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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828244
· 쪽수 : 228쪽
· 출판일 : 2023-09-07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단편
황금나비 / 7
남편의 분재 / 33
경비 정 씨의 하루 / 61
아내의 향기 / 89
할아버지바위 / 117
중편
노란 산수유 꽃이 핀 동산 / 145
저자소개
책속에서
조용한 새벽이면 시간이 아주 멈춘 것 같았다. 다만 작은 창을 때리는 바람 소리와 벽을 울리는 황 씨의 코고는 소리에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옆방에서 기척이라도 해야 TV를 볼 텐데……. 황 씨는 밤늦게까지 쏘다니다 점심때가 되어야 일어났다. 일어나기 전에 TV를 켜면 벽을 두드리고 야단했다. 그가 깨어날 때까지 번데기처럼 이불을 돌돌 말고 기다려야 한다. 몸은 탈피도 못 한 번데기처럼 누워있지만, 그래도 마음은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 황금나비가 된다. 연희누나가 하늘 저편에 만든 꽃밭에는 어떤 꽃들이 피어있을까? 나는 황금나비가 되어 누나의 꽃밭으로 날아가는 꿈을 꾼다.
-「황금나비」 중에서
조심스레 남편 방의 문을 열었다.
미닫이창의 우윳빛 유리문을 통과한 빛이 은은하게 방안을 밝혔다. 커다란 침대 위의 황금빛 이불과 브라운색의 원목장롱과 문갑이 오늘따라 낯설게 보였다. 방안은 붉은빛이 감돌고 공기는 무겁게 압축되어 나를 누르는 것 같았다. 방안에 희미하게 떠도는 남편의 냄새에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했다.
기분 탓일까? 창가에 놓여있는 안마의자에서 남편이 일어나며 ‘무엇 때문에 노크도 없이 들어왔어’ 하고 호통을 칠 것 같았다. 아침에 남편이 성질내며 부르던 소리가 아직까지 귓가에 머무르고 있었다. 남편의 호통을 듣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오늘 아침 일은 마음속의 응어리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이십 년을 같이 살아온 남편이었기에 좋은 모습으로 남기를 바랐는데, 이마의 굵은 주름살을 잔뜩 찡그리고 큰 눈을 부릅뜬 모습이 마지막으로 남았다. 화를 내는 하회탈과 같은 남편 얼굴이 지워지지 않고 착잡하게 떠올랐다.
-「남편의 분재」 중에서
커다란 이삿짐 차와 사다리차가 아파트로 들어왔다. 102동 702호에 들어간다고 했다. 며칠 전에 수리한 집에 오늘 이삿짐이 왔다. 차가 들어온 시간을 경비일지에 적었다. 볼펜을 쥔 손에 따스한 봄볕이 내리비쳤다. 밝은 햇빛이 비치는 손바닥에 깊은 주름이 여럿 보였다. 갈라진 주름은 굴곡진 삶의 흔적처럼 아련하게 느껴졌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만큼의 세월이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사이에 휴대폰의 화면이 꺼졌다. 휴대폰을 다시 켜고 갤러리에서 제일 선명하게 나온 사진을 찾아 배경화면으로 설정하였다. 이제 휴대폰을 켜면 항상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딸의 모습이 나타나겠지. 애들의 사진을 바라보는 내 가슴이 따스한 봄볕보다 더 포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경비 정 씨의 하루」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