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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 이야기
· ISBN : 9791194096207
· 쪽수 : 558쪽
· 출판일 : 2025-07-17
책 소개
목차
서문_ 거장이 감춰 놓은 메시지와 비밀을 푸는 입체적인 명화 읽기
Chapter 1.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속 말은 실제로는 당나귀였다?
1. 달리는 왜 밀레의 <만종> 속 농부 부부가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아들을 땅에 묻기 전 슬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을까?
2.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속 나폴레옹은 말이 아니라 ‘당나귀’를 탔다?
3. 다빈치의 <모나리자> 진품이 여러 장 존재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라진 기둥’의 비밀은?
4.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은 라파엘로가 아닌 그의 스승 페루지노의 작품이라는데?
5.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또는 “학살”> 속 ‘흰 셔츠 입은 남자’의 모델이 예수라고?
6.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왜 망국민처럼 오랜 세월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국외를 떠돌아야 했을까?
7. 제리코는 왜 <메두사호의 뗏목>에 실제보다 5명이나 많은 20명의 배에 탄 사람’을 그렸을까?
8.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은 미국 소장본과 일본 소장본 중 어느 것이 출세작일까?
9. 클림트는 왜 달콤한 키스 장면을 빌려 정반대되는 ‘죽음’을 암시했을까?
10. 벨라스케스 <시녀들>의 진짜 주인공은 왕이나 왕비도, 시녀들도 아닌 벨라스케스 자신이었다고?
11. 조토는 왜 <동방박사의 경배>에 베들레헴의 별 대신 ‘핼리혜성’을 그려 넣었을까?
12. 보티첼리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최고 걸작 <비너스의 탄생>으로 인해 인생 말년에 명성을 잃었다는데?
13. 모로가 <출현>에서 세례 요한의 잘린 목이 공중에 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은 ‘프랑스혁명’을 암시하기 위해서였다?
14. 르누아르가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에서 파리 시민을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비결은?
15. 동생 테오의 아내 요한나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하나로 칭송받는 빈센트 반 고흐도 없었다?
16. 무하가 창조한 세기의 걸작 <지스몽다>는 우연히 탄생한 작품이다?
Chapter 2. 다빈치는 왜 <최후의 만찬> 주요리로 양고기 대신 ‘생선’을 그렸을까?
17. 페르메이르의 그림에는 왜 그토록 자주 ‘창문’이 등장할까?
18.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 식탁에 주요리로 양고기 대신 ‘생선’을 그린 이유는?
19. 미켈란젤로는 왜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예수의 손동작을 기존 관례와 반대로 그렸을까?
20. 그림 속 성모 마리아는 왜 거의 예외 없이 파란색 옷을 입고 있을까?
21. 보스의 <쾌락의 정원>에는 사람을 고문하는 악기가 있다?
22.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배경이 된 욕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3. 브론치노의 <비너스와 큐피드의 알레고리>에 그려진 이상야릇한 인물들은 각각 무엇을 상징할까?
24.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그린 브뤼헐의 <이카로스의 추락>이 소름 돋는 그림인 까닭은?
25. 푸생의 <아르카디아의 목동>에는 예수의 자손을 찾아 프랑스 왕으로 복귀시키려는 시온 수도회의 은밀한 계획이 숨어 있다?
26. 페르메이르의 <저울을 든 여인> 속 하얀 두건을 쓴 여인은 저울로 무엇을 재는 걸까?
27. 호가스의 <결혼 세태> 연작에 한 권의 추리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고?
28. 그림 속에 숨어 있는 비너스 여신을 찾는 특별한 요소 ‘어트리뷰트’란?
29.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 초상>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결혼 증명서’였다는데?
30.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의 그림은 왜 앵그르의 <필리베르 리비에르>에 카메오로 출연했나?
31. 다빈치가 <지네브라 데 벤치>에 노간주나무를 그린 뜻밖의 이유는?
Chapter 3. 뭉크는 왜 자기 작품 <생명의 춤> 모델에게 총격당했나?
