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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580241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4-02-28
목차
1부
봄날은 울렁거린다 | 13
느닷없이 애플파이 | 14
불꽃놀이, 불꽃놀이 | 16
시차 적응 | 18
뜯긴 거미줄 | 19
비누의 시간은 남는다 | 20
오! 먼지 | 21
들켰다 | 22
기원으로 출근하는 남자 | 24
비겁함과 부질없음의 사이 | 26
흐르지 못한 피 | 28
혈서 | 30
침묵으로 말하는 사이 | 31
바람이 운다 | 32
죽비를 들고 | 34
낙타커피 | 36
대답 없는 아내 | 38
2부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어 | 41
무슨 말을 남길까 | 43
(그 경계)―앤디 워홀의 타임캡슐 | 44
(그 경계)―무엇을 숨겼나 | 45
(그 경계)―어머니의 서랍 | 46
(그 경계)―마음 띄우기 | 47
(그 경계)―뿌리 내릴 곳 | 48
어루고 달래서 | 50
잊지마, 신발 | 51
행복한 소일 | 52
비워내기 | 54
즐거운 식탁 | 56
당신 참 장해요 |58
장엄미사 | 59
첫눈이 온다고 | 60
철렁! | 61
프로필 사진을 다시 찍다 | 62
3부
나의 명상법 | 67
머리카락 한 올 때문에 | 68
우주를 헤엄치는 문양을 새기고 | 69
없는 입 | 70
시, 너라는 종교 | 71
딱, 한나절만 호갑투 | 72
이모티콘에 대한 감정 | 74
1인분의 자리 | 75
바람의 발자국 | 76
오방신장무를 춰 볼까 | 78
연필로 쓰기 | 79
황홀한 작별 | 80
탓은 한쪽으로 기울지 않아요 | 81
어둠의 배후 | 82
7월의 악어 | 84
인연 | 86
봉숭아꽃 | 87
4부
신사와 닭발의 꿈 | 91
한잔으로 기울다 | 92
그런 떨림, 그런 메마름 | 94
거룩한 등| 95
엄마가 보인다 | 96
때문에, 때문에 | 97
거미의 생각 | 98
그 집 앞에 멈춰 섰다 | 100
누군가의 팬이 되어 | 102
닫힌 귀 | 014
비백飛白을 읽고 | 105
그 섬에 가고 싶다 | 106
후미당後美堂 | 108
몹쓸 병 | 109
풀어진 끈을 묶으며 | 110
해설┃사물의 사랑, 정신의 윤리┃이숭원 | 112
저자소개
책속에서
율동공원으로 꽃구경 간다
목 길게 늘인 번지점프대
휠체어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
봄볕에 웅크렸던 발가락을 편다
목련꽃 피어나는 한낮
길은 사방으로 뻗어 있다
올봄엔 가지 못한 길도 가 볼까
내가 길이 되어 온 세상 휘휘 휘돌아
후투티가 날아온다는 그 섬에 가 살까
훈풍에 등 떠밀려
공원 주변 카페를 두리번거린다
저기에는 시집이 몇 권 있었지
어느 날은 헝가리춤곡이 흘러나왔지
블루베리 머핀도 있었지
날개 말린 나비 되어 팔랑이다가
출구에서 냉이 한 바구니 사 왔다
냉잇국에 봄날의 취기가 가득하다
심한 입덧은 아니었는지
봄날 울렁거림이 가라앉았다
― 「봄날은 울렁거린다」 전문
은행잎 수북이 떨어진 골목길
청소미화원이 낙엽으로
황금빛 하트를 그린다
담장 위에 손을 얹은 우주 몇 장
바람에 떨어져 빗자루에 쓸린다
나무 꼭대기에서도 보이도록
쓸어 모으고 쓸어 모은
커다란 하트
나는 길을 멈춰 묵묵히 비질하는
꽉 다문 침묵을 읽다가
낙엽 떨어뜨린 나무를 바라본다
‘나도 우주다!’ 눈짓하는 나뭇잎이
바스락, 헛기침한다
한솥밥 먹고 사는 식구라고
침묵으로 말하는 사이라고
― 「침묵으로 말하는 사이」 전문
곡기 끊으시고 겨우 입술만 적시던 어머니
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분이
닦고 싶다 손짓하며 힘겹게 몸 일으키신다
어머니는 몸 깨끗하게 눈 감고 싶었을 터인데
안아 올린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대야에 앉혀 아기 몸 씻기듯 조심스레 닦는데
주저앉은 골반이 우두둑, 뼈가 운다
살 흐르지 못해 뼈가 운다
곡진한 세월 삭아지고 휘어진 어머니
뼈만 남은 어머니의 등을 스펀지로 적시며
때처럼 밀리는 살가죽에 생의 거품을 얹었다
평생 애절했던 어머니의 기도를 쓰다듬는다
삼킨 내 울음과 소리도 못 내는 어머니의 울음이
목욕물과 함께 하염없이 흘렀다
다시 한번, 어머니의 몸 닦아드릴 수 있다면
가없게 주저앉은 어머니의 등
그 앙상한 슬픔에 뜨겁게 입 맞추리라
― 「거룩한 등」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