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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1697117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2-10-15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04
기억의 창 10
웃음소리 36
얼룩 70
환지통 94
황기 씨는 어디로 갔을까 128
냄새 162
타인의 얼굴 194
숲으로 가는 길 220
아내의 여자친구 256
푸른 반점의 사내 278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지금, 조용히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세상과 간단히 이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에 홀로 깨어나 컵 속에서 소리 없이 자라고 있는 양파의 실뿌리를 바라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알맹이의 양분을 잃어버리는 줄 모르고 푸른 싹을 키우고 허연 뿌리를 자라게 하는 건 못 견딜 일이다. 물렁해져 간신히 구근의 형태를 유지하지만 이미 부패의 냄새를 풍기는 양파가 자신처럼 여겨지곤 했다. 눈앞에 강물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경사진 둑을 조심조심 내려간다. 경사가 심하고 턱이 깊어 위험해 보이지만 나는 간단히 뛰어내린다. 물결이 발목을 섬뜩하게 적신다. 한 발짝을 떼자 갑자기 허벅지까지 빠진다. 몸뚱어리가 기우뚱한다. 물먹은 치맛자락이 물귀신처럼 다리를 휘감는다.
- 「기억의 창」
이명처럼 귓속에 위잉—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경비원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환지통을 앓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녀였구나. 존재하지도 않는 남편의 고통을 아파하는 환상지에 빠진 그녀…….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면 기억마저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남편의 허상을 안고 그리 힘겹게 아파한 것인가. 그녀의 남편에 대한 환상이 내 가슴에 아픔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나는 멀리 숲 쪽을 바라다보았다. 마침 지고 있는 일몰로 한쪽 능선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흡사 숲의 한 모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때, 등허리가 서늘해지면서 휭하니 바람이 불어왔다. 갈빗대 안쪽이 스멀거리기 시작해서 급기야는 가려움증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만질 수도,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그 깊숙한 곳이 참을 수 없이 가려워지는 것이었다.
-「환지통」
산책에서 돌아와 나는 컴퓨터를 켜고도 자서전 항목을 누르지 않았
다. 당분간 나는 자서전을 쓰기가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칠십이면
지난 삶을 회고하며 자서전을 쓰기엔 아직 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의 연극배우 같은 명랑한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문득 그녀를 다시
보고 싶어진다. 그 생각은 소리 없이 점점 커진다. 내일은 그녀를, 아
내의 친구가 아닌 여자로서의 그녀를 만나보고 싶다. 그녀를 통해 아
내의 다정했던 손길을 느껴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의 여자친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