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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정치비평/칼럼
· ISBN : 9791195715015
· 쪽수 : 108쪽
· 출판일 : 2018-11-26
책 소개
목차
1. ‘좌파이긴 하지만……’
2. 모범주의 투쟁
3. 자유? 자유주의?
4. ‘모두 엿 먹어라!’
5. 그리고 결국, 어떤 연대도 해체되고 만다
6. ‘우파이긴 하지만……’
7. 신념을 아껴 두는 법
8. 별 볼일 없는 사람
9. 평범한 중산층 독자가 알지 못하는 것
10.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세상
11. ‘보수주의자이긴 하지만……’
12. ‘바보가 되시오!’
13. 좌? 우?
14. 경계 좌파
15. ‘극우’라는 환상
16. ‘솔직하라’
17. 다시 폭압의 구덩이로
18.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
19. 음모론자들
20. 분노와 암흑의 세계
21. 메디오크라시
22. 어리석음
23. 그럼에도 불구하고
24. 내가 뭘 할 수 있겠느냐고?
해설_ 중도,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리뷰
책속에서
1795년부터 1820년 사이에 벌어진 프랑스의 부르주아적 의회주의 시초에 관심을 두고 연구한 역사학자 피에르 세르나는 변절이라는 관점으로 ‘극단적 중도’를 살펴본다. 그가 “변절자 공화국”이라고 명명한 지금의 정치 집단은 공공 업무에 있어서 중용과 균형, 정확성을 표방하는 정치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상황이 변할 경우 일말의 가책도 없이 입장 번복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자신이 했던 발언을 뒤집는다.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던 시대는 지나갔다. “허술하고 유동적이며 일회성에 그치는 주장이 판치며, 때에 따라 혹은 이상을 버리고 냉정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 그 허술한 약속마저 왜곡, 손상, 오염되고 종국에는 무의미해지는 시대로 서서히 접어들고 있다.”(피에르 세르나, 『변절자들의 공화국』, 2005). 그런데 오늘날의 극중주의는 위의 표현마저도 과분할 정도이다. 주장과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꾸는 자유주의 정당(당시엔 급진적이라고 불렸다)이 판치던 제3공화국, 그리고 그 이후 모호한 화법을 일삼던 형이상학적 관념론자들의 시대를 지나 정치 관료 시대에 이르자 그들은 신념을 아껴 두는 법을 터득한 모양이다. 이제는 자신의 발언을 번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다.
<6_ 신념을 아껴 두는 법> 중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언급된 ‘압축’과 ‘전위’의 양상이 극중주의자들의 정치 논쟁에도 엿보인다. 그들은 기저에 깔려 있는 중대한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어 온몸으로 맞서기보다는 과부하가 걸려 감각이 비틀어져 나타난 상징을 중심으로 세상을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과도한 산업 개발로 야기된 일상적 환경 문제보다 탄소배출권 거래소에 대한 이야기가 더 화제에 오르고, 시리아 내전의 원인이 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난민 관련 기사를 언급하며, 그리스 국민들을 빚더미에 올려놓은 잘못된 과정을 논하기보다 부채 상환 방식에 더 관심을 갖는다. 다국적 기업의 초법적 권력은 국회의 논쟁으로 가려지고, 간단한 식이요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암 예방법은 일부 암 치료법을 둘러싼 이익 다툼에 희생되고 만다. 지방의 하키 장비 예산 문제가 국가 기금 운영 문제보다 더 큰 관심사가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이민자에 대한 토론은 피부색, 출신지가 다른 사람들의 범죄 행위에 대한 논의에 그치거나 또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이슬람 여성이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조금 신체를 가린다고 시비를 거는 등 겉치장 문제로 흘러가기 십상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들을 은폐하기 위해 부차적인 수많은 주제를 가지고 다들 미친 듯이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이다.
<20_ 분노와 암흑의 세계> 중에서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이것은 질문이라기보다 차라리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외침에 가깝다. 시대의 문제를 논하는 자리라면 어디든 이 외침은 어김없이 들린다.
지구 생태계가 위협받고 석유회사는 그 어떤 국가보다 막강한 마피아적 경제 권력을 행사한다. 방송 프로그램은 인간을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한 신경학적 실험의 산물이다. 수많은 생물종이 멸종되고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쓰레기 대륙이 태평양 한가운데 만들어졌으며 세계 여러 곳에서 심각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뒤따르는 질문은 일체의 응답 가능성을 소멸시키고 만다. ‘반지하 방에 박혀서 냉동 피자나 먹는 별 볼일 없고 하찮은 일개 소시민인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겠어? 취업은 쉽지 않지, 집세는 자꾸 오르지, 시위라도 할라 치면 경찰은 무자비하게 진압하지, 게다가 빚은 또 어쩌고?’ 이 말은 곧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나 살기도 힘든데 무슨 여력이 있어서 주변 상황을 바꾸겠어?’라는 뜻의 다른 표현이다.
제2의 드골이 나타나 주위의 간절한 부름에 응답해 주길 바라고, 대중이 믿고 따를 간디 같은 인물이 출현해 주길 기대하지만 정작 자신은 자기 자리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는다. 실제로 아무런 정치적 힘이 없지 않은가?
<24_ 내가 뭘 할 수 있겠느냐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