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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명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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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일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파편일지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91192634081
· 쪽수 : 84쪽
· 출판일 : 2023-09-08

책 소개

‘2023년 헌책방 집현전 5기 레지던시’ 결과 발표집.

목차

길 위에서
06 헌책방에 머물다
12 골목 수집
20 이형길 씨와 박경배 씨의 집 앞에서
25 길 위의 파편을 생각하며
29 집과 기념비

파편의 시간
35 눈을 감아주세요
38 기억 덩어리
48 회색에 대하여
54 트랩에 빠진 초파리를 생각하며
66 양순
70 파편의 시간

모든 슬픈 것들은 길 위에 있다
74 모든 슬픈 것들은 길 위에 있다

저자소개

신이명 (지은이)    정보 더보기
작은 서사에 주목하는 창작자. 읽고 쓰고 그리고 만드는 일을 한다. <개인전> 2022 파편의 초상, spaceUNIT4, 서울, 한국 2018 바다에서 만날까, 서울예술치유허브, 서울, 한국 2013 What a wonderful world S#1, 팔레드서울, 서울, 한국 2013 What a wonderful world S#2, 사이아트 갤러리, 서울, 한국 2010 탈색의 정서, 무이 갤러리, 서울, 한국 <기획 및 단체전> 2019 editable, 수창청춘맨숀, 대구, 한국.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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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헌책방에 머물다

