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7001987
· 쪽수 : 286쪽
· 출판일 : 2022-07-15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4
하나, 오래된 기억을 열다
개집말? 기와집말? / 개수영 / 향돌 / 개는 세 끼 다 먹으면 죽어 / 한 번만 속아 드릴게요 / 큰아버지 바보 / 네 잘못이 아니야 / 그런데 그 할머니는 왜 도망가셨어? / 개가 죽을 때가 되면 어떤지 알어? / 나도 기도드렸다 / 소꿉놀이 / 버스에서 / 착한 근식이 / 필조야, 너 소똥 냄새나 / 겨울 숲 / 그림일기 / 혀 짧은 집사님 / 고추씨도 받아요? / 척사대회 / 지름길
둘, 사진이 글이 되었다
잔술의 추억 / 묵밭 / 사륜구동과 검색 로봇 / 가을 생무 / 이름 없는 가게 / 사진 찍는 날 / 화로는 따뜻했었지 / 고려장이 뭔가요 / 아 놔둬, 덜 말라서 안 털린다니까! / 차가운 방 / 너무 넓어 혼자 살기에는 / 카메라를 보내며 / 단골집 / 밀접접촉자 / 사월과 오월 사이 〈붓꽃에게〉
셋, 어머니, 아버지의 자리
그런데 왜 결혼했어 / 그래서 태어날 때 우는 걸까 / 동네 방송 / 어쩐지 맛있더라 / 금방 오실 거야 / 하얀 양말 / 알았어유, 전화도 못 하게 해 / 우리 아버지 음치여유 / 뭐긴 뭐여 이눔아, 니 엄마지! / / 개조심! / 귤 한 봉지 / 큰엄마 기억나 / 명절 아침 / 역시나 불효자 / 청국장 / 마음의 짐 / 아빠, 할머니 보러 가자 / 보이스피싱 / 도시락 / 바퀴만 잘 굴러가던데 왜 그려! / 임영웅 씨 고맙습니다 / 백신이 독하다던데
넷, 나를 찾아 떠난 여행들
지겹도록 아름다운 몽골 / 당신이 만약 무이네(Mui Ne)로 떠나겠다면 / 이순신 장군을 모른다고요? / 양곤(Yangon)의 시장에서 / 코끼리 바지 / 판소단(Pansodan) 항구의 추억 / 동그랗게 걷지만, 돌아올 수 없는 길 / 무서운 꿈 / 웃지 마, 정들어 / 부엉이 항아리를 든 남자 / 내 이름은 / 한 달 살기 / 오키나와에는 맛있는 스시집이 없어요
다섯, 친구와 학교, 선생 최필조
운동회 / 정애야 미안했어 / 2학년 2반 54번 황정식 / 니가 해라 반장 / 개근상 / 너무 늦은 인사 / 너만 없으면 그냥 집에 가도 될 텐데 / 동백이 / 경자 딸 / 선생님은 대답해주지 않으셨다 / 전교 1등 친구 / 늦둥이 용규 / 그런데 알고 보면 비슷한거야 / 이발하셨어요 /방수(防水)의 의미 / 지민아 재밌었겠다! / 우리 흉내 내지 말고 해보자 / 장래 희망 / 경석이 할머니 / 선생님도 같이 해요 / 산타 할머니 / 친주(州)의 교실에서 / 어쩌면 좋겠어
여섯, 익숙한 듯 아닌 듯한 일상
비문증(飛蚊症)과 아메바 은하 / No Plastic / 수박 헬멧 / 별 보러 꿈나라로 / 새벽 배송 / 너나 나나 / 저는 바하 치다가 말았어요 / 퇴근길 / 미용실에서 1 / 미용실에서 2 / 해바라기 앞에서 / 막내딸! 꽃구경 갈까 / 그만 마시고 가자 / Writer’s Shaking / 시집이 도망갔다 / 나를 좀 쉬게 해줘 / 동그란 숲 / 친구의 첫사랑 / 딸바보 기사님이 배정되었습니다 / 마이 프레셔스! / 헌책방 / 따뜻한 콜드브루 주세요 /노안(老眼) / 너무 미안해 말자
Photo Epilogue(사진 에필로그)
책속에서
<들어가는 말>
쉬는 시간이었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콧물이 났다. 웅성거리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봄 아지랑이처럼 나른하게 들렸다. ‘필조야 너 감기 걸린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 이마를 짚어보며 말씀하셨다. ‘괜찮아요, 선생님.’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씀드렸다. 3월이었다. 이제 막 만난 선생님께 약골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겨우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걸었다. 아침보다 따뜻한 오후의 햇빛이 좋았다. 당장 어디에라도 누우면 잠이 들 것 같은 몽롱한 기분이었다.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를 찾았다. 그런데 엄마가 없다. 밭에도 없다. 어디로 가셨을까? 가방도 풀지 않고 마루에 앉았다. 안마당에는 햇빛이 거의 사라지고 마루 끝에만 조금 남아 있었다. 삼각형 모양의 햇빛이었다. 나는 그곳에 웅크리고 누웠다. 그리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엄마의 입술이 이마에 닿는 게 느껴졌다. 엄마는 자녀들의 체온을 알아볼 때 입술을 이마에 대고 어림하셨다. ‘우리 막내 감기 들었네.’ 나를 번쩍 안고서 방으로 옮기셨다.
