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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580234
· 쪽수 : 100쪽
· 출판일 : 2024-02-14
목차
1. 옛말
옛말 | 13
슬기슬기사람 | 16
일없다 | 19
밤눈 | 21
둥둥이 | 23
터앝 | 25
돌 도둑 | 26
돌 | 28
오죽헌烏竹軒 | 29
설날 내기 | 31
2. 어휴!
어휴! | 37
큰 부자 | 38
[독빽] | 39
밥맛 | 40
…… | 41
개나발 | 42
애 잘 낳게 생겼네? | 44
끙! | 45
상희구 | 48
유재영 | 52
호미 | 54
욕찌거리 | 55
알로까는 놈 | 56
속도 | 57
봄비 | 60
너와 나, 그대와 우리 | 62
두렵고 설레는 마음으로, 예까지! | 65
3. 후집後集
빈모牝牡 | 71
개코 | 72
장인수 | 73
곁눈질 | 74
조용한 서울 | 75
꿈 | 76
눈물로 간을 한 마음 | 77
4. 속삭임
속삭임 1 | 81
속삭임 2 | 83
속삭임 3 | 84
속삭임 4 | 85
속삭임 5 | 86
속삭임 6 | 87
속삭임 7 | 88
속삭임 8 | 89
속삭임 9 | 90
발문┃마지막 속삭임┃고형진 | 91
연보┃ 97
저자소개
책속에서
잠결에도 꿈결에도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내 옛말의 들머리는
백운면 평동리 바깥평장골 169번지
호적등본만 한 우리 집이다
남아있는 사진 하나 없지만
그냥 잿빛으로 눈앞에 떠오르는
내가 태어난 우리 집이다
1951년 정월 상주로 피란 갔다가
봄이 되어 돌아오니
흔적 없이 사라진 우리 집!
전쟁이 치열할 때
군용 비행장을 건설할 셈으로
동네를 다 불살라버렸는데
원주 근방까지 쳐들어왔던
적군이 후퇴하자
군인들이 다 팽개치고 북진했다
빨갛게 불타 죽은
향나무 한 그루가
잿더미가 된 우리 집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봄 내내 움막에서 살았다
참꽃이 붕알산을 물들이고
초저녁부터 부엉이가 울었다
가을 되도록
나물죽으로 목숨을 부지하며
품앗이로 외양간만 한 새집을 지었다
맑은 샘물이 솟는 앞산 아래
바깥평장골 우리 동네는
어깨 겯고 다시 일어섰다
지금도 눈 감으면
쇠버짐 부스스한 내 짱구도
침 발라가며 쓴 몽당연필도
도렷하게 잘 보인다
어머니의 밭은기침에도
문풍지가 울고
한밤중 요강에 오줌을 누면
달걀빛 처마에 깃든
참새가 잠을 깬다
해와 달은 쉼 없이 뜨고 졌다
백마고지 전쟁터에 나간
큰형한테서 편지가 온 날이면
네 남매가 모여앉은 두레반에서
어머니가 편지를 읽어주었다
그날 밤 장독대 정화수에는
얼음꽃이 뾰족이 피었다
눈사람의 코가 툭 떨어져서
숯이 된 아침
나는 큰형한테 편지를 부치러
장터 우체국으로 뛰어갔다
눈발이 선 하늘을 막아서는
우체국 앞 커다란 향나무가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 「옛말」
췌장, 담낭, 신장, 폐, 십이지장에
혹 같은 게 보인단다
아아, 나는 삽시간에
이 세상 암적 존재가 되는가 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나는 마음이 외려 평온해진다
갈 길이 얼마 남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가는 것보다야
개울 건너 고개 하나 넘으면
바로 조기, 조기가 딱 끝이라니!
됐다! 됐어!
― 「속삭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