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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91240092
· 쪽수 : 480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주로 12학년들이 쓰는 사물함 자리에 새 사물함도 받았고. 익숙지 않은 비밀번호를 돌려서 사물함 문을 여는 데 애를 좀 먹긴 했지만, 일단 문이 열리고 나니 세상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다.
어서 무거운 짐을 덜어야겠다는 생각에, 터져나갈 지경인 책가방에서 책 한 무더기를 꺼내려고 허리를 숙였다가 우뚝 멈췄다.
피처럼 시뻘건 끈으로 단단히 묶은 검은 워커 부츠가 눈앞에…… 나를 향해 서 있었다.
망할.
이런 망할!
설마 아니겠지? 걔만 아니면 돼.
계속 못 본 척하고 있으면 마법처럼 저절로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아주 천천히 시간을 들여 가방에서 물건을 챙겼다. 책을 한 아름 안고, 용기도 박박 긁어모아 허리를 펴며 일어나, 눈앞의 인물을 마주했다.
좀비의 눈. 세상에나. 홍채가 어찌나 연하디연한 회청색인지 대조적으로 새카만 동공은 한도 끝도 없는 블랙홀처럼 보였다. 나를 빨아들일 것만 같은 한 쌍의 블랙홀.
‘비비, 뭐라도 말을 해, 멍청하게 섰지만 말고!’
“음…, 안녕,”
내 목소리가 이랬던가.
상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외로 꼬고는, 싸늘하고 시체 같은 눈으로 나를 천천히 뜯어보기만 할 뿐. 주차장에서 스케이트 보이의 얼굴을 땅에 처박기 직전에 보였던 바로 그 눈빛으로.
힘겹게 침을 꿀꺽 삼킨 내가 먼저 침묵을 깨트렸다.
“미안, 무슨 용건이라도?” (1장)
“생일 축하해!”
적어도 받아주기는 하겠지. 어쩌면 고맙다고 할 수도 있고. 그러면 그때 그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환하게 웃던 미소를 또다시 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잔뜩 찌푸려져 있던 나이트의 미간이 펴지더니 놀란 듯이 눈이 커졌다. 빙하처럼 싸늘한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숨을 흡 들이마시는 소리와 함께.
고마움과 놀라움이 뒤섞인 표정에 가슴이 다 아릴 지경이었다.
예상한 것보다 더 참혹했다. 해골맨 스킨헤드는 여태 살면서 선물이라는 것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나 보다. 상처받기 쉽고, 외롭고, 가슴 깊이 슬픔을 간직한 소년의 얼굴을 멍하니 보고 있자, 내 귀에는 나이트의 중무장 갑옷이 쩡그렁쩡그렁 요란스럽게 허물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나이트는 얼른 도로 미간을 찌푸리며 너 지금 미쳤느냐는 눈빛으로 날 쏘아보았지만. (1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