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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91197099090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22-02-15
책 소개
목차
누가복음에 대하여 5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눅 1:1) 8
헤롯 왕가에 대하여(눅 1:5) 12
왜 믿을 수 없는가?(눅 1:18,34) 16
인구조사의 미스터리(눅 2:1,2) 20
예수를 기다리는 사람들(눅 2:11) 24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눅 2:35) 27
예수님의 어린시절(눅 2:52) 30
회개에 합당한 열매(눅 3:8,9) 34
독사의 자식들에게 주는 메시지(눅 3:15,16) 38
주의 은혜의 해(눅 4:18) 41
어느 것이 더 쉬운가?(눅 5:23) 44
너는 누구와 함께 먹고 마시느냐?(눅 5:30) 47
천국 복음의 원리(눅 6:35) 51
최고의 믿음과 삶의 지혜(눅 7:35) 55
너희는 어떻게 듣는가 조심하라(눅 8:18) 59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눅 8:25) 63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눅 9:26) 67
너는 어떤 부류인가?(눅 9:62) 70
칠십인 제자들의 복(눅 10:23,24) 73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눅 11:2) 77
응답받는 기도의 원리(눅 11:9) 80
영적전쟁의 실체(눅 11:52) 84
카라즈(Caraz)(눅 12:56) 87
이스라엘 Plan(눅 13:16) 90
교회와 소금의 균형(눅 14:33-35) 93
구원의 섭리와 기쁨(눅 15:7) 96
율법의 딜레마(눅 16:16) 99
영혼의 딜레마(눅 16:31) 102
영혼의 스캔들(눅 17:2) 106
용서의 정의(눅 17:3) 109
믿음생활의 다섯 가지 오해(눅 18:34) 113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눅 18:41) 118
주께서 쓰시겠다!(눅 19:32-34) 122
왕의 눈물(눅 19:41,42) 125
The Day of Questions(눅 20:43) 128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눅 21:34) 131
닭은 아침마다 운다(눅 22:31) 134
전대와 검을 가지라(눅 22:36) 137
누구를 위해 우는가?(눅 23:28) 140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눅 24:32) 144
성령의 능력이 입힐 때까지(눅 24:49) 148
저자소개
책속에서
예수를 기다리는 사람들
(누가복음 2:11)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메시아의 계보적 사명을 갖고 태동한 선민이다. 그러므로 메시아의 족보는 항상 인류의 조상 아담과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 그리고 위대한 통치자 다윗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지금도 그들은 다윗의 자손 메시아의 왕국을 소망하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은 구원자 메시아의 오심을 영접하지 않았다.
사실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 안에는 2만명이 넘는 레위사람들이 순번을 따라 예배를 집도하며, 대대로 이어온 제사장 가문, 장로들, 서기관들은 고사하고 회당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건함을 자랑하고 있었는가? 그들은 스스로 가문의 명예를 자랑하며, 예배와 의로움을 뽐내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그들은 아브라함으로부터 계시된 다윗의 자손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지 않았다.
메시아의 탄생 소식은 천사들에 의해서 베들레헴 지경의 목자들에게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라 너희가 강보에 싸서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의 표적이라“전하였다. 만약 지구상에 짐승의 먹이통 '구유'에서 태어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이 사건은 '표적'이 될 수 없다.
천사의 말을 들은 목자들은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우리 앞에 이루어진 일을 보자"하고 달려갔다. 이 얼마나 순수한 믿음인가? 만약 유대인들이 그들 중에 이루어진 사실들을 살펴보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이처럼 초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원하지 않고 있었을 때에도 이 땅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기다리는 예비된 사람들이 있었다.
