지

흰 나래 채비하고 순풍을 기다린다
척박한 고향 떠나 가나안 약속의 땅
미소 꽃 노란 사랑이
에덴동산 열었네
-「민들레 홀씨」

민들레 홀씨가 아주 먼 곳, 하늘이 정해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까지 날아갈 수 있는 홀씨를 준비 완료하기까지의 과정을 문명어를 활용하여 잘 표현하고 있다. 하늘의 축복대로 마음껏 잘사는 내일을 믿고 소망하는 사람의 가치관이 잘 드러나 있다. 전반적으로 메타포가 볼만하며 전체적으로 잘 짜인 작품이다.

눈 쌓인 장독대에 고개 숙인 저녁나절
내 마음 항아리 속 설익은 된장 맛을
애꿎은 날씨 탓만 하긴
부끄럽지 않은가
-「한 해를 보내면서」

한 해를 돌아보면서 계획했던 결과, 곧 일의 성과나 내적 발전의 모습에 대하여, ‘설익은 된장 맛’은 완숙하지 못한 사람 또는 성과를 제유(提喩)로 맛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그 결과를 냉정하게 평가하되 핑계를 대거나 변명하지 않는 정직함, 자신에게 엄격한, 화자의 성숙함이 돋보인다.

봄부터 솔향 나무 그리려는 꿈 부풀어
여름내 내 붓길은 솔가지만 오락가락
넘치는 나의 욕심을
솔 바늘이 찌른다
-「솔 그림을 그리며」

예술작품의 창작 과정에서 그 분야의 자질이나 축적된 기량 그리고 상상력이나 창의력들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은 성실이고 열정이다. 그런데 시의 화자는 열정이 과도한 욕심이나 욕망에 빠지는 약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러한 발견은 깊은 내면적 성찰 끝에 도달할 수 있는 결과인 동시에, 그러한 집중 속에서 영감으로만 얻어지는 깨우침이다. 작품 창작 과정 동안 시인은 줄곧 신독(愼獨)의 경지를 노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앙으로 몸에 밴 겸손의 기품이다.

4. 참여와 풍자

문명의 찌든 자만 달빛마저 가리우고
정월달 대보름도 귓등으로 듣는 세상
우주선 선무당 되어
옥 토끼를 쫓는가

세상의 찌든 먼지 달빛을 흐리는가
이야기 할머니는 등 떠밀려 요양가고
옥토끼 계수나무 터
토지 수용 당했나

제 바쁜 세상 속에 대보름을 잊었나
궁금한 동심들은 엄마 등쌀 학원 가고
고운 결 은빛 나래가
빈 놀이터 지킨다
-「달 이야기」

문명이 일상화되지 않았던 시절, 우리에게는 삶과 자연이 어울려 만든 아름다운 꿈과 동화와 설화들이 있었다. 이 시조는 그것을 짓뭉개고 압도해버린 현대문명의 횡포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자연현상이나 생활 주변에 일어나던 많은 이야기를 통하여, 풍성하고 따뜻했던 동심의 소중함을 시의 화자는 지키고 싶다. 그런 꿈을 자녀들 손주들에게도 되살려 주고, 풍성한 감성과 인정을 복원시켜주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것들에 대한 시인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는 문명 풍자시라고 할 수 있다.

이밥에 쇠고깃국 천리마에 당근 약속
칠십 년 공수표에 속고 사는 우리 동포
고봉밥 진수성찬을
줄 수 없는 허리통
-「이팝나무꽃을 보며」

활짝 핀 이팝나무꽃을 바라보며, 허기 속에서 일생을 사는 북한 동포를 생각한다. 거짓 선동에 속고 인권탄압에 속았다. 100여 년이 저만치인데 아직도 벗어날 길이 요원하다.

