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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세계사 일반
· ISBN : 9791188635931
· 쪽수 : 413쪽
· 출판일 : 2024-04-15
책 소개
목차
서문_ 마르틴 루터를 도와 종교개혁의 물줄기를 바꾼 ‘선한 지킬 박사’와 나치스 정치 폭동의 도화선이 되어 세계사를 뒤흔든 ‘악한 하이드 씨’의 두 얼굴을 가진 맥주 이야기
① World History of BEER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성공으로 이끈 맥주 이야기
19세기에 아메리카로 수출된 독일 아인베크 맥주병 라벨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까닭 | 로마제국 멸망 이후 유럽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린 황제 카를 5세, 가톨릭 사제였던 루터와의 대결에서 패배하다 | 파울라너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왜 그토록 맥주 양조에 열을 올렸을까
② World History of BEER
바이에른 군주들이 ‘순수령’이라는 명목으로 맥주 원료를 제한하고 통제한 숨은 이유
바빌로니아 왕 함무라비가 맥주 생산 및 판매와 관련하여 부정한 일을 저지른 사람을 반역죄와 맞먹는 형벌로 다스린 이유는? | 영국이 낳은 세계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아버지가 ‘에일 코너’, 즉 맥주 감시관으로 일했다는데? | 남독일의 뮌헨 맥주가 전통적인 강자 북독일 맥주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맥주 순수령’ 덕분이다?
③ World History of BEER
히틀러는 왜 비어홀을 정치 집회 장소로 자주 이용하고 그곳에서 폭동을 일으켰을까
17세기 초반까지 번영을 구가하던 남독일의 와인 산업이 붕괴하고 맥주 산업이 발달하게 된 결정적 사건은? | 호프브로이하우스를 유명하게 만든 두 역사적 인물, 빌헬름 5세와 아돌프 히틀러 | 나치스는 왜 호프브로이하우스의 대연회장을 집회 장소로 선택했나 | 북독일 맥주와 남독일 맥주 맛은 왜 그토록 극명하게 갈릴까 | 세계적인 축제 옥토버페스트의 기원이 된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왕자와 작센 공주 테레제 결혼식 축하 경마대회 | 왜 다른 맥주가 아닌 ‘메르첸비어’가 옥토버페스트의 맥주로 자리매김했을까
④ World History of BEER
맥주의 발상지, ‘신도 포기한 땅’ 남부 메소포타미아
‘신도 포기한 땅’ 남부 메소포타미아는 어떻게 문명 발상지이자 맥주의 발상지가 되었나? | ‘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 무렵 수메르인이 맥주를 발명했다’라고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 | 고대 수메르인은 맥주로 세금을 납부했으며, 도시와 국가는 노동의 대가로 맥주를 지급했다는데?
⑤ World History of BEER
맥주에 물을 타다 들켜 화형에 처해진 에일 와이프 이야기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왜 맥주를 ‘수준 낮은 술’로 깎아내렸을까? | 맥주에물을 타서 양을 속이다가 들켜 화형에 처해진 에일 와이프 이야기 | 중세 시대 영국의 영주와 주교들은 왜 홉이 독초라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을까 | 맥주잔이도기에서 유리로 바뀌면서 ‘맥주의 색’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의 요소가 되다
⑥ World History of BEER
18세기 잉글랜드를 지배하는 강력한 브랜드가 된 런던 시민의 술, 포터
18세기를 풍미한 맥주 ‘포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 영국의 맥주 제조업을 전통적인 수작업에서 기계를 이용한 명실상부한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 포터 | ‘스타우트 포터’라는 획기적인 신제품으로 18세기 최강자 런던 포터의 아성을 무너뜨린 기네스 | 예카테리나 2세가 사랑하고 즐겨 마신 맥주, 임페리얼 스타우트
⑦ World History of BEER
영국 에일에 치명타를 안긴 파스퇴르의 미생물 연구
영원할 것 같던 영국 에일의 위상을 추락시킨 파스퇴르의 미생물 연구 | 전 세계적으로 ‘지역 맥주 시대’를 활짝 열어 준 캄라 운동
⑧ World History of BEER
중세 수도원은 왜 맥주 양조에 열을 올렸나
오르발 수도원 양조장이 시설을 완전 가동하지 않는 뜻밖의 이유는? | 중세 시대의 수도원들은 왜 맥주를 양조하게 되었을까 | 저급한 술 취급당하던 맥주를 게르만인의 자랑스러운 술로 인정받게 한 카롤루스 대제 | 힐데가르트 수녀원장이 맥주에 홉을 첨가한 최초의 양조기술자였다고?
