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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희곡 > 한국희곡
· ISBN : 9791191262988
· 쪽수 : 100쪽
· 출판일 : 2022-03-07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오래되고 낡은 러브호텔, 물침대 위에 아빠가 자고 있다.
음소거 된 티브이 화면의 불빛이 잠든 얼굴을 비춘다.
엄마, 지친 모습으로 한 손에 전단지를 든 채 돌아와 그 옆에 털썩 눕는다.
그 무게에 물침대가 출렁이지만 아빠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엄마는 일부러 몸을 들썩거리며 아빠를 살핀다.
아빠 출렁이잖아.
엄마 죽은 줄 알았어.
아빠 꿈을 꿨는데.
엄마 죽은 줄 알았다고.
아빠 긴가민가 싶을 땐 콧구멍 아래 손가락을 대 봐.
(엄마의 두 번째 손가락을 잡고 자신의 콧구멍 아래 대며) 어때?
엄마, 얼른 손을 떼며
엄마 기분이 나빠. 뭔가 기분 나쁘게 축축하고 뜨끈한 바람이 닿는다고.
아빠 그래, 그럼 살아 있단 거야.
부고편지 그 애가 죽었어. 이 말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써. 아직 유효한지 모르겠어. 이 죽음이, 혹은 죽음의 소식이. 어쩌다 이런 편지가 나한테까지 왔나 당황스럽다면, 나도 마찬가지야. 무서웠어. 내가 이 부고의 마지막 주인이 돼야 한다는 게. 그냥 흘려 버리고 싶었지. 행운의 편지는 이런 찜찜함 덕에 그렇게 멀리 갈 수 있었을 거야. 어쨌든, 죽었대. 아니, 죽었을지도 모른대. 거의 죽을 지경이라나. 죽은 거나 다름없다나. 내가 어떻게 알겠어. 소식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건너 건너 여기까지 왔고, 어쩌면 너는 이 부고를 받는 가장 마지막 사람일 거야. 어쨌든, 우리가 알던 그 애는 이미 죽었거나,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 가고 있거나, 확실한 건 곧 죽을 거라는 거야. 그러니까 부고 편지지. 늦든 빠르든, 네가 이 편지를 보았을 땐, ‘죽음’과 그 애를 떨어트려 놓을 순 없을 테니까. 아직 이 소식을 받지 못한 누군가 중에, 알아야 할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너도 편지를 써. 이 죽음을 전해. 그 애의 부고에 대해서.
아빠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래.
엄마 뭐?
아빠 인간 중에서도 진짜 인간이 있고, 인간이긴 하지만 인간 아닌 게 있대.
엄마 (잠시 아빠를 쳐다보다가) 취했어?
아빠 기준이 바뀔 거래. 인간의 기준이.
엄마 그럼 얘는?
고대의 부모들, 잠시 아이를 쳐다본다. 딱히 해 줄 말이 없다.
아빠 어쨌든, 분류 목록이 있나 봐.
기준에 따라서 다시 나눌 거래.
엄마 그럼 기준에서 미달하면? 목록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빠 지워지겠지.
엄마 지워진다고? 얘는 여기 있는데?
아빠 그러니까 여기 있긴 한데, 없는 거나 마찬가지래. 거기 있어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