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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1897142
· 쪽수 : 119쪽
· 출판일 : 2022-02-01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질긴 숨 – 11
금지된 삶 – 12
나무는 어둠을 들었다 – 14
만발하는 혀 – 16
수치심—후기 – 18
환태평양 조산대 – 20
해미 – 22
저녁의 유해들 – 24
수치심—숨 – 26
동거—미래파에게 – 27
커튼의 존재 – 28
안부 – 30
귀가 – 32
상대성 – 33
중력 – 34
시체(詩體) – 36
잊어버리는 일 – 38
수치심—퇴화 – 39
아스라이 – 41
모호성은 무한대의 혼돈에의 접근을 위한 도구로써 유용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 42
수치심—행선지 – 43
문밖에서 – 44
용서 – 46
떠나지 않기 위해서 – 47
악력 – 48
기대수명 – 49
개성 없는 세대 – 51
제2부
적의의 정서(正書) – 55
제3부
상쾌한 공기 – 59
역류 – 62
마중 – 64
흑피 – 65
나를 거부한 시에게 – 66
음어 – 68
어쩌면 – 70
가속도 – 72
모두 죽는다 – 74
파종 – 75
섬광 – 76
붉은 달 – 78
수치심—미조(迷鳥) – 80
장마 – 81
마술사의 진심 – 83
뒷모습 – 85
은행의 구애 – 87
오후 – 88
비겁한 피부 – 89
물음의 밤 – 91
그물의 번식 – 93
내리막길 – 95
종점 – 96
동일성 – 98
가족의 건축 – 99
공터의 둘레 – 101
더 나은 세상 – 102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 103
해설 박혜진 나의 적의, 당신들의 전위 – 105
저자소개
책속에서
적의의 정서(正書)
한마디 이름 앞에서는 누구나 조급해진다 휘몰아치는 욕조 속에서 꺼내 달라고 나는 숨을 헐떡인다 청테이프를 물어뜯는 아가리들을 본다 뜯다 만 몸이 있어서 변명하는 자의 눈꺼풀은 주눅이 든다 욕조가 깨져서 슬프다 미끄러져 나오는 시체들을 닦는다 생글거리며 날아오르는 방울뱀만도 못한 가족을 꾸리고 있다 잿빛 기침 하나가 달아난다 식민지의 식민지에서…… 꼬리를 문 식민지들은 너와 같이한 다툼에서 애용하는 인사말이 되었다 내 손은 주머니 속 화약과 총총한 푸른 항구를 동시에 펼친다 두 눈의 불순물에서 십자가까지 끊어진 인연을 되찾기 위해 무릎은 갖가지 길을 파헤친다 주저앉은 파도에 맞서는 동안 나의 이름은 터지고 말았다 낮과 밤도 없이 쓰인 여러 편의 몸은 설교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음어
혀는 진흙이 굳어진 것이다. 늪은 부푼 혀들이 모여서 생겨났다. 바위도 그 견고함도 해방을 원한다. 늪은 말을 삼키고 있다. 나는 늪이 마르기를 기다린다. 내 시야가 넓지 않다는 것을 안다. 당신은 내가 그어 놓은 원 안에서 무엇이라도 세울 수 있다.
움켜쥔 손은 대부분의 물체를 끌어당긴다. 늪이 한 사람을 빨아들이고 새 생명을 뱉어 내듯이. 살아남은 당신은 안개가 아니다. 숨을 참으면서도 빛을 발하는 곤충의 후손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의 골격을 입고 하나의 정경을 바라보며 식욕을 느낀다. 두 눈을 크게 뜨며 산파의 머리를 바친다.
배 속에서 올라온 진흙이 과거의 계절들을 뒤섞고 있다. 죽은 바위들에게는 이름이 없으므로 계절도 희미해진다. 바위들의 과거는 눈앞의 그 안개일 뿐이다. 긴 주둥이로 산란 중인 여름에서 수은을 빨아올린다. 살 속으로 스며들어 심장을 부풀게 하는 생명과 맞닿은 기억이다. 늪에서 유래한 것들은 마찬가지로 어느 공기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
우리의 세포는 무한히 증식한다. 숲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세포와 세포 사이에 조그만 공간이 있다. 그곳에 우리보다 더 오래된 것들이 산다. 손가락 끝에 눅눅한 바람이 고인다. 당신은 원념의 바다에서 파생된 존재이다. 늪이 끓어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