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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3024164
· 쪽수 : 118쪽
· 출판일 : 2023-06-09
책 소개
목차
〈깊은 밤들〉 6
〈비망(備忘)〉 42
〈산책〉 80
작가의 말 110
프로듀서의 말 114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다시 믿는다. 분명 보았다고. 텅 비어 있는 건물 뒤쪽의 철근 다리 위에 멍하니 서서, 눈앞에 펼쳐진 미래의 얼굴을 보았다고. 새카만 눈동자와 잔뜩 신이 난 듯한 입꼬리. 충만한 표정.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눈빛. 결코 자신의 마음을 아끼지 않는, 그래서 언제든 모두를 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편안한 얼굴. 그랬다. 그랬단다.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랐기에, 너 역시 엄마를 용서하지 않기 위해 온갖 핑계를 찾아낼 줄 알았는데,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먼저 상처를 주고, 믿지 않기 위해 먼저 믿음을 저버리는, 그러고서 그냥 모르는 척 살아가는, 사람의 역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나 같은 인간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깊은 밤들〉
“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던 것이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래. 난생처음. 그녀의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그랬다. 기대와 설렘이 밀려들었다. 흥분이 되었다. 그녀는 그 마음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이제 내가 곧 저걸 타겠구나. 하늘을 날아 보겠구나. 난생처음으로. 그래. 난생처음으로. 이것이야말로 새것이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 이렇게 간단했던가. 이렇게 쉬웠단 말인가. 무엇을 보아도 내키지 않던 작은 마음이, 어떤 의지와 힘도 남아 있지 않다고 굳게 믿었던 마음이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거대해질 수 있단 말인가.
〈비망(備忘)〉
그날, 영애 씨는 집에 돌아와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발코니에 누군가 서 있었다. 영애 씨는 소파에서 일어나려 애를 썼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발코니의 존재는 창문 밖을 응시하며 계속 같은 곳에 서 있었다. 아니, 그 사람은 영애 씨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집 안을 둘러보는 것 같았다. 배회하는 것 같았다. 우는 것 같았다. 웃는 것 같았다. 사실이었다. 나는 영애 씨의 주변을 떠돌았다. 그리고 떠올렸다. 내가 영애 씨에게 했던 말들. 내가 하지 않은 말들. 그래서 후회하는 말들. 계속 기억하는 말들. 사람들은 모두 다 엄마를 떠날 거야. 엄마와 멀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거야. 그래서 엄마는 결국 혼자 남을 거야. 그 누구도 곁에 있지 않을 거야.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