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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635071
· 쪽수 : 174쪽
· 출판일 : 2023-03-13
책 소개
목차
4 시인의 말 | 삶의 길 한 겹 지나며
제1부 그림자의 여행
12 4월 어느 날
14 8월을 보내며
16 장미 가시
17 개미에게
19 하관
21 그 마을에 내리는 겨울비
23 새벽 없는 날
25 9월
27 나비와 어머니
29 바람의 반항
30 최후 변론
31 그림자의 여행
33 두 번째 고백(결혼 42주년 기념)
35 바람이 사는 마을
37 한의원에서
39 손주
40 시를
42 애비 편지
45 주홍 글씨
48 청량대운도 앞에 서다
제2부 목선을 위한 만가
52 꽃은
54 꽃무릇
56 소나기
58 겨울 밤 애가
60 나무서리
62 소쇄원에서
64 건너는 방법
66 낙엽의 유언
67 비밀 연애
69 특별한 선물
71 꿈을 확인 사살하고 난 후에도
73 디스 이즈 미
75 목선을 위한 만가
77 반란의 광장에서
79 사람은 몇 번 태어나는가?
81 쉬는 일
84 풍경 하나
86 연탄재
87 주홍글씨 키우기
89 초승달 지는 밤
제3부 슬픔보다 깊은
92 돌아서는 봄날
94 능소화 변론
97 인연의 무게 너머
98 겨울 편지
100 무청 시래기 한 줄
101 장사도 동백 터널
103 고엽
104 낯설음의 언덕에서
106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108 풍금
110 물의 생애
112 마지막 예의를 위하여
114 믹스커피
116 부활
118 새가
120 슬픔보다 깊은
122 아버님 전 상서
124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126 질문 앞에서
제4부 선택한 고통
132 진달래 피는 날
134 들꽃
136 쌍어의 꿈
140 바람과 세월
142 12월 31일 새벽에
144 근황
145 너와 보고 싶은
147 안내 방송
149 가을 나기
150 돌아앉고 싶은 날
152 머리카락 사냥
154 바람과 깃발
156 불협화음
159 선택한 고통
161 승부역에서
163 아직도 가끔은
165 존재와 해석
168 집으로 가자
170 커피가 죽는 오후
172 허기
124 추월가秋月歌
126 낙화유수落花流水
127 범이 내려왔네
128 개판이네
130 독야송獨也松
132 심사평
140 해설 우리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것은? | 김신영
저자소개
책속에서
4월 어느 날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지금 피어야 할 모든 꽃 함성보다 힘차게 소리치며
펄럭이는 깃발로 일제히 솟아나는
4월 어느 날
꽃 메아리가
적막한 가슴속 흐린 동굴에
봄 편지로 밀려오면,
그리움의 뒤편에서 숨죽여 기다린
벌, 나비 등불 들고 들썩이는 어깨로 모여
꽃을 더욱 꽃 되게 하는 계절의
심장
꿈 푸른 씨앗으로 겨우내 숨죽여 기다린
망설임보다 아픈 두 기다림
그 목마른 만남, 이 한나절 이렇게
눈부시게 이루어지는구나.
사랑하라 마음껏 사랑하라.
꽃을 사랑하고
벌, 나비끼리 서로 서로 몸 비벼라.
꽃이 지기 전에
해 저물기 전에
그리운 이름 가슴에 묻지 말고
서로 사랑으로 사랑하라
오후의 바람, 속 물결로 밀려오면
향기 담장 너머 수신인 없는 엽서로 날아가고
음정 맑은 생명의 합창은
꿈을 품고 살아낸 모든 것들의 흔적으로 돌아누우리니
지금도 가야 할 길이 있는 생명은
꽃그늘에서 한 모금 의미가 되고
아직은 삶의 무게가 남아있는 모든 것은
그것으로 아름답다.
한나절 남은 시간에
꽃들 목숨 걸고 피어나는
4월 어느 날
8월을 보내며
가을은 소리로 첫 문을 연다.
돌아가는 잔돌 길도 녹 쓸어 삭아 내린 묵정밭머리
흔적 지키고 있는 이랑 서 너 개
젊은 맥박으로 점령한 기억보다 무성한 잡초 밑에서
숨 막는 땡볕 온몸으로 갉아먹고
밤이슬로 몸 헹궈 하루하루 속살 찌운 가난한 생명들이
목숨 걸고 삶을 짜는
마지막 씨줄 날줄 소리 푸득푸득 일어서고 있다
하늘은 정오를 기다려 한 겹씩만 정직하게 깊어가고
이승과 저승 사이에 서기 전
마지막 유혹을 준비하는 잎
초록 호흡을 모아 언덕을 넘는다.
머잖아
뒷모습이 되어 심장에 가라앉을 가을을
기억하는 게 버거운 강물은
아무도 이름 부르지 않는 마른 흔적만 남기고
죽기 위해 바다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철새가 날아와 남은 흔적 몇 개 먹어치우겠지
잔 바람에 흔들릴 일만 남은 갈대 속
노래는 떠나가도 설음은 기어이 남아
열사흘 달을 품고 밤새워 흔들릴 것이다
마침내 모든 노래도 색깔도 다 지워지고 나면
내 생애에 남아 있던 가을 하나가
이별의 간이역에서 스스로 그림자 지우고
촛불을 끄겠구나.
홀로 남겨진 나는
겨울이 올 때까지 어둠 파먹으면서
아무 약속도 없는 절망의 끝을 어루만지며
가을의 문을 닫는 바람의 뒤편에
뜨거운 커피가 식을 때까지 서 있고 싶다.
장미 가시
가시는
장미 피 한 방울을
내 심장에 넣어주는 손짓이다.
맑은 이슬로 들은
하늘 나이테에 새겨진 비밀이
내게로 흐르고
고이 접은 이별 무게로 자란 내 사랑이
장미의 빛과 향기를 품고
하늘로 걸어가는 통로다.
피 한 방울로 하나가 되는 우리
첫사랑이기를 기도하든 그때
너를 만나는 동안 매일 이별을 만나고 있었다.
별 없는 밤을 골라 너에게 불던 휘파람
그 마디마디에
채 피지도 못한 장미 꽃잎은
바람의 언어보다 더 빨리 흩어지고
하늘 나이테에 새겨지는 이별의 눈금이 시리다.
장미 가시를 찌른 뒤
하늘과 한 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