부엌 창 멋진 그림 흰 눈 이고 선 소나무
다시 본 그림 창에 꺾여진 청솔 나무
무거운 오합지졸이
지고지순 짓밟네
-「습설이」

화자는 습설(濕雪)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습설이 내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전에는 오히려 싸락눈이 많이 내렸다. 오염 이전 온대 기온이었던 시절 우리나라의 하늘은 겨울에 날씨가 흐려도 그다지 습기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온난화 현상이 생기고, 아열대로 기후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겨울에 내리는 눈도 싸락눈은 없어지고 습설이 많아졌다. 그 결과 겨울에도 나뭇잎이 촘촘히 남아 있는 소나무 등 상록수들은 눈이 나뭇잎 사이에 싸여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찢어지고 부러져서 숲이 망가져 버리고 마는 현상이 일어난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표상이라고 할 만한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크게 훼손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이처럼 금수강산이 파괴되는 것을 참지 못해 한다. 우리 자연 본연의 그 아름다움이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 전래의 자연과 거기서 이루어 낸 본유의 문화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화자의 마음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5. 기행 시조

한마음 품어 오른 우리 땅 능선이라
나누인 물줄기는 동·서해로 강이 되고
정다운 마을들마다
홍익인간 삶의 터

큰 줄기 베개 삼아 드러누운 산등성이
비바람 구름 가는 이 산길의 끝 봉우리
마음은 벌써 천지에
손 담그고 있다네

높은 산 능선마다 연초록빛 길도 고와
진달래 핀 길을 따라 영변 약산 가고파라
철조망 곪은 상처에
무너지는 억장 통
-「대간길」 전문

이 작품은 백두 대간 전체를 어우르는 서시(序詩)라고 할 수 있다. 산줄기가 우뚝 솟아 내리흐르며 동서로 펼쳐지고, 그 사이사이 굽이 따라 흘러가는. 개여울, 강물 따라 골짜기마다 백성들이 모여들어 소박한 삶을 이루어 왔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마다 우리 조상들의 애환과 삶의 이야기가 깃들어 정겹기 그지없다. 아름다운 진달래가 눈에 띄면, 그 꽃길을 따라 소월(素月)이 누렸던 영변 약산을 가고 싶다. 백두 대간의 출발점인 백두산 천지로부터 금강, 설악, 태백으로 웅장하고 수려한 경관들이 출렁거리며 이어진다. 그냥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아득한 옛날 단군성조(檀君聖祖)께서 홍익인간(弘益人間) 곧 만백성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이념으로 이 나라를 건국하셨다. 그러나 이 나라는 80여 년째 삼팔선에 이어서 휴전선으로 갈라져 있다. 그 아픈 가슴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백두 대간 종주Ⅰ」은 지리, 덕유산 권역圈域, 속리, 소백산 권역을, 「백두대간 종주Ⅱ」에서는 태백 설악산 진부령까지의 권역을 도보로 남에서 북으로 걸으면서 쓴 기행 시조들이다.
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국토기행시조에 대하여 일일이 거론하는 일은 지면 관계로 생략하고자 한다. 그러나 권 시인의 기행 시조는 지역마다 봉우리마다 다양하고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주로 계절과 장소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때로는 심미적으로, 때로는 애정과 긍지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지역마다 속해 있는 명승고적(名勝古跡)을 존숭하는 마음으로 노래한다. 지역의 특성과 그곳 선인들의 자취, 그리고 역사적 통찰과 현실적 민족의 문제들을 살핀다. 그의 작품에는 귀하고 소중한 우리 유산을 어떻게 하든지 잘 보존하고 즐기고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이 애틋하게 스며 있다.
요컨대, 그의 여행 시조는 자연사랑, 역사적 문화유산 사랑, 국토 사랑과 애국애족의 간곡한 진정이 다양하고 풍성하게 잘 드러나 있다고 하겠다.
권택범 시인의 기행 시조는 이 외에도 많은 작품이 있지만, 특히 의좋고 봉사와 회의 발전에 충심(衷心)을 다하기로 유명한 더사랑의교회 소망회(시니어 성도들의 모임)에서 함께 나들이하면서 체험한 각 지역의 정서와 분위기를 서정적으로 접근한 시조들도 많이 보인다.

