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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사/불교철학
· ISBN : 9791193385302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26-01-05
책 소개
목차
서문 006
편집자 서문 014
제1편 조선 교계(敎界) 개관 041
제1장 삼국시대 및 고려시대의 불교 043
제2장 조선시대 불교금압(佛敎禁壓) 048
제3장 기독교의 개교 052
제4장 불교의 부활과 사찰령 054
제2편 개교(開敎)와 건설 059
제1장 개교의 남상(濫觴) 061
오쿠무라 조신(奥村浄信) / 고덕사(高德寺) 사지(寺趾)에 대해
제2장 개교와 국가와의 관계 066
개교 직전의 일본과 조선 / 개교사의 파견 / 본원사의 포부
제3장 부산 개교 070
당시의 부산 / 별원 창설 / 유학생 파견 / 당시 포교상황
제4장 원산 개교 077
별원 창건 / 당시의 원산 / 동포 중심의 포교 / 개시장(開市場)과 오쿠무라 승려 / 조선인 노동자의 구제 / 쟁투(爭鬪)를 중재하다.
제5장 인천 개교 088
개교에 이르기까지 / 포교소 설치 / 당시 포교상황 / 당우(堂宇) 건축
제6장 경성 개교 095
개교 당시의 상황 / 별원 설치와 부지 매입 / 조선왕조 하사금 / 고리(庫裡, 임시 본당) 건축 / 이나미 승려 취임과 공사의 일별(一瞥) / 별원의 궁박(窮 迫)과 러일전쟁 / 본당 건축의 착수 / 조선왕조의 원조 / 본당의 낙성
제7장 광주 포교 117
개교 전기(開敎前記) / 드디어 광주에 낙착(落着)하다. / 남매의 해후(邂 逅)와 오쿠무라 승려의 경영 / 포교 의견 상신 / 조선인 최초의 본산 참배 / 오쿠무라의 보고서
제8장 목포 개교 132
포교소 설치 / 영사의 무정(無情)
제9장 각 포교소의 설치 134
군산포교소 / 진남포포교소 / 평양포교소 / 신의주포교소 / 영산포포교소 / 조치원포교소 / 대전포교소 / 진주포교소 / 밀양포교소 / 안주포교소 / 전 주 백응사 / 청진포교소 / 성진포교소 / 수원포교소 / 청주 서원사 / 구포포 교소 / 춘천포교소 / 포항포교소 / 공주포교소 / 용산포교소 / 삼랑진포교 소 / 절영도포교소 / 진해 일심사 / 대구포교소 / 삼천포포교소 / 논산포교 소 / 영엄포교소 / 송정리포교소 / 정읍포교소 / 평강포교소 / 회령포교소 / 광천포교소 / 간도포교소
제10장 개교의 고심과 기쁨 171
초창기 이리 / 남평개교의 고심 / 철원포교소 / 함흥에서의 개교 / 맞이함 의 기쁨
제3편 조선문화로의 공헌 193
제1장 본원사와 조선지사(志士) 195
본원사와 이동인 / 인천개항의 뒷이야기 / 새로운 문물의 소개 / 지사(志 士)의 내방과 어학생 / 이시가와 윤번과 윤웅렬
제2장 본원사와 교육사업 207
부산에서의 교육 / 원산에서의 교육 / 인천에서의 교육 / 경성에서의 교육 광주에서의 실업교육 / 목포에서의 교육 / 그 밖의 교육
제3장 사회사업의 효시(嚆矢) 218
부산교사(釜山敎社) / 청일전쟁·러일전쟁과 부산교사 / 부산교사의 개혁 제4장 향상회관(向上會館) 229
향상회관 건설의 첫 번째 동기 / 향상회관 건설의 두 번째 동기 / 향상회관 건설의 세 번째 동기 / 본 회관의 사명 / 본 회관의 사업 / 산업전습부 사업 / 수학부 사업 / 종교부 사업 / 염원 / 향상회관 연혁 / 향상회관의 5년 / 부록:행려병자(行路病人) 구호
