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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6654245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22-10-05
책 소개
목차
1부 정주영과 쌀집 할머니
- 운명적인 만남
- 쌀집 연극단
- 변중석 여사
- 의리의 정주영
- “제가 이 집 사위를 노렸어요”
- 정주영의 종교는 부모
- “내가 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안 했어”
- 아주머니 가족은 나의 가족
2부 체육인 정주영
- 서울올림픽 유치 민간 추진위원장
- 대한체육회장
- 체육회 체질을 바꾸다
- 뉴델리 아시안게임
- 궁도협회에서 양궁 분리
- “손가락 끝에 묻은 똥은 똥이 아냐?”
- “한 푼도 낼 수 없습니다”
- 대한체육회장 해임
- 현대 남자농구단 창단
- “농구는 키야”
- “24번 데려와”
- 현대축구단 해체 소동
3부 정치인 정주영
- “반값 아파트가 왜 안돼?”
- “1억만 줘도 돼”
- “그 돈 있으면 내가 대통령 하지”
- 깨진 대통령의 꿈
- “나를 선택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의 실패”
- 무산된 대선 재수
4부 정주영과 대북 사업
- “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어”
- 1,000은 끝나는 수지만 1,001은 이어지는 수
- “5개월 안에 공사 끝내”
- 정주영과 김정일
5부 아이디어맨 정주영
- “비∼영신, 파일 눕혀서 깔아”
- 고정관념 깨기 전문가
- “이런 빈대만도 못한 놈”
- 잔디가 없으면 보리싹으로
- “사면이 바다인데 소금을 왜 뿌려?”
- “그럼 사이즈 키워”
- “깡통이라도 두드려”
6부 정주영의 혜안
- 정주영 앞에서는 KS도 개뿔
- “보험 들었으면 못했지”
- “중국 애라고 날리지 말라는 법 있어?”
- “어느 나라에서 수출하는 거야?”
- 반도체는 미래의 쌀
- 자동차 엔진 개발
- 부동산 전문가 정주영
- 러시아 가스 파이프라인
- 도둑을 채용하다
- 상황에 맞춰, 사람에 따라
7부 박정희와 정주영
- 경부고속도로 건설
- 조선소 건립
- “사채를 동결해 주십시오”
8부 검소한 정주영
- 사훈이 ‘검소’
- “난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어”
9부 정주영과 언론
- “언론은 약자 편에 서야”
- 문화일보 창간
- 기자와 친했던 대기업 회장
10부 정주영과 가족
- 사랑과 엄격의 두 얼굴
- “진작 큰 회사를 맡길걸”
- “장자에게 자동차 넘기는 게 잘못됐어?”
-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살려만 달라”
- 인격적으로 대한 첫째 동생
- 가장 각별했던 동생 정신영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1. 제가 이 집 사위를 노렸어요
할머니의 큰딸, 즉 나의 고모는 1917년생으로 정주영 회장보다 두 살 아래였다. 경성사범학교(서울대 사범대 전신)를 나와 치과의사와 결혼한 고모의 인생은 6.25 전쟁 때 고모부가 납북되면서 다 망가졌다.
미국 이민 간 고모가 1970년대 후반에 잠시 귀국한 적이 있었다. 정 회장은 할머니와 고모, 그리고 나의 어머니를 울산에 있는 현대조선소(현 현대중공업)로 초대했다. 정 회장은 할머니에게 뜻밖의 고백을 했다.
“아주머니, 사실은 쌀집에서 일할 때 따님에게 눈독을 들였었어요. 이 집 사위가 돼서 쌀집을 물려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고. 그런데 주인집 따님에다가 워낙 공부를 잘하니까 언감생심 말도 꺼내지 못했어요. 말이나 해볼 걸 그랬나요. 허허허.”
그때 나는 초한지(楚漢志)를 떠올렸다. 흙수저에 한량이던 유방(劉邦)의 비범함을 알아채고 자기 딸을 아내로 준 여공(呂公)이 생각난 것이다. 만일 할머니가 여공처럼 관상에 뛰어나서 쌀집 점원 정주영을 사위로 삼았더라면 현대 회장이 나의 고모부가 됐을 텐데. 역사에 ‘만약에’는 없는 법이다.
2. 내가 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안 했어
쌀집 할머니 차소둑 할머니는 1989년 9월 30일, 만 94세에 돌아가셨다. 정주영 회장은 할머니의 부음을 듣자마자 누구보다 먼저 ‘現代 그룹 회장 鄭周永’ 명의의 조화를 빈소에 보냈다. 이틀째, 정 회장이 불쑥 빈소로 찾아왔다. 비서 등 수행원도 없이 혼자였다. 정 회장은 할머니 영정 앞에서 정중히 절을 하더니 한참 동안 영정을 바라보았다. 상주들은 명절 때마다 잊지 않고 할머니를 챙겼던 정 회장이 직접 조문까지 와준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한참 동안 앉아있던 정 회장이 일어서자 내가 엘리베이터까지 모시고 가서 배웅해드렸다. 그런데 분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정 회장이 급히 돌아왔다. 깜짝 놀란 상주들이 “혹시 놓고 가신 것이 있느냐”라고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안 하고 나왔어.”
그러곤 다시 영정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상주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수행 비서 없이 혼자 조문하러 온 재벌 총수,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며 다시 돌아온 정 회장의 배려심에 저절로 존경이 우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3. 손가락 끝에 묻은 똥은 똥이 아냐?
1983년 3월 16일, 씨름의 프로화를 내걸고 민속씨름이 발족했다. 그리고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정 회장은 현장에서 대회를 지켜봤다. 당시 무명이던 이만기가 혜성처럼 나타나 초대 천하장사를 차지했다.
그런데 전국체전이 문제가 됐다. 체육회는 ‘씨름 선수 중에 장사 씨름대회에 참가한 프로선수들은 아마추어들의 잔치인 전국체전에 참가할 수 없다’라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씨름인들은 정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씨름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스포츠인데 전국체전에서 빠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정 회장은 곧바로 체육회 대의원 회의 안건으로 이 문제를 상정했다. 대의원 대부분은 반대했다. 프로선수들은 아마추어 선수들의 잔치인 전국체전에서 빠지는 게 옳다는 논리였다.
그러자 정 회장이 기가 막힌 비유를 했다.
“나도 예전에 씨름해봐서 알아요. 씨름은 옛날부터 이기면 황소도 주고, 쌀가마니도 주고 그랬어. 이봐. 무더기 똥만 똥인 줄 알아? 손가락 끝에 묻은 똥은 똥이 아냐?”
이 한 마디에 대의원들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정 회장은 이어서 “우리 민속스포츠인 씨름의 발전을 위해서 체전 종목에 넣어야 한다”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