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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한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91193790946
· 쪽수 : 440쪽
· 출판일 : 2025-03-31
책 소개
목차
2. 제국에서는 마수가 사람을
3. 놓치지 않을 것
4. 프레데리크 리에스테르
5. 즐기시게 놔둬
6. 북부 대공의 영지
7. 세상에 나쁜 신물은 없다
8. 나만 아니면 돼
9. 참관 수업
10. 기사의 명예와 중년의 낭만
11. 악녀라고 하기엔
12. 파드트루아의 유령
저자소개
책속에서
“정은서!”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평소 잠꼬대도 없이 숙면하곤 했는데 왜 대뜸 동생 이름을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요란하게 깼지만 몸은 개운했다. 가위에 눌렸거나 불편한 자세로 잤던 것 같지도 않았다.
“왕자님.”
미친, 깜짝이야. 어깨가 절로 움찔했다. 소리를 쫓아 눈을 돌린 곳에는 낯선 사람이 있었다.
“누구신데 저희 집에…”
“푹 주무셨습니까.”
“네?”
한 명이 아니었다. 각양각색의 피부색과 머리색과 눈동자 색을 자랑하는 낯모르는 자들이, 나를 보고 서있었다. 누군가는 번쩍이는 대야 같은 걸 들고, 누군가는 그 옆에 하얀 수건을 들고, 또 누군가는…
“한 시간 뒤 아침 식사를 하셔야 합니다. 먼저 세안과 양치부터 하시지요.”
“네?”
사람이 진심으로 당황하면,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네?’밖에 없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도 ‘네?’밖에 없다. 딱 지금의 내가 그렇다. 몰래카메라인가? 은서가 어디 방송국에 사연 신청이라도 한 건가? 이제 막 깨어난 머리가 최적의 답을 찾아 삐거덕거렸다.
“아직 잠에서 덜 깨셨나 봅니다.”
“그렇기는 한데요…”
“여독이 풀리지 않은 것이겠지요. 먼 길을 오셨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여독?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요즘 예능에서는 몰래카메라를 이렇게까지 하나? 회사와 집만 오가는 내게 주입하기엔 너무 디테일한 설정이다. 은서는 어디 있지. 상황실 같은 데서 날 지켜보고 있는 건가?
“그, 여기가 어딘가요?”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질문의 선택지도 별로 없었다. 휘휘 둘러본 실내는 내 방도, 거실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우리 집만 한 크기의 공간에, 친구 원룸만 한 크기의 침대가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벽지에 저게 뭐야. 설마 진짜 금은 아니겠지?
“많이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던 중년의 남성이 사무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옆에 서있던 사람 중 하나에게 눈짓을 하니, 한 소년이 재깍 알아듣고 투명한 유리잔에 물을 따라 건넨다.
“일단 속부터 차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 고맙습니다.”
나는 얼결에 잔을 받아 절반을 비웠다. 그러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맹한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물이 아니면 어쩌려고 납죽 받아 마셨지. 이거 그냥 납치인가?
<사람의 불시착>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