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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성경의 이해
· ISBN : 9791191239898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2-10-04
책 소개
목차
서문
간략한 개관
1. 신학적 유용성의 문제
전문가들의 계속되는 불일치
학자 개인의 편향성이라는 고질적 문제
다른 견해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2. 논쟁적 문제들
신학은 얼마나 역사를 필요로 하는가?
성서 본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어떻게 예수를 알 수 있을까?
3. 어떻게 연구를 진행할 것인가
잘못된 작업에 사용되는 잘못된 도구들
일반적인 것과 세부적인 것
예수 전승 어디에나 나오는 기적
4. 곤란한 결론들
그리스도론: 너무 낮거나, 너무 높거나
종말론: 바뀌지 않은 상황
영영 사라진 맥락
5. 개인적 단상들
대립: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고통
상상력: 당위가 존재에 앞선다
종합 판단: 대립하는 것들의 일치
데일 C. 앨리슨 저서 목록
리뷰
책속에서
나는 여러 해에 걸쳐 이른바 ‘역사적 예수 탐구’quest of the historical Jesus에 몰두했다. 연구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내 연구 활동이 지닌 종교적 의미를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평생 교회에 다녔음에도 나는 나 자신을 그리스도교 청중을 향해 글을 쓰는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역사가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역사가로 여겼다. 나는 호기심을 갖고 자료를 뒤지며 발견에 따르는 기쁨을 누리고 결과에 상관없이 정직하게 증거를 평가하려 노력했다. 역사비평 방법을 가지고 나는 1세기 유대인 나자렛 예수를 알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신학적 동기나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러한 관심을 충족하기 위해 애쓰거나 나의 신학적 동기 자체를 면밀하게 검토하려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내가 처한 상황은 내가 역사비평만
을 고수할 수 없게 했다. 한 개신교 신학교 교수직을 수락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장래 목회자가 될 학생들이 신학적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보증 없이는 역사비평 작업을 하는 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청중’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내가 해온 작업들이 지닌 신학적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현대 신학자는 끝없이 나오는 예수에 관한 역사비평 연구물들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테네의 역사적 예수와 예루살렘의 성서적 그리스도가 무슨 관련이 있는가? 두세 명의 역사적 예수 연구가가 모인다 해서,
그들 가운데 성서적 그리스도가 있을까? 이 사안을 두고 누가 옳은지 (정말 옳은 사람이 있긴 하다면) 답하기란 매우 어렵다. ... 이 책의 한 부분에서 나는 역사적 예수 탐구가 몇 가지 중요한 신학적 가르침을 제공했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다. 역사적 예수 탐구는 현대에 등장한 성가신 장애물, 혹은 일시적 불편함으로 일축할 수 없으며 모든 책과 소논문을 다 합산한 신학적 의미의 총합이 0은 아니다. 현대 역사비평은 배교자들이 마지막으로 거치게 되는 학교가 아니다. 동시에 이 책에서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무관심하거나 그 성과를 두려워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이야기할 것이다(이번 장과 다음 장에서 다룰 내용이다). 여러 측면에서 역사적 예수 탐구는 대단히 모호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끝없이 변화하는 다양한 의견 위에서 어떻게 신학 연구를 할 수 있는지, 그러한 연구가 정말 가능한지 그 여부는 명확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여전히 대다수 예수 연구는 이념의 편향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복잡다단한 논증들의 근간을 유심히 살펴보면, 연구자들의 견해차는 각기 다른 철학적 관점, 종교적 헌신과 관련이 있다. 전문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을 수동적으로 기록하는 기계가 아니다. 역사가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역사를 기록하며 능동적으로 자신을 투영한다. 이성은 감성과 느낌, 희망과 두려움, 직감 및 야심과 분리될 수 없다.
펑크가 예수를 “비종교적이고, 불경스러우며, 경건하지 않은” “세속적 현자”로 명명했던 사실을 생각해 보라. 현대 학계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러한 평가는 참신하나 예리하지는 않다. 이러한 평가는 예수가 카슈미르에서 죽었다는 전설이나 예수를 로마 황제에 맞서 칼을 든 혁명적 열심당원에 가까운 인물로 그리려는 시도만큼이나 설득력이 없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이념적 기획(제도화된 종교에 맞서는 용도로 역사적 예수를 활용하려는 열망)이 왜곡된 인식을 낳았다고밖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보수적인’ 학자도 마찬가지 위험에 빠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