6. 안동 권문

권택범 시인의 본관인 안동 권문(安東權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긍심을 갖고 있다. 당연히 가문의 선조들을 숭모하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정성을 다하고 있다. 가문의 선조님 중에 덕망 높은 여러 인물, 예컨대 축덕, 충신, 충성, 효도를 다 한 명망 있는 선조들에 대하여, 그리고 대대로 이어오는 제례의식(祭禮儀式), 세시풍속을 포함하는 가문의 전통과 내력 나아가 서원, 향교, 향사 일까지 깊은 자랑과 자긍심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것을 후손에게 전수하고자 한다.
그중에 덕망이 높은 분을 찬양하는 시조 한 편과 현대의 젊은 청년으로서 권문(權門)을 위해 공이 큰 젊은 인재를 기리는 작품 두 편만을 살피고자 한다.

문정공 정경부인 고지곡에 산소 있어
후손들 성묘길에 낙동강물 건널 적에
사공은 민초들 모두를
건네주곤 했다네

후덕한 문정공의 사제길로 강 건널 때
은혜를 보답코자 너도나도 업히랬다
민초들 돌보아 베푼
명망 인심 천년향
-「덕의 향기: 고려감찰 규정 휘 희정 선조의 묘갈명에서」

고려시대 감찰 규정을 하던 권희정 선조의 덕을 베풀고 백성들이 그 은혜에 크게 감동하였다는 이야기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벼슬의 지위의 문제가 아니라 덕을 베푼 일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에 더욱 공감이 간다.

비문을 해설하고 원고 쓰는 긴 세월이
기자의 산 경험이 힘이 되고 빛이 났네
뉘라서 조상 공적을
쉬이 알게 하리요

문중들 돌고 돌아 조상 덕망 묻고 물어
칠백 리 역사의 책 펼쳐 묶어 내놓았다
해박한 재능 지식을
족친 함께 나누세
-「시연공 업적」

공파 회장을 하는 35세의 젊은 가문의 인재가, 집안 어른 들의 비문을 연구하고 문중 선조들의 덕망과 업적을 기리는 서적을 저술한 일에 대하여 칭찬하는 작품이다. 가문의 일에 힘을 모으고 싶은 화자의 충정이 잘 나타나 있다.

7. 마무리

권택범 시인의 작품은 어린 시절의 아름다웠던 일들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창작했는데, 한결같이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열심히 살았던 일, 정겨웠던 사람들 이야기, 아름다운 자연에 관한 심미적 관찰 등을 담고 있다. 이 모든 것에 대하여 그의 시조는 항상 그립고 애잔한 심정이 잔잔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의 서정은 맑고 깨끗하며 정답고 따뜻하다. 상황이 어렵고 힘이 약해도 긍정적이다. 때로는 분에 넘치는 용기로 이겨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가 생각하는 힘은 남과 투쟁하여 이기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약자를 돕고 보호하는 데 있다. 더구나 어머니에 대해서는 특히 부친이 안 계셨기 때문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보호 본능을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한평생 힘들게 사신 어머니에 대한 사모의 정이 더욱 애틋한 것 같다.
권택범 시인은 깊은 사색과 묵상 그리고 진지한 성찰을 통하여 겸손하게 돕는 손길이 되기를 소망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협력하며 건설적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웃이나 사회의 잘못된 것을 지적은 하되 비난하지는 않는다. 무너뜨리는 것과 더럽히는 것을 풍자하고 고발하되 날을 세우지는 않는다. 안쓰러운 감정으로 따뜻하고 평안한 사회가 되도록 마음과 힘을 보태려 한다.
자연을 사랑하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기세를 보고 발견하며 누리는 일에 대한 놀라움 과 찬양 그리고 민족적 뿌리에 대하여, 가문에 대하여 긍지와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관찰과 통찰이 남다르며 끊임없이 상상력을 집중하여 창작하고자 한다. 감수성이 섬세하며 투명하다. 따뜻한 인정과 세상에 대한 애정의 눈길을 시조에 담아내려는 의욕과 열정이 남다르다.
그는 앞으로도 쉬지 않고 성실하게 한 땀 한 땀 자신의 시 세계를 구축하여 나아갈 것이다. 이러한 모든 자질과 방향성에 대하여 기대하며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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