제5장 본원사와 조선사찰 및 승려 246
제6장 조선왕조와 본원사 254
영패(靈牌) 봉안과 답례사(答禮使) / 대한아비타본원사(大韓阿彌陀本願 寺) 편액(扁額)
제7장 순난 개교사(殉難開敎使) 263
제8장 개교감독부와 개교 50년 267
부록 : 남산본원사 범종 270
해제 272
책속에서
서문
서(序)
조선 땅에 정토진종(淨土眞宗)이 처음으로 유포(流布)된 것은 지금으 로부터 300여 년 전 아주 오래된 일이다. 이렇게 시작하게 된 진종대 곡파 개교(開敎)는 메이지(明治) 초운(初運)을 시작으로 오늘에 만50년 세월이 흘렀다. 그간의 고신(苦辛) 경영(經營)은 실로 상상도 못 할 정 도다. 참으로 여래대비(如來大悲) 선포에 정진하고 동시에 일본과 조 선과의 문화융화를 유도하는데 지대하게 공헌했으니 이는 오래도록 세상이 기억하고 이체상의(二諦相依)1)의 종풍(宗風)을 선양(宣揚)하는 것 이니라.
이번 가을 조선개교감독부는 개교 50주년 기념비 법회를 경성 남 산의 본원사에 영위했는데 과거 노력하신 선각의 덕을 기리고 여러 기념사업을 기획하여 한층 더 진전을 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기획 사업의 일환으로 포교 활동의 업적과 사료가 인멸될 것을 안타깝게 여 겨 『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를 편찬하고 이를 서문에 미리 언급하니, 모든 기록을 편찬하는 바 참으로 비장한 개교 비사(祕史)로 먼 훗날 미래에 모범이 될만한 대비전 보화(大悲傳 普化)2)의 정신을 북 돋우는 참으로 심대한 것이니라. 이와 같은 내용을 덧붙이면서 서(序) 로 대신한다.
1927년 8월 28일
진종대곡파부관장(眞宗大谷派副官長)
오타니 에이죠(大谷瑩誠)
서(序)
우리 대곡파가 조선 개교에 뜻을 가지게 된 것은 바야흐로 50년 전의 일로 오쿠무라 엔신(奥村圓心)씨가 몸소 조선에 건너가 개교의 선 례를 세웠지만, 그 시작은 이미 3백여 년 오래된 일이다. 그동안 수 많은 선각(先覺)이 여러 난관에 고군분투하면서 모든 희생을 감수하 고 우리 종파 개교의 지반을 구축해왔다. 그 후 여래의 자광(慈光)을 계림팔도(鷄林八道)에 선포함과 동시에 일본과 조선의 융화에, 문화 보 급에, 사회 교화에 이바지한바 절대 적지 않다. 우리 교파의 개교는 근대 조선불교사의 중요한 역사의 한 장을 채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
이러한 시기에 조선개교감독부는 올가을 개교 50년 기념법회를 근수(勤修)3)하여 이 기념사업의 하나로 개교50년지 출판을 기획하고, 후지나미(藤波)씨가 편찬을 담당했는데 고심 끝에 출판하는 날이 가 까워짐을 들으니 실로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이 책은 조선개교 과거 를 전하는 귀중한 문헌임과 동시에 앞으로의 개교에 좋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처럼 우리 대곡파가 개교 50주년을 맞이한 것을 기회로 더욱 절대타력(絶對他力)의 대도(大道)를 이끄는 말씀을 전파함으로써 대비 (大悲) 전보(傳報)화의 성업에 노력함과 동시에 내선융화(內鮮融和)의 열 매를 맺는 것이 가능하다면 진정한 의미의 기념사업이 될 것이다.
