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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5519408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15-05-16
책 소개
목차
1장. 달빛
2장. 부조리극
3장. 옥중생활
4장. 죽음의 기록
5장. 당신에게로 가는 길
후기
리뷰
책속에서

당신은 잠을 잘 때 입을 벌리고 자는 버릇이 있다. 창호지 사이로 새어든 어스름이 당신의 입가에 고이기 시작하면, 당신은 맑은 얼굴을 하고 잠에서 깨어난다. 흐트러진 머리를 단정하게 매만진 당신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나를 위해 이불을 어깨 위까지 끌어올려준다. 잠결에도 나는 당신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의 손길은 따뜻하다. 겨울이 걷히고 봄이 왔는데도 여전히 따뜻하기만 한 당신의 손길과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새소리, 이마를 간지럽히는 햇살, 한꺼번에 잠에서 깨어난 오리들이 단체로 꽥꽥거리는 소리와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은 아이가 이불 속에 파묻혀 징징거리는 소리,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새소리가 옅은 꿈속에서 오래도록 머무른다.
밥을 짓기 위해 아궁이 위에 솥을 앉혀놓은 당신은 포대에서 사료를 한 바가지 퍼서 오리들이 먹을 수 있도록 골고루 뿌려준다. 집과 한 몸으로 붙어있는 사육장이 아침식사에 신난 오리들의 꽥꽥거리는 소리로 한동안 시끄럽다. 부지런한 당신은 아침상에 내놓기 위해 밭에서 채소를 고르고, 부엌간과 뒷간을 청소한 뒤에 수돗가에서 물을 길어 세수를 한다.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목 뒤까지 씻는 김에 젖은 손으로 머리까지 한 번 다독인다. 당신은 밥 익는 냄새가 솔솔 구수하다고 생각한다. 널어놓은 이불 빨래가 햇살에 하얗게 반짝인다. 당신은 아직 덜 마른 빨래를 한동안 손으로 어루만지며 서있다. 언덕 위에 있는 집에서는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는데, 언덕 아래의 집들에서도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다. 멀리 큰길을 따라 늘어서있는 교도소의 사옥들에서는 간간이 사람들의 그림자가 비친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홀로 떠있었는데, 당신은 그것을 보고 마치 포대기에 쌓인 아이 같다고 생각한다. 곧 깨져버릴 것만 같은 평화로운 아침이 당신에게는 밥 익는 냄새처럼 구수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