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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6243104
· 쪽수 : 156쪽
· 출판일 : 2017-12-15
책 소개
목차
1.
몰입
고양이 연탄곡
수요와 공급에 관한 보고서
카피카피
섬세한 세공사
안전운행 수칙
마음의 체위
락쉬마나 사원의 모범 동화
바구스 바커스
달걀주의자
나비
요조숙녀의 잠꼬대
프리젠테이션 하는 날
속도
이혼 14년 차
해피 앤딩
손톱깎이
너에게 달린다
숲의 테라피
세탁기 명상
운동회 색전
엉덩이
2.
코카 콜라
백고동
보지
산책로에서
두부 단상
후회를 삼키는 달콤함
뿔
고백
시베리아 사랑
자위(自慰)-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
필름을 열다
이불
손 위의 달
거절을 판매하지 않는 제과점
지짐이 창가
눈 속을 헤매는 자
3.
K의 직업관
슬픔의 주소
마조히스트의 정직한 파랑
사랑이 꽃 피는 나무
주관식 문제 풀이
첫 번째의 신화
공생충
쇄말주의자의 역설
그러니언 런(grunion run)
수족관 기행
섹시한 것은 강하다
언어의 탄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뿔
이태원 해밀톤 호텔 환락가 끝 네온이 내려앉는 저녁, 나는 길 위에서 케밥을 먹고 있었다 그때 뉴질랜드 남부에서 여행을 시작한 알파카 사슴 한 마리가 동물들과 함께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눈이 마주치자 사슴은 내 발밑 비탈진 그늘과 습한 거웃 냄새를 천천히 맡기 시작했다 소란스런 차들의 냄새가 사라지는 골목에서 우리는 짧게 담배를 피우고 난쟁이 흑인의 재즈가 흐르는 작은 바의 문을 두드렸다 사슴은 오렌지 껍질이 들어간 네그로니 두 잔을 주문하고 자신의 스펙을 말하기 시작했다 작은방 창문에 스미는 햇살과 강아지 두 마리,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작은 화분의 꽃과 살았던 이야기, 도시가스 끊긴 겨울에 1인용 장판에서 숲의 동물들과 잠들었던 얘기도 잊지 않았다 난 큰 뿔이 된 스펙에 눈물이 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양지식물에게 필요한 빛과 정치의 속성을 변기에 앉아 생각해 보았지만 그의 뿔은 자꾸 자라 웅장하고 큰 나무로 성장하고 있었다
사슴의 집이 어디인지 묻지 않았다 그를 덮은 노란 외투의 출처가 궁금했다 유니콘이 되고 싶냐고 묻자 자신은 사슴이라고 대답했다 바를 나와 봄을 연주하는 음표 위를 걸을 때 뿔 같은 성기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단단한 엉덩이 사이를 쳐다보았다 조신한 척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안부전화를 하자 치마를 올리라 사슴이 히륵히륵 이야기를 했고 그는 내가 사슴씨라고 다정하게 부를 때마다 발기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때 나의 아랫배 밑 검은 수풀이 부드럽게 울창해지고 그의 뿔이 수북한 수풀을 헤집는 환각에 사로잡혔다
며칠 뒤 사슴은 내게 걸어왔을 때처럼 연락 없이 동물들과 뉴질랜드로 떠났다 이태원에서 서성일 때면 골목 어딘가에서 사슴뿔이 나타나는 환영에 사로잡혔다
환락가 귀퉁이에서 그의 뿔 그림자에 시달린 날엔
밤마다 그 큰 뿔이
은밀한 침대 위에서 밤의 굵기처럼 웅장하게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