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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1262933
· 쪽수 : 167쪽
· 출판일 : 2022-01-01
책 소개
목차
1부 종이를 구기면 채송화가 피어납니다
외포리 여인숙
교동에 살았다
쓸쓸한 전성기
스무 살 무렵
성장통
너는
선물을 받으면 좋겠어
치마의 원주율
허물어지는 새
반복되는 반복이었다
덩굴장미처럼 아가야,
나는 엉망입니다
당신의 플루토
천사
난정초등학교
2부 그녀 등에 새겨진 물고기의 뼈를 본다
새의 발에 신발을 그려 주고 싶었다
뼈로 만든 바이올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
없는 당신
웃는 사람
등에 새겨진 물고기의 뼈
자기장
바람의 형태
동그라미 속의 동그라미
나는 죽어서 악보가 되겠습니다
쓸쓸한 사람들은 구름 속에서 자기 얼굴을 자주 파내곤 한다
감나무 아래에서
죽산포
원기소와 까만 빵
고요하게 떠다니는 소리들이 별자리를 만들었다
3부 아버지가 와서 내 손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다
기일
스위치
비문증
종이 인형
신경치료
아빠 심기
마리오네트와 함께 춤을
라일락꽃 속에서
김매는 사람
보신탕 끓이는 남자
분꽃
엄마가 상 받던 날
수정산 우물로 떨어지던 함박눈
샴
찢어진 조각들을 이어 붙이며
분갈이
4부 난 진화하지 못해서 예쁜 동물
앵무새 되기
낙타와 눈곱
싱글맘
완충지대
오빠, 그뿐이야
원 플러스 원
토르소
액자
실수 같은 봄이 찾아와
다정한 뱀
쓸모없이 중요한 말들을 중얼거린다
미스터 플라워
자화상
자위
해설
그림자의 기억, 저 빛나던 그때로부터
- 이병국(시인·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낮은 굽의 신발을 신어도
곧게 걸을 수가 없어서 나는
뾰족뾰족 무한다각의
원주율을 가지고 있어서
그 꼭짓점들 중 어떤 것들은
무디게 갈아내고 싶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보지만
캄캄한 밤들만 진열되어 있어서
조금씩 벌어질 수밖에 없는미래들과
더 먼 미래들
나는 쓸모없는 모서리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치마의 원주율」 부분
아빠 기저귀를 갈아주는데
항문에서 찌그러진 달덩이가 굴러 나왔다
파내도 파내도 계속 나오는 달덩이
아빠는 점점 가늘어졌다
아빠 속을 다 파먹은 벌레들이 살이 올라
달덩이 흉내를 내며 아무렇게나 빛났다
가난도 아빠를 파먹고 무성하게 자랐었는데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일수록 부지런히 자란다
아빠가 헝겊 인형이라면 배를 가르고
가증스런 빛들로 가득 찬 아빠의 장기들을
과일칼로 세심하게 도려내고 싶었다
그 속엔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들어 있을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평생 아빠에게 달라붙어 있던 허울 좋은 친절들과
가족들에게만 엄격했던 회초리들과 엿 같았던 고집들을
파내는 일, 아빠 똥구멍에서 병든 달덩이를 채굴하는 일
한때 생명의 기원이었을 아빠의 쭈글쭈글한 고환 아래가
축축하지 않도록 새삼스럽게 잘 닦아 주는 일
아빠는 하루에 여덟 번씩 기저귀를 갈았다
아빠가 가벼워질수록 내가 무거워져서 행복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부분
없는 당신은 백목련 나무처럼
불쑥불쑥 발작하듯 꽃을 피워내
목련꽃처럼 튀어나오는 당신의 하얀 발
서늘하게 내 발등에 포개지는 밤
나는 없는 당신이 살던 집의 유리창들을
모두 깨 버리고 싶어져
당신이 부르던 나의 이름이
자꾸만 엇박자로 미끄러지며
후드득 발등을 관통해
없는 당신이 아예 없어지는 건 무섭지만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 밤
창밖에 우두커니 매달려
나를 내려다보는 보름달 속에선
목련나무 가지 같은 당신 손가락들이
꽃잎을 밀어내고 있어
달 속에서 떨어지는 꽃잎들이
깨진 유리 가루처럼 반짝거리고
아무것도 잡을 수 없는 나는
그 먼 풍경들을 바라만 볼 뿐
없는 당신이
뜬소문처럼 나를 바라보며 지나가고 있어
-「없는 당신」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