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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079349
· 쪽수 : 165쪽
· 출판일 : 2022-08-30
목차
제1부
여우비 오는 날 은여우는
손수레의 휴일
외출
내 안에 타인만 꺾고
해 ‧ 달 ‧ 별
새벽은 또 오고
혀 깨물다가
허상
마음의 산
비움
솟대
반송返送
춤추게 하려면
나비의 춤
때가 되면
내심
나는 해고다
내 그림자
제2부
봄날
나무의 꿈
가을, 사랑앓이
소리 없이 읊어지는
꽃양귀비를 보며
샐비어꽃
분꽃
압화押花
난蘭 앞에서
감꽃
이팝나무 아래
타래
계절의 경계에서
빛의 순수여
갈바람은 갈대에
환몽幻夢
겨울비
폼페이의 연인
제3부
숲을 보면서
백비
어느 칼잡이들에게
절대음감
탈출속도
달항아리 깨진 날
길들이다
둘의 관계
뱁새 다리, 황새 다리
무통
빗줄기도 뼈가 있다
음모陰謀
돈의 품성을 묻다
줏대 없는 목
흰 또는 검은
소회所懷
칼춤
투표
차이
제4부
무수無愁골 넘어가는 날
선비의 길
비양도에서
바람과 바위의 관계
옥정호
영벽정映碧亭에서
세량지에서
불회사佛會寺 가는 길
성삼재를 넘으며
마운대미에 가는 이유
아가미 닮은 귀
소호동에서
일상 엿보기
아프지 않게
이별 노래
바람은 알아야 했다
꼰지발 하고
제5부
무장댁 글눈 뜬 날
복호리 사람들 4
아버지 웃음에는
음미
꽃살문 열리듯
사랑의 무늬
삶의 무늬
어떤 무게
갓바위, 침묵을 말하다
말바위의 언어
별꽃 피고
결에는
길고양이
방어
강물이 되고 싶다
섬진강 붉덩물
저자소개
책속에서
내 안에 타인만 꺾고
나의 무명無明은
낫살이나 건사하자고 통통해진 목
한 번도 꺾을 줄 몰라서 왔다
빳빳하게 치켜뜬 째진 눈꼬리
헛된 사랑놀이 즐기려 영혼을 속였다
진실로
상처받은 한 영혼 사랑해 본 적 없고
얍삽한 세 치 혀는 단물만 빨고 있었다
그 버릇 어디 가겠나
쎈 척하니 진짜 쎈놈이 왔다
내 안에 나를 꺾지는 않고
내 안에 타인만 꺾으려 했나 보다
나무는
바람의 무게에 수없이 꺾였기에
상처에 흐른 수지樹脂 향을 품듯
나이 무게만큼 꺾으며 살아야 했다
나를 보려거든
너를 꺾고 오라 하셨듯이.
여우비 오는 날 은여우는
여우비 통통 튀며 섬진강 건너온 날
범골에서 숨어 살던 은여우 내려와 재주 부렸다
연둣빛 포플러 잎사귀는 팔랑이었다
“황소 눈깔은 주먹만 하대”
“아냐, 아무리 커도 탱자만 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마냥 우긴 그때가 열 살이었다
한 무리의 애들은 꼬리 자르기를 하면서 앞서가고
은여우, 나보고 저만치 떨어져서 홀로 걸어라 했다
애들은 고구마꽃 핀 밭에 숨어 서리하고
나는 토라진 마음을 아직도 풀지 못한 채
홀로 걷는 길은 질긴 침묵이었다
은여우는 어쩌면 그때 말했을 것이다
“너는, 너의 선택적 침묵으로
말 없는 복종에 저항하고 있는지도 몰라”
여우비 유리벽에 퉁퉁 부딪힌 날
도시살이에 맛 들인 은여우 얄팍한 잔꾀만 늘었다
밟히면 자르고, 밟히면 또 자르려고
도마뱀처럼 꼬리는 자꾸 자라났다
포플러 잎은 연둣빛 벗고 제법 성숙한 초록이다
은여우는 말 없는 복종을 원하는데 난 침묵만 한다
익숙한 변명 반복하여 참말인 듯 속이고 또 속인다
속셈 훤히 드러났는데 또 그 속셈 부린다
진짜 꼬리 감추려고 변신에 변신을 하는데
꼬리 밟기 놀이에 빠져 신명만 내고 있었던 거다
여우비 오는 날 은여우는
내 열 살 때 그리움마저 소환해 갔다.
삶의 무늬
노을빛 고와야
하늘 무늬가 아름답듯
영혼이 맑아야
삶의 무늬 곱게 물든다
꽃자리에 씨앗을 남기려
꽃잎은 시들어가고
나이테를 단단하게 남기려
나뭇잎은 물들어가듯
삶의 무늬 하나하나에
시퍼렇게 물든 청춘 있다
밑바탕은 텅 빈 것처럼
보드란 색을 입혀야 한다
누구나
저물 삶의 무늬 그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