32.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의 모델이 그의 연인 알바 공작부인이었다고?
33. 프라고나르가 관능적인 작품 <그네>를 통해 전하고자 한 진짜 메시지는?
34. 쇠라의 <화장하는 젊은 여인> 속 화분 뒤에 화가의 얼굴이 숨어 있다는데?
35. 뭉크가 <생명의 춤>의 모델에게 총격당한 안타까운 사연은?
36. 라파엘로의 <프시케 로지아> 천장화는 그의 여성 편력 때문에 끊임없이 혹평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는데?
37. 가톨릭 수사였던 리피의 <성모자와 두 천사> 속 성모 마리아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성모 마리아 중 가장 아름다운 이지미로 손꼽힌다고?
38. 로랑생은 왜 철저히 남자를 배제한 채 여자들만 그렸을까?
39. 세잔이 그린 아내 초상화 27점이 제각각 다른 뜻밖의 이유는?
40. 르누아르는 왜 <잔 에뷔테른>을 비롯한 모딜리아니의 초상화를 보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을까?
41. 루소가 <나, 초상 – 풍경>에서 재혼한 아내의 이름 밑에 감춰 둔 여성의 정체는?
42. 퐁텐블로파의 대표작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의 자매> 속 한 여성은 왜 다른 여성의 젖꼭지를 손에 쥐고 있을까?
43. 자기 작품 <독일 소녀>의 모델에게 프러포즈 받은 천재 화가 나오지로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44. 철학자 발랑슈가 다비드의 <쥘리에트 레카미에 초상> 속 주인공과 같은 무덤에 묻힌 기상천외한 이유는?
45. 르누아르는 왜 지적인 여성을 극도로 싫어하고, ‘완벽하게 텅 빈 얼굴’의 여성을 좋아했을까?
46. 시게루가 <바다의 양식>을 완성한 다음 뒤늦게 자기 애인을 그려 넣은 이유는?
Chapter 4.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모델이 젊은 세탁부였다?
47.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 여주인공 척추뼈가 정상인보다 3개나 더 많다고?
48. 같은 해에 발표된 훨씬 선정적인 그림 <비너스의 탄생>은 찬사를 받았는데,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만 혹평에 시달린 이유는?
49. 동료 화가들이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을 보며 “피카소는 언젠가 자기 그림 뒤에서 목을 매달 것이다”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은 이유는?
50.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실제 모델이 세탁부로 일하는 젊은 여성이었다는데?
51. 당대 농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이 ‘추한 그림’으로 낙인찍힌 이유는?
52.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왜 당대 비평가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비웃음을 사며 외면당했을까?
53. 마네의 <올랭피아>가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까닭은?
54. <다연발 총> 스케치 등에서 선보인 다빈치의 아이디어가 실용화되었다면 세계 전쟁사를 다시 써야 했을 수도 있다?
55. 마티스의 <춤> 3부작 중 하나만 미완성으로 남은 수수께끼는?
56. 고야는 왜 <카를로스 4세 가족>의 왕과 왕비 사이에 부자연스러운 공간을 비워 두었을까?
57.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상습적으로 마감일을 어긴 뜻밖의 화가는?
58. 크라나흐의 <비너스>는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대량 생산된 그림이라는데?
59. 뒤샹이 미술 전시회에 ‘남성용 소변기’를 작품으로 출품한 의도는?
60. <오필리아>의 화가 밀레이는 왜 모델의 부모에게 고소당했을까?
Chapter 5. 홀바인이 <대사들>에 ‘해골’ 이미지를 은밀히 숨겨 놓은 이유는?
61. 17세기 화가 페르메이르가 <우유 따르는 여인>을 그릴 때 ‘카메라’를 사용했다고?
62. 카라바조는 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에서 목이 잘리는 홀로페르네스의 모델로 자신을 그렸을까?
63. ‘목욕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서 세잔은 왜 실제 여성과 작업하지 않고 상상으로 그렸을까?