⑨ World History of BEER
수도원 양조장에 부여된 맥주 양조권이 온갖 권리가 포함된 만능 증서로 인식된 까닭
전 세계 맥주 양조가들의 성지와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한 바이엔슈테판 | 장크트갈렌 수도원에 보존돼 있는 ‘수도원 평면도’가 인류 문화유산이라 할 만한 보물로 인정받는 까닭
⑩ World History of BEER
유리 맥주잔의 대중화가 필젠 맥주 성공의 숨은 주역이었다?
전 세계를 주름잡는 맥주 제조업체의 설립자이자 ‘라거 맥주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제들마이어 2세와 안톤 드레어가 영국의 맥아즙을 훔친 산업 스파이였다고? | 유리 맥주잔의 대중화가 필젠 맥주 성공의 숨은 공신이었던 까닭 | 보헤미아 군주 페르디난트 1세가 사랑한 부데요비체 맥주가 최고의 베스트셀러 맥주 ‘버드와이저’의 원류다? | 효모의 대표 격인 카를스베르겐시스의 위상을 추락시킨 미생물학자 한센의 치명적인 실수 | 1950~60년대에 라거 맥주의 저장 기간 단축이 맥주 양조가들에게 중요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⑪ World History of BEER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맥주가 된 평범한 시골 맥주, 라거
오늘날 세련된 상면 발효 맥주로 사랑받으며 확고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알트비어 | 알트비어와 함께 상면 발효 맥주의 일종인 쾰슈비어가 ‘알트’ 대신 ‘쾰슈’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연유는 한자동맹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밀 맥주는 어떻게 독일 바이에른주를 대표하는 맥주로 자리매김했을까 | 투명한 유리잔의 대중화가 하얀 맥주로 불리는 밀 맥주의 판매에 날개를 달아 주다 | 막시밀리안 1세의 전쟁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을 만큼 막대한 수익을 안겨준 바이스비어 독점 판매권 | 베를리너 바이세는 왜 신맛을 낼까
⑫ World History of BEER
유럽의 ‘맥주 왕자국’으로 누구나 벨기에를 꼽는 이유
만약 유럽에 ‘맥주의 왕자’가 산다면 그는 벨기에인일 것이라는데, 이유는? | 벨기에 에일의 대표 주자 다섯 가지 총정리 | 벨기에 맥주 여행기
⑬ World History of BEER
5,000년 전 수메르인의 맥주 ‘시카루’ 양조법을 계승한 벨기에의 전통 맥주, 람빅
벨기에 전통 맥주 람빅이 5,000여 년 전 수메르인의 맥주 ‘시카루’ 양조법을 계승해 개발되었다고? | 벨기에의 람빅 양조가들이 고집스럽게 가업을 이어 가는 절박한 이유 | ‘맥주계의 샴페인’ 괴즈와 프루트 람빅
⑭ World History of BEER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21세기 세계 맥주 시장
20세기 말부터 본격화한 국제화의 격랑에 휩쓸린 세계 맥주 시장 | 맥주는 이제 돈 되는 장사가 아니다? | 세계 맥주 시장을 뒤흔든 벨기에 국적의 맥주 기업 인베브의 미국 최대 맥주 기업 안호이저 부시 매수 사건 | 경제 대국의 순위와 맥주 대국의 순위가 점점 같아진다?! | 안호이저 부시 인베브와 사브밀러의 중요한 공통점, ‘무국적 신흥 세력’
맥주 미니 사전
참고문헌
리뷰
책속에서
마르틴 루터는 그 유명한 〈95개 논제〉를 썼다. 이후 그 ‘논제’는 습자지에 먹물 번지듯 독일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절묘하게도 그즈음 이미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어 있던 구텐베르크 인쇄기 덕분이었다. 효과는 놀라웠다. 마치 철저히 준비하고 있던 것처럼 독일 전역에서 면벌부 판매를 반대하는 물결이 거세게 소용돌이쳤다.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Karl V, 재위 1519~1556)는 마르틴 루터를 제국회의에 소환했다. 그가 내건 〈95개 논제〉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보름스 제국회의(Diet of Worms, Reichstag zu Worms)의 ‘마르틴 루터 심문 사건’이다. 이는 1521년 4월 17일의 일이다.