나는 감기에 걸리면 이 기억을 떠올린다. 단순히 영상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텅 빈 집이 주는 허전함, 나무 마루의 거칠고 따뜻한 느낌, 엄마의 입술이 닿는 촉감 등이 또렷이 기억난다. 그래서 감기는 싫지만 나른한 기분만은 싫지 않다. 한숨 푹 자고 나면 이마에 입술을 대고 체온을 재는 엄마를 만날 것만 같다.
나는 글을 쓰고 사진 찍는 나를 감기에 걸린 아이에 비유하곤 한다. 엄마 없는 빈 집에 누워 온기를 찾는, 그날의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마음이 으슬으슬 춥고 떨리면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떠난다. 그곳이 어디든 나를 위로해줄 따뜻한 쪽마루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개는 세 끼 다 먹으면 죽어>
“엄마 왜 흰둥이는 점심 안 줘”
“필조야, 개는 세 끼 다 먹으면 죽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것도 같다
사람 먹고살기에도 빠듯했던 시절
기르는 짐승까지 챙겨 먹이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씀을 오랫동안 믿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꼬리를 흔들며 배웅하는 개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흰둥아, 아침밥 남기지 말고 다 먹어.”
“그리고 너 저녁까지 배고파도 참아! 알았지”
<그런데 그 할머니는 왜 도망가셨어?>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이 아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대학 시절 처음 알았다. 뭔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어 머니께 꼬치꼬치 캐물었던 기억이 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할머니 역시 재혼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께는 성이 다른 누이 가 계시다. 어린 시절 그분을 본 기억도 있다. 그냥 고모인 줄로만 알았다. 딸을 데리고 시집을 와 오 남매를 더 낳아 키우셨으니 우 리 할머니 정말 대단하시다.
그런데 첫 번째 부인과는 왜 헤어지신 걸까? 어머니나 아버지께 서는 별다른 말씀을 안 해주신다. 다만 할머니의 시어머니가 엄청 나게 무서우셨다고, 아마 밥도 안 주고 일만 시켜서 그랬을 거라고 하셨다. 정확한 이유를 아무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밥도 안 주고’라는 대목에서 마음이 먹먹해진다. 집 에서 키우는 가축도 끼니를 챙겨주는데 왜 며느리에게 밥을 안 주신 걸까? 얼마나 힘들고 어색하고 배고팠을까? 할아버지는 왜 지 켜주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그분 덕분에 내 할머니가 시집을 오셨고 아버지가 태어났고 나까지 태어났으니, 무의미한 생각이다. 그냥 안쓰러울 뿐….
며칠 전 유튜브에서 거대한 음식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크리에이터를 보았다. 내가 일주일 동안 먹을 양을 한 번에 다 먹는다. 더 재밌는 건 그렇게 많이 먹는 능력으로 돈을 벌어 건물을 샀다고 한 다.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소화력도 경쟁력인 시대다. 나는 신기해서 이 유튜버의 다른 영상도 찾아보았다. 정말 대단했다. 어느 영상은 밭에 앉아서 밥을 비벼 먹는 모습이다. 거대한 양푼에 밥과 밭에서 바로 딴 채소를 넣어 비빈다. 먹고 또 먹는다. 밭에 있는 채 소를 다 먹을 기세였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할아버지의 도망간 부인 이야기가 생각났다. 왜 그랬을까? 신기한 일이었다. 집안 누구도 꺼내지 않는 이유로 오랫동안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나 는 또 잊어버리기 전에 글로 옮겨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