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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91192411347
· 쪽수 : 156쪽
· 출판일 : 2023-07-17
책 소개
목차
새삼 강한 빛과 별
짐승의 여름 방학
아프기로 마음먹었다
완주의 끝
구슬 감추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언니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으려고 했단다. 말로만 듣던 성적 비관 자살 시도가 우리 집 이야기라는 게 믿어지지 않아 인터넷을 뒤졌다. 어디에서도 언니의 소식을 찾을 수 없었다. 토막글은커녕 한 줄 기사로도 나오지 않았다. 자살 시도가 그만큼 흔하게 일어나는 사건 사고인 걸까? 무엇보다 나는 언니가 그런 일을 벌였다는 데 무척 놀랐다.
인서울 의대. 그게 목표가 아니라면 언니는 이미 대학생이 되고도 남았다. 고집스레 삼수까지 하는 게 내 눈에는 참 융통성 없어 보였다. 공부한답시고 까칠하게 구는 건 못 봐줄 노릇이지만, 부모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언니가 미련한 바보 같아 불쌍하기도 했다.
모의고사 날, 언니는 학원 옥상에서 난동을 부리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 엄마는 뛰어내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한 말을 하고 또 했다. 아빠에겐 말하지 말라며, 나만 입 꾹 다물면 된다고 했다. _<새삼 강한 빛과 별>
형은 고1 때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애리조나주로 유학을 떠났다. 나라에서 학비를 대 주니 돈이 들지 않는다며 부모님은 뿌듯해하며 잔칫집마냥 친척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 나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하는 형을 대신해 친척들이 묻는 말에 대변인처럼 대답하며, 건더기는 뵈지도 않는 칼칼하고 매운 해물탕 국물만 진탕 들이켰다. 속이 얼얼했다.
일 년이 다 되어도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문화 체험 명분으로 간 단기 유학은 일 년 과정이었지만, 좀 더 공부하고 싶다며 부모님을 설득해 사립 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로 부모님은 형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새벽에 시작한 일과가 다음 날 새벽에 끝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두 분이 통장을 들여다보며 한숨 쉬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중3 여름에 나는 자연스럽게 빅 데이터 정보 산업 고등학교에 원서를 냈다. 빨리 사회에 나가 돈 벌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대놓고 표현은 못 해도 내심 반가웠을 것이다. 내가 일반고가 아닌 특성화고를 지원한 이유는 가족을 위한 희생과 배려, 화합, 뭐 그런 차원이지, 절대 공부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이제 와선 후회하지만. _<짐승의 여름 방학>
엄마는 자기가 입시생인 것처럼 항상 여유가 없었다. 어린 나를 키울 때도, 아빠를 떠나보낼 때도, 나와 떨어져 지내는 지금도 두 발을 동동거리며 종횡무진 바쁘게 움직였다. 휴대폰을 뺏으러 온 날도 엄마는 47점짜리 수학 성적에 분노하며 342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운전해서 왔다.
마침 그날은 할아버지 제삿날이었다. 가족들은 깜짝 놀랐다. 엄마는 제사나 명절에도 수업 때문에 바쁘답시고 고향에 온 적이 없었으니까. 할아버지 영정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도 엄마 본심은 딴 데, 47점짜리 수학 성적표에 가 있었다. 엄마가 자기 아빠인 할아버지의 제삿날조차 기억 못 하는 게 불쌍했다.
엄마와 함께 살던 때는 학원에서 학원으로, 해가 달로 바뀔 때까지 달리기 선수처럼 뛰었다. 수유동 아이가 대치동 아이처럼 생활하는 건 힘들었다. 동네 애들처럼 학원 대신 학습지나 풀면서 티브이 보다 잠들고 싶다고 매번 찡찡거렸다.
그러면 엄마는 자기는 스무 살에 서울로 와서 직접 돈 벌어 대학 다녔다며 나를 쏘아보았다. 적어도 나는 편하게 서울에서 살고 있지 않냐는 것이었다. 그런 뒤 길게 이어지는 연설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에서 살아남아 기필코 정상에 우뚝 설 그날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쑥 나온 입을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_<아프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