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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비평/이론
· ISBN : 9791196501174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24-03-01
책 소개
목차
[서문]
[제1장] 인간의 '위치적, 감성적' 일상은 디자인으로 체계화된다
-인간의 수납과 흐름은 물류의 미학과 닮아 있다
[제2장] 우리가 사는 세상은 디자인된 이세계(異世界)다
-예술, 그리고 장르-세계관의 디자인된 감수성과 그 설득
[제3장] 신체의 정렬과 수납에 대한 욕망은 디자인에 대한 욕망이다
-신체의 균형에 대한 요구는 불안을 통제하려는 시도다
[제4장] 디자인은 불안에 대한 해소이자 동시대의 조건적 질병이다
-세상이 디자인이라면, 무엇이 선택되었고 무엇이 탈락되었는가?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디자인은 세상의 변화가 불러일으킨 감각을 다양한 물질적 · 개념적 모양과 형태에 반영하여 시대가 요하는 가치를 미적으로 드러내는 과정이다. 19세기 말 영국과 독일에서는 이미 알프레드 리히트바크 Alfred Lichtwark, 아돌프 루스 Adolf Loos 나 헤르만 무테지우스 Hermann Muthesius 등 이론가들이 ‘장식적이지 않은 매끄러운 표면’을 디자인의 기본 원리로서 전면에 내세웠다. 이러 한 이론가들은 ‘현대적인 사람’의 가치체계와 정신적, 윤리적 건강을 위해 ‘매끄럽고 단순한 디자인’을 통해 사람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콜로미나와 위글리는 매끄러운 표면이 ‘정직하고’, ‘직설적이며’, ‘명확’ 하고, ‘순수’하고 ‘깨끗’하고, ‘위생적’이며, ‘건강’한 것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디자인은 윤리적 체계이면서 동시에 미학성과 연결되었다. 나는 이 연결이 사회적 현상이나 가치의 체계가 미학으로 발전된 경우인 것으로 생각하며, 새로운 시대에 대한 어떤 감정적 필요나 감수성이 미학이 된 경우라고 본다. …(중략)… 디자인이 단순히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서서 어떤 정신적 · 감성적 상태에 대한 미학을 선과 면, 그리고 모양으로 표현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그리하여 특정한 감각이 더 좋고 이상적이라는 가치체계가 디자인된다. 또한, 실제 환경 안에서 이 감각들이 ‘디자인’으로 실체화된다.
2016년 신세계의 온라인 쇼핑몰 ‘SSG 쓱’의 광고는 에드워드 호퍼풍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정적이지만 직설적인 이미지를 통해 화면을 ‘쓱’ 넘기면서 쇼핑할 수 있는 SSG 서비스의 명료함을 미학적으로 선보였다. 2020년에는 물류체계의 측면을 부각하여 물류 컨테이너와 같은 길고도 긴 SSG 배달트럭이 도로 한복판을 막고, 주문자를 연기한 배우 공효진이 주문하는 대로 그 안에서 바로 식빵을 굽거나, 소젖을 짜고, 그리고 낚시를 하여 생선을 잡는 생산자 역인 배우 공유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모든 복합적 과정은 결국 명료하고 절제된 노란색 SSG트럭 안에 모두 수납되어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컨테이너 트럭안에서 벌어지는 가지각색의 다양한 생산 활동보다 그 엄청난 스케일 자체를 간단하게 담아내는 트럭의 강렬한 명료함이 중요한 미학적 포인트를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미지의 활용은 직관적인 이미지에서 편리함과 효율을 느끼게 하고, 그 편리함과 효율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만든다. 동시대의 두드러지는 현상 중, 사회적 현상이 불러일으킨 감정 · 느낌이 미적 가치가 되고 이것이 물질적 · 개념적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로지스틱스 logistics, 즉 물류체계일 것이다. SSG 광고도 물품의 생산, 보관, 운송의 복합적인 과정을 포함한 로지스틱스를 소비자 시각 중심으로 간단하게 표현하여 그 간단함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이미지를 활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로지스틱스가 이러한 ‘이미지’로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것보다는 로지스틱스의 과정 자체가 어떤 미학성 aesthetic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미학성은 물류의 분류, 체계화, 그리고 이동을 관장하는 ‘일정 형식들이 종합적으로 합쳐지면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흐름의 양상’이 주는 ‘느낌’에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간단한 클릭으로 물건이 나에게 배송되는 것, 다음날 새벽이면 받을 수 있는 것, 신선한 상태로 배달되는 것은 효율성과 끊임없는 흐름이 가진 편리함을 좋은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 좋은 편리함은 아름다운 것이 되고 미학이 되어 디자인(사람, 공간, 물품, 환경)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소비 문화, 거대한 물류의 체계, 그리고 물품의 끝없는 모음을 상징하는 로지스틱스가 아름다움으로 치환되고 다시 시스템의 디자인에 반영되어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반대로 환경이 그 가능성을 제공해주어도 우리가 감각하고 인지하지 못한다면, 혹은 그 감각과 인지적인 관점이 우리 안에 제대로 내장되어 있지 않다면 그 가능성은 아예 우리가 ‘아는’ 세상으로서 존재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나는 단순히 물체, 가구, 건물 등 물리적 요소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 체계까지도 이와 같은 환경의 가능성에 반응하여 만들어진다고 본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은 인간 중심의 주체적인 사고 과정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환경이 우리가 어떤 생각들을 하게끔 만들어져 있고, 그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우리는 생각을 하고 감각을 하지만, 단지 그것을 우리의 주체적인 생각과 감각인 것으로 인지하는 것일 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환경이 제공하는 것을 바탕으로 감각하고, 인지하고, 추리하여 세상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그것은 어쩌면 세상이 허락해 주는 만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이 허락해주는 범위는 바로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디자인된 세계관을 가진 장르로서의 세상일뿐인데 이것을 우리가 ‘완전한 세상’으로 간주하면서 생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