8월 28일
대곡파본원사 사무총장(大谷派本願寺寺務総長)
이나바 마사마루(稲葉昌丸)
서(序)
대곡파본원사의 조선 포교는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 교뇨쇼 닌(敎如上人)4)의 명을 받아 오쿠무라 조신(奧村浄信)이라는 승려가 조선 에 건너온 것을 그 시초로 보고 있다. 그 후 몇 번인가 시도했지만, 차질이 생겨 지금에 이른 것은 1877년 가을 조신의 후예 오쿠무라 엔 신이 부산에 상륙한 뒤부터다. 그로부터 원산, 인천, 경성 등 조선 전 역에 포교를 확산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1877년부터 숫자로 따지면 올해가 정확히 만 50년이 된다. 지금 개교 50년을 기념하고 자 하는 것은 대곡파 당국의 의지이며, 또한, 부족하지만 올해 4월 현 직을 명받은 불초(不肖)의 염원이다.
어떻게 기념해야 할지 실로 큰 고민이다. 공연히 축제와 같은 소 동은 피하고 싶다. 조용히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서서히 앞날에 대해 생각하고 현재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가 장 의미 있는 기념이라 생각한다.
50년이라면 짧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많은 깨달음과 또 가르침이 있었다. 동시에 그 세월의 흐름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잘 암시해준다. 따라서 50년지를 편찬하는 것은 기념사업으로서는 매우 귀중한 일 중 하나다. 하지만, 실로 안타까운 점은 집필하는 데 있어 쉽게 참고할 만한 문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10월에는 법 주대하(法主台下)와 그 부인을 맞이하여 기념 법회를 개최하고 또한 두세 개의 기념사업에도 착수하려 하기에 반드시 그때까지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매우 무리한 기획이지만 이 무리한 업무를 후지나 미다이엔(藤波大圓) 승려에게 부탁했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일단 일에 착수하자마자 후지나미는 조선개교상 공 로가 있는 몇몇 선배 승려들과 조선 내 각지에 현존하는 고승을 방 문했다. 그분들로부터 상세하게 그 상황을 전해 들으니 현존하는 자 료 외 확실한 자료가 많지 않다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후지나미는 7 월 더위가 한창일 때 일본 내 및 조선을 여행하면서 양국 관계와 정 치 상태, 사상계, 사회상 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집필의 배경인 까닭에 이에 관한 연구도 필수 불가결했다. 실로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모든 것을 섭렵하여 바로 집필하는 대단한 연구 활동을 한 것이다. 후지나미 승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감사의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편, 불법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반드시 인간과 함께 그 빛 을 발한다. 인간은 또 그 불법으로 불멸의 생명을 영위한다. 50년의 역사는 혈석희생(血汐犠牲)5)의 순교와 순수한 눈물 어린 신고(辛苦) 등 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단시일의 이야기라 간과할 수 없는 이 일은 불법의 힘과 교도의 신념이 입증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그 뒤를 계 승하는 자로써 여기에 감분(感奮)의 뜻을 펼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50년은 불교가 대부분 근절됐다고 할 정도로 조선의 문야(文 野)7)를 종교적으로 배척해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불교 의 씨앗을 조선 동포 가슴속에 심어줄 때이다. 교화하기에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8)과 석존(釋尊)의 선언에 따라, 또한 십방중생(十方衆生) 동등한 구원은 아미타불(阿比陀 佛)의 비원에 따라 반드시 조선의 전 지역에 자광(慈光)을 널리 알리고 빛나는 때가 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거의 역사는 지금 조 선에 있는 승려, 신도에 이 대업을 계승하도록 하고 있다. 우러러보 아 불타(佛陀)의 정신을 체득하고 회고하여 역사를 일궈낸 인물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계획에 찬성하여 많은 원조를 해주신 일본 본토와 조선의 여러분들, 공사다망한 가운데 제자(題字)9)를 맡아주신 대하(台 下) 및 총독 각하, 또한, 서문을 써주신 부관장님, 사무총장님에게 감 사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1927년 8월 28일
조선개교감독(朝鮮開敎監督) 쓰다 켄(津田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