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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828138
· 쪽수 : 228쪽
· 출판일 : 2023-04-1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1장 … 9
2장 … 42
3장 … 78
4장 … 113
5장 … 134
6장 … 167
7장 … 197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졸면서 계속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내 꿈속으로 걸어들어온 그 남자를 보고 있었다. 그는 새들의 말을 인간의 언어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 남자가 나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낯선 사람이었음이 분명했다. 혼란스러운 꿈이었지만 어떤 장면은 선명한 이미지로 기억에 남았다. 나는 그 꿈의 제목이 「새의 전설」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그것을 한 편의 소설로 쓰리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나는 십대의 어느 한때를 그것으로 보내버렸음을 여기에 밝혀 둔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군용침대 속에서 밤새 뒤척거렸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끝자락에 태어났고, 어머니는 한국전쟁이 시작되던 그해 여름에 태어났다. 성장한 뒤에야 나는 두 분의 생애가 처음부터 그렇게 궁핍과 비참과 상실 속에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아버지는 그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혼자서 끝없이 그 상실을 슬퍼하고 계셨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추측에 불과한 것이었으니, 왜냐하면 나는 두 세대 사이에서 태어난 또 하나의 다른 세대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전에 만난 적도 없이, 혹은 어쩌면 만나게 되리라는 희망도 없이, 광대무변한 하늘의 이쪽과 저쪽에 떨어져 흘러 다니는 한 조각 구름 같은 존재들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 무렵의 나는 너무 어렸고, 우선은 눈앞에 닥친 현실을 타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바심에 쫓기고 있었다. 대학과 군대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눈앞에 가로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지수를 만나러 갔다.
그렇지만 그것은 강렬한 인상으로 내 기억에 남았다. 그것은 내가 지상에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이제까지 자신을 구름 관찰자라 여겼고, 구름 위를 걷는 사람인 것처럼 살아왔다. 그런데 점호시간이면 밤하늘을 수놓는 강렬한 서치라이트, 레이더에 흐르는 수만 볼트 고압 전류, 위험한 고갯길에서 결사적으로 트럭을 모는 운전병들, 기르는 개에게 수음을 시키는 하사관, 그것들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로 내 곁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장의 일들이 그것을 강하게 환기시켜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번병이 대대본부에서 우편물을 수령해 왔다. 나에게 책이 한 권 배달되었는데. 보낸 사람이 지수였다. 그를 만나지 못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황혼에 느끼는 짭조름한 향수의 감정처럼 그 이름이 내 가슴으로 여울져 밀려왔다. 봉투를 열자, 고교시절에 우리가 돌려가며 읽었던 문예지 최신호가 나왔다. 그 잡지의 신인문학상은 특히 소설가를 꿈꾸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선망의 적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수는 내가 그 섬의 미로와 같은 안개에 갇혀 있는 동안에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작가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