64. 인생 만년에 르누아르가 움직이지 않는 손에 붓을 매달아 그린 <목욕하는 사람들>이 ‘르누아르 미술 세계의 집대성’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65. 홀바인은 왜 <대사들>을 그리면서 ‘해골’ 이미지를 은밀히 숨겨 놓았을까?
66. 대낮에 출동하는 민병대를 그린 그림이 ‘야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67.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바>에 그려진 거울에 비친 남자는 과연 화가 자신일까?
68. 브뤼헐은 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가 아닌 로마의 콜로세움을 모델로 고대의 바벨탑을 그렸을까?
69. 영국 화가 터너의 <국회의사당 화재>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는데?
70. 세이키가 <독서>에서 빛의 움직임을 그토록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비결은?
71. 개성 넘치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후원이 없었다면 아르침볼도의 기발하고 독창적인 작품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72. 모네는 왜 30여 년의 시간과 열정을 <수련> 연작에 쏟아부었을까?
73.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1884년>은 치밀한 색채 연구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74. 라파엘로는 왜 <성모자와 세례 요한, 또는 의자에 앉은 성모>를 버려진 포도주 통 뚜껑에 그렸을까?
75. 요절한 천재 비어즐리의 삽화는 인쇄술 발달에 힘입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76. 클림트는 여성을 그릴 때 알몸을 먼저 그린 뒤 그 위에 옷을 그렸다는데?
Chapter 6. 모네는 왜 대중의 찬사를 받은 자기 작품 <일본 여인>을 졸작으로 깎아내렸을까?
77. 시들해진 고갱의 창작욕과 예술가의 열정을 되살려 낸 한 타히티 소녀의 비밀은?
78. 로트레크는 왜 다른 화가들은 그리기 싫어하는 포스터를 즐겨 그렸을까?
79. 화가 에곤 실레와 독재자 히틀러의 인생 여정은 싱크로율 거의 백 퍼센트다?
80. 보티치니의 <토비아스와 세 천사>에 다빈치가 모델로 등장한다는데?
81. 렘브란트는 아무도 주문하지 않는 자화상을 왜 지치지 않고 그렸을까?
82.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에 라이벌 미켈란젤로를 그려 넣은 까닭은?
83.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에는 어떤 상징과 의미가 담겨 있을까?
84. 들라크루아의 베일에 싸인 출생 비밀이 그의 작품 <키오스섬의 학살>과 관련 깊다는데?
85. 모네는 왜 전문가와 대중의 찬사를 받고 비싼 가격에 팔린 자기 작품 <일본 여인>을 졸작으로 규정했을까?
86. <후가쿠 36경>의 화가 호쿠사이가 평생 93번이나 이사하며 살아야 했던 절실한 이유는?
87. 고귀함을 일관되게 추구한 푸생은 왜 야만스러운 폭력 장면이 가득한 <사비니 여인의 납치>를 반복적으로 그렸을까?
88. 10개월 동안 4번이나 화풍을 바꾸면서 150여 점을 그린 도슈사이 샤라쿠는 화가 한 사람이었을까, 화가 집단이었을까?
89. <볼록거울에 비친 자화상>의 미소년 파르미자니노가 갑자기 늙어 버린 흥미진진한 이유는?
리뷰
책속에서
밀레와 그의 작품을 연구한 미술사가들에 따르면, 이 그림은 밀레가 실제 풍경을 직접 보고 스케치한 것이 아니다. 머릿속 상상으로 구도를 잡고 계획해서 그려 낸 작품이라는 말이다. 그 탓일까? 훗날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밀레의 <만종> 속에 깜짝 놀랄 만한 비밀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달리가 밝혀낸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달리는 무엇을 근거로 그런 주장을 했을까? 우선, 그는 그림 속 부부 사이에 놓인 바구니에 주목했다. 그 바구니가 어쩐지 생뚱맞고 어색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바구니에 담긴 것은 수확한 작물이 아니라 부부의 아이, 곧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죽은 아기라고 주장했다. 바구니는 아기의 작은 몸과 함께 땅에 묻힐 관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림의 이야기와 분위기가 전혀 달라진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친 부부가 감사 기도를 올리는 장면이 아니라, 아기를 잃은 부모의 깊은 슬픔, 그저 기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무기력하고 안타까운 현실을 담담히 보여 주는 그림인 것이다.
