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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1906165
· 쪽수 : 138쪽
· 출판일 : 2023-02-10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13 수평에서 멈추다·2
14 오래된 길
16 102동에 사는 마리오네트
18 남강, 저 유등
19 눈물모양의 말투
20 돌탑 쌓으며
22 정전停電·1
24 미각운운味覺云云
26 해무\海霧
28 야간비행夜間飛行
30 폐쇄된 철길
32 유통기한
34 풍경을 앓다
36 남강다목적댐
38 진양호晉陽湖·3
40 선線·1
41 반려등대
제2부
45 꽃구경
46 해거름은 붉은 꽃처럼 시든다
48 언제나 섬
50 감기를 달고 사는 시간들
52 배우기 전에 배우는 것들
53 스키드마크
54 암자庵子의 하루·1
55 암자庵子의 하루·2
56 나의 길
58 빈집
59 비린내
60 마추픽추에서 온 엽서
62 남강南江도서관
63 백목련·1
64 여파餘波의 파장波長
65 흉부근막통증증후군
제3부
69 노동기勞動記·1
70 나는 나의 적절한 가면假面인가
72 그림자를 빚다
74 진주대로晉州大路
76 정전停電·2
78 자화상
80 딸 생각·1
81 딸 생각·2
82 초원으로 가자
84 최후의 다이어트
85 주머니에 먹먹히 있으라고 주먹
86 마당의 하루
88 가포架浦를 찾아서
90 갈대꽃
92 내시경內視鏡
94 좋은 날
95 한 사람
제4부
99 겨울바다
100 징조 몇 가지·4
102 선線·10
104새들의 발자국·1
106 유년의 하늘
107 숙취宿醉
108염색약
110달동네
111시인詩人
112낙엽落葉과 낙심落心사이
113 금연
114 수건의 생일
116 액자의 전기傳記
118 아카시아 꽃
119 그네
120 일구육사一九六四·1
| 해설 |
123 감정의 파장波長과 시어의 전이轉移/ 성선경(시인)
저자소개
책속에서
수평에서 멈추다·2
천공穿孔난 천공天空
구름날개에 업혀
수평선에 내려앉는다
아, 저러다 하늘이
바다처럼 깊어지지는 않을까
바다처럼 헛딛지는 않을까
제 근심에
제 가슴에 손 얹어보는 수평선
하늘의 눈물샘을 봐버린 사람은
눈길을 수평선에 둘 수밖에 없다
102동에 사는 마리오네트
다치지 않은 척하고 돌아오는 날이 많을수록
안고 자도 허전한 그림자
돌아오지 않는 사람보다 더 바짝 끌어안을수록
나는 내가 안으로 부식된다
나보다 못한 나의 절반을 데리고 사는 나에게
절반보다 나은 게 없는 절반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부탁도 거절도 여전히 나는 내가 어렵다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은 적 있는 절반은
대리기사가 건넨 어둠을 거스름으로 쥐고
발밑에 새까맣게 쓰러져있는 102동의
계단을 분리하지 않고 수거함에 버리는 게 일이다
센서 등燈이 잃어버린 파티처럼 깜빡이면
몸을 뛰쳐나갔다 다시 나를 파고드는 나
그 이식이 너무 저릿한 나머지
발소리를 정복한 고양이의 영역에 마려운 독백을 지린다
밤마다 버려지는 아파트와
그림자의 뼈가 부러지고 있는 아이들
밤마다 버리고 싶은 꼬리 없는 나와 꼬리치는 나
가장 낮은 곳이 언제나 가장 높은 곳이었듯
나는 멀리 있는 나보다 더 깊은 나를 멀리하고 있다
달빛에서 뛰어내린 고양이의 척추를 본 사람은
살아온 보폭과 살아갈 걸음수가 닮은 또 다른 나
그리고 어른들이 불러들이고 남은 아이들뿐이다
떨어질 때, 꿈을 꼬집어서 살아 돌아온 아이가
꿈자리를 털어내고 있는지 작은 창이 잠시 아른댄다
나의 흉터는 뛰어내릴 때 다친 것들이 아니라
나에게서 내가 달아날 때 다친 것들이다
마추픽추에서 온 엽서
마추픽추에서 엽서를 보내놓고 저세상으로 떠난 자네에게
떠나기 전의 자네만 나에게 남겨놓은 자네에게
여태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네
계단을 오를 때마다 그리움처럼 숨이 차는 그곳에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눈물샘이 차오르는 그곳에
자네를 두고 올 수 없었던 나는
엽서를 받았을 때의 나의 나이만큼 지났건만
아직 가본 적 없는 마추픽추에 나는 살고 있다네
사라진 왕국의 증거라도 지키는 겐가
마지막을 지킨 돌들의 침묵이 증거만큼 닳고 있는데
마지막을 마지막이라 말하지 않은 자네의 증거는
문짝 없는 태양의 문밖 어디에도 찾을 길 없더군
한때,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사랑했던 시절
그 서늘한 산기슭 바람과도 같은 사랑을 가슴에 품고
콘도르처럼 울음을 가두고 살아가던 우리였는데
아픈 육신의 의지로 콘도르 춤을 추며
진정 이 세상으로 날아 올 순 없었던 겐가
내가 가본 적 없는 마추픽추는 이 세상
내가 가보고 싶은 마추픽추는 저세상
이 세상에서 잃을 것과 사라질 것에 대한 염려로
자네의 지워진 얼굴을 왕국처럼 더듬고 있는 아침
내가 쓰려는 마지막 답장처럼
자네도 마지막 내게 다녀가려고
빈 가지에 걸린 햇살을 저리 흩어놓는 겐가
우편함 돌계단에 앉아 한 줌 햇살의 침탈로
엽서처럼 희미해지고 있는 내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