1. 헌책방
목구멍에 보리쌀 한 줌이라도 더 밀어 넣는 것이 중한 시절에도 누군가는 책을 읽었다. 전쟁통에도 밥 보다 활자가 고픈 이들을 위해 부부는 거리에서 책을 모아 팔았다. 여기저기에서 책처럼 생긴 것들은 그러모아 어물전의 고기마냥 가마니때기 위에 널어놓으면 활자에 기갈난 사람들이 그것들을 사 갔다. 이태 후, 부부는 이웃이었던 교회 장로의 도움으로 지붕 있는 집에 자리를 얻어 본격적으로 가게를 열었다. 여전히 전쟁 중의 일이었다.
부부가 헌책을 파는 동안 전쟁이 끝나고 3.8선이 그어졌다. 서울에서는 올림픽이 열렸다. 독일이 통일하고 소련이 붕괴할 때에도 부부는 헌책을 팔았다. 그렇게 40년 동안 모은 돈으로 부부는 3층짜리 건물을 사들였고 그곳에서 30년을 더 헌책을 팔았다.
부인이 노환으로 자리보전하게 되자 남편은 책방을 팔기로 했다. 하지만 평당 얼마니, 시세가 얼마니 하며 숫자만 흥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책방을 메운 활자의 시간과 부부의 몸에 주름진 70년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책방을 사주기를 바랐다. 부부가 낙점한 이는 동네에서 작은 사진 전시관을 운영하던 사진가였다. 사진가는 부부의 제안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부터 골목에서 가장 작은 건물이자 가장 오래된 헌책방인 부부의 책방을 마음에 두고 있던 터였다. 책방을 인수한 사진가는 그날부터 낡은 건물을 손수 고치기 시작했다. 집 고치는 재주라봐야 인근 교육센터에서 9개월 남짓 배운 목공 기술이 전부였지만 그에게는 그림이 있었다. 책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곳, 골목과 소통하며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곳. 사진가는 자신의 그림을 실현시키기 위해 땅을 파고 창을 내고 벽을 바르고 서가를 짰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남들보다 작은 체구의 사진가가 혼자 낡은 집을 고치겠다고 매달리는 모습에 동네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그를 도왔다. 그래도 공사는 쉬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기약없이 이어지던 공사를 종결한 것은 건너편 골목에서 독립 서점을 운영하는 이웃이었다.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며 개점 날짜부터 못 박은 이웃은 책 정리를 자청하고 나섰다. 명색이 책방이니 일단 책부터 팔고 봐야 한다는 것이 이웃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사진가의 책방이 문을 열었다. 부부의 책방에서 사진가의 책방이 되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2. 골방의 시간
사진가의 책방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줄곧 이층에 있는 골방에 처박혀 있었다. 두 평 남짓의 골방은 사진가가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 공간으로 꾸려놓은 공간이었다. 일인용 침대와 H형 책상, 두툼한 화집들이 꽂혀있는 붙박이 서가와 키 낮은 옷걸이가 전부인 단출한 방이지만, 간결하고 단정해서 머물기에 안락했다. 이른 아침 한산한 동네 골목을 두어 바퀴 걷고 나면 대체로 골방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골방은 이층에서 가장 안쪽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문턱이 높아 나무 받침대를 계단처럼 밟고 올라서 고개를 수그리고 들어가야 했다. 방문과 마주한 벽에는 여닫이창이 나 있었다. 골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이 여닫이창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줄곧 골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우선 창문부터 열었다. 한창 더워질 무렵, 방충망 없는 창문을 종일 열어두다 보면 모기나 쇠파리 따위가 들어와 성가시게 맴을 돌았다. 그래도 어지간해서는 닫고 싶지 않았다. 창문이 담아내는 한 폭 풍경 때문이었다.
골방 창문에서는 뒷집의 빛바랜 시멘트 기와 지붕이 바로 내려다보였다. 그것은 파릇한 턱에 뾰족뾰족 돋아난 수염자 국처럼 가무스름하기도 하고, 이끼를 뒤집어쓴 돌절구마냥 푸르스름하기도 했다. 날이 좋으면 햇볕이 하루종일 지붕 위로 내려앉았다. 맑은 날, 뒷집의 시멘트 기와가 따끈따끈하게 데워지는 것을 보고 있자면 동네 고양이들이 낮잠이라도 자러 오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집비둘기나 직박구리만 때때로 들렀다 갈 뿐, 여태 지붕 위 고양이를 보지는 못했다. 지붕 너머로는 오래된 벽돌 건물이 빼꼼이 보였다. 촘촘하게 쌓아올린 벽돌들은 모두 붉은색이었으나 명도와 채도가 균일하지 않았다. 어디는 검고 어디는 붉고 어디는 부옇게 들떠 있었다. 바람과 눈과 비와 미생물과 곰팡이 포자가 긴 시간 벽돌들을 하나하나 다시 물들인 결과였다. 시간의 흔적을 입고 저마다의 색을 발하는 벽돌 건물 너머에는 무채색의 아파트가 수직으로 솟아있었다. 색 없는 색, 흰색에 가까운 회색이나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만으로 채워진 아파트의 이름은 ‘푸른 공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푸른 공간은 어느 사이 연소되어 잿빛 기둥으로 남았을까.
골방에 머무는 동안 나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내내 헤아렸다. 빛바랜 시멘트가 품고 있는 시간의 층위와 검고 붉고 희고 푸른 시간의 흔적들에 대해, 잿빛으로 수렴하기 위해 흐르는 도시의 시간과 그 시간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질문도 많아졌다. 그 사이에서 단 하나의 질문을 건져내기 위해 나는 걷고 쓰고 읽고 그렸다.
늦봄에서 한여름까지의 일이었다.


3. 골목 수집
이른 아침 오래된 골목길에는 하루를 시작하는 소리와 냄새가 가득하다. 나는 어른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너비의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집집마다 새어 나오는 소리와 냄새를 수집하기를 즐긴다. 수집이라고 해서 사진을 찍거나 녹음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담벼락 사이를 천천히 걷다 서다 하며 담 너머의 삶을 멋대로 상상하고는 몇 문장으로 찌끄려 내는 것이 내가 하는 수집의 전부다. 더없이 하찮고 얄궂은 취미지만 ‘골목 수집’이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이 짓거리를 즐긴 지는 꽤나 오래되었다.

깨지고 부스러진 채 이리저리 떠도는 무수한 파편들이 길 위에 있다. 보도블록 사이 한 줌 흙에 돋아난 괭이밥과 삐라처럼 흩뿌려진 불법 대출 명함, 필터 끝까지 알뜰하게 피다 버린 담배꽁초와 믹스커피가 누렇게 착색된 종이컵, 햇빛 아래 길 잃은 달팽이와 검은 매미 허물, 그리고 회색의 파편들. 모두 빠르고 부주의하고 난폭한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것들이다. 모든 슬픈 것들이 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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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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