밀레는 부모를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남겼다. 그중 한 부모가 죽은 아들의 시신을 넣어 둔 관 앞에 서 있는 장면을 그렸다가 자칫 그림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흐를 것을 염려하여 바구니로 고쳐 그렸다.
이는 달리가 자신의 책에 남긴 문장이다. 달리의 친구이자 그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 사장은 달리가 위조지폐를 한눈에 찾아낼 정도로 뛰어난 감식안을 지녔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그의 주장을 지지했다. 그러면서 그는 “루브르 미술관에서 엑스선 검사를 실시한 결과, 바구니 아래에 아이의 무덤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덧붙였다.
― 본문 「1. 달리는 왜 밀레의 <만종> 속 농부 부부가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아들을 땅에 묻기 전 슬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을까?」 에서
고야는 가로가 3미터 50센티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연작에서 나폴레옹 군대의 무자비한 학살이 빚어낸 엄청난 비극과 마드리드 시민들의 영웅적인 행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재현했다. 특히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또는 “학살”>에서 처형자들을 마주한 희생자들의 비장한 항의의 몸짓, 처연한 표정, 눈을 가린 채 괴로워하는 이들에게서 보이는 감정 표현은 너무도 생생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인 흰 셔츠를 입은 남자는 총을 겨눈 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조국을 지키고자 양팔을 크게 벌린 채 서 있다. 이 ‘흰 셔츠를 입은 남자’는 누구를 모델로 그려졌으며, 누구를 상징할까?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다. 그림 속 ‘흰 셔츠 입은 남자’의 손바닥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못 박힌 상처 자국(성흔(聖痕, stigmata))이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이는 곧 마드리드 시민의 영웅적 희생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이후 많은 그리스도교 성인들의 순교에 버금가는 행위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 본문 「5.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또는 “학살”> 속 ‘흰 셔츠 입은 남자’의 모델이 예수라고?」 중에서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는 함께한 마지막 식사에서 실제로 생선을 먹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식사는 유대인에게 매우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의 만찬이기 때문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축하하며 기리는 날로, 유월절 만찬에는 양고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때 양고기는 애굽에서 탈출하기 전 문설주에 바른 어린 양의 피를 기념하며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유월절 만찬에서 먹은 요리는 생선이 아닌 양고기였을 것이다. 실제로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에는 양고기 요리가 그려져 있다.
한데 다빈치는 왜 양고기가 아닌 생선 요리를 <최후의 만찬> 식탁에 올렸을까? 이는 우선 초기 기독교 시대, 곧 로마제국 시대에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부터 물고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활용한 데서 연유를 찾을 수 있다. 당시 기독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신앙을 비밀리에 유지하면서 물고기 모양으로 서로의 신앙을 확인하거나 안전한 장소를 표시하곤 했다. 왜 하필 물고기였을까? 그리스어로 물고기를 의미하는 단어는 Ichthus(또는 Ichthys, ΙΧΘΥΣ)인데, 이를 ‘예수(Iēsous, Ι)’, ‘그리스도(Christos, Χ)’, ‘하나님(Theou, Θ)’, 아들(Yios, Υ)’, ‘구세주(Sōtēr, Σ)’의 약어로 인식하고는 기독교도 사이에서 통용되는 암호 또는 간단한 신앙 고백으로 활용한 것이다. 또한 성경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해 물고기가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후 제자들을 만나 생선을 먹은 일 등이 그렇다. 이처럼 물고기는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깊이 연관되어 왔다.
― 본문 「18.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 식탁에 주요리로 양고기 대신 ‘생선’을 그린 이유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