제국회의가 열렸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와 각지에서 모여든 제후들이 차례로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대쪽 같은 성정에 담이 큰 루터도 이때만은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손바닥에 자꾸 땀이 배고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루터의 비서이며 신교도이던 여성이 도기로 만들어진 1리터들이 맥주잔을 들고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잔을 받아 든 루터는 단숨에 벌컥벌컥 맥주를 마신 뒤 의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의 두 뺨에는 홍조가 번져 있었다. 이후 마르틴 루터의 격정적인 연설과 뚝심 있는 행동은 유럽 종교사, 그리고 세계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 본문 「19세기에 아메리카로 수출된 독일 아인베크 맥주병 라벨에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까닭」 에서
한데, 흥미롭게도 오래전부터 영국에서도 거의 100퍼센트 같은 검사법이 시행되어 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판정 결과는 정반대였다. 영국에서는 가죽 바지에 벤치가 달라붙으면 불합격 판정을 한 것이다. 이유가 뭘까? 이 경우 맥주의 발효가 끝나지 않아 쓸모없는 당분이 남아 있기 때문으로 판단해서였다. 어찌 됐든 두 경우 모두 기술적인 관점에서 판단할 때 근거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두 경우 중 어느 쪽이 좀 더 타당할까? 영국 쪽이다.
당대의 영국에는 영주가 임명한 맥주 감시관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 맥주 감시관의 직함은 ‘에일 코너(Ale conner)’였다. 에일 코너는 11세기부터 런던을 중심으로 활약해 왔을 정도로 연륜이 깊다. 그들의 주된 업무는 맥주 양조장을 방문하여 맥주의 품질을 검사하는 일이었다. 그 다양한 검사 방법의 하나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가죽 바지 시험’이었다. 에일 코너에게는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양조업자를 적발하여 재판소로 넘길 수 있는 권한도 주어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John Shakespeare)가 에일 코너였다는 점이다.
― 본문 「영국이 낳은 세계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아버지가 ‘에일 코너’, 즉 맥주 감시관으로 일했다는데?」 중에서
성벽, 아니 링슈트라세의 안쪽 도시에는 그 중심부에 시장이 들어서고 시청사와 교회가 세워졌다. 시장과 시청사와 교회는 성벽에 의해 둘러싸인 도시를 이루는 하나의 세트와도 같은 존재였다. 시청사 앞에는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광장은 시민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소통의 공간 역할을 담당했다. 리고 교회는 시민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역할을 맡았다. 시의 행정을 담당한 주체는 시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로 구성된 의회였다. 시청 지하에는 식당이 있었는데 의원들 간 교류 공간이자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식당에는 양조장이 딸려 있어 이곳에서 양조된 맥주가 의원들의 식사 시간이나 집회 때 제공되었다. 이런 식으로 지하 식당은 집회 장소의 기능도 담당했다.
이후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청사가 개방되면서 지하 식당은 비어홀・레스토랑으로 꾸며져 시민 교류의 장으로 변모했다. 이제 유럽 도시의 비어홀은 그 지역 집회 장소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나치스가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의 대연회장을 집회 장소로 선택한 것 역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본문 「나치스는 왜 호프브로이하우스의 대연회장을 집회 장소로 선택했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