요셉과 마리아 부부는 모세의 할례의 법을 따라 8일째 되는 날 천사가 이른 대로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였다. 그들이 아기 예수에게 할례를 베풀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할례를 받지 않은 자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모세의 법에 규정된 율법에 따라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를 성별하여 주께 드리는 결례를 행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들이 비둘기 한 쌍으로 제사를 드린 것으로 보아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마리아 부부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 예를 드리고 있을 때 마침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경건한 유대인 시므온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령으로부터 주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지시를 받았었다. 그는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송축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성전 안에서 과부 된 지 팔십사 년 된 과부 아셀지파의 안나라는 예언자이다. 그녀는 출가하여 일곱 해를 남편과 살다가 사별하였으니 그녀의 나이는 100세가 넘었을 것이다. 그녀는 예루살렘의 구속을 바라며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이 종말의 시대를 살며 하나님의 위로와 온전한 구속을 바라는 사람들 중에 과연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며, 계시를 믿으며 금식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예수님의 이 땅에서 맞이한 요셉과 마리아와 같은 순전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므온과 같은 소명을 주시고 안나와 같은 순전한 믿음을 주십시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핵심연구]
1.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가 왜 표적이 되었을까?
2.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3. 요셉과 마리아는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게 할례를 베풀어야 했을까?
4. 시므온은 어떤 믿음을 가졌는가?
너는 누구와 함께 먹고 마시느냐?
(누가복음 5:30)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함께 먹고 마시는 기쁨은 인생의 희락을 누리는 복 중에 하나다. 함께 생활하는 혈육이 없는 나로서는 나와 함께 먹고 마시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만약 이들이 없다면 나는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였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죄인과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들과 동류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수장이 된 사도 베드로 역시, 안디옥 교회에서 동일한 짓을 하여 바울에게 면전에서 책망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 예수께서 죄인으로 정평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 것도 모자라 그의 초대를 받아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것이다. 이에 유대인들이 일어나 어찌하여 죄인과 함께 먹느냐고 항의를 한 것이다.
이때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가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다” 말씀하시여,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또한 모든 죄인들을 회개를 해야만 한다는 원론적인 가치기준을 말씀하신 것이다.
세상은 사람의 외적 가치를 따라 판단한다. 그러므로 세상에 들어 난 죄의 과거를 가진 사람들은 공직에 오를 수 없고 일반 사회 취업에도 제한적이다. 이러한 상황은 종교계에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기독교계에서 동성애자는 목회자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을 확정하였다. 그들은 탈동성애자에 대한 조항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 같은 사람들은 목회자로 헌신할 수 없게 된다.
흥미롭게도 나는 젊은 시절 동성애자로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누구에게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의상실을 운영하고 클럽을 운영할 때 오히려 동성애 성향인 것이 더 도움이 되었다. 꺼리긴 것은 세상이 아니라 오히려 내 심령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스스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 기준, 곧 내가 부를 누리고 있는 이상 나의 인격을 침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를 믿고 천신만고 끝에 탈동성애를 한 후 목회자로서의 나의 삶은 기독교 안에서 비판적 평가를 받아야 했다.
차라리 세상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에 대하여 상당히 관대하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서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선의의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용서와 사랑의 표본인 교회들이 동성애자에 대한 심각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요즘은 윤락여성들을 창녀라 부르지 못하는데 기독인들이 동성애자들을 가리켜 하나님을 대적하는 지옥의 자식들, 에이즈 매개체. 항문 섹스를 하는 패역한 무리들. 정말 감당키 어려운 비참한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 또한 용서함을 받은 죄인이었음을 스스로 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 경고하셨다.
해마다 동성애자들의 퀴어축제가 서울광장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연합의 국민대회가 개최되어 왔다. 그들은 예수를 믿으라고 소리를 치면서 동성애자들의 더러운 행위들의 팻말을 들고 비판한다. 과연 이러한 행패를 본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겠는가? 또한 예수를 믿으면서도 동성애 성향에서 벗어나지 않은 청년들은 그 굴욕감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 것인가?
나는 예수를 믿는 동성애 성향의 청년들과 함께 생활을 하며 목회를 하고 있다. 그들은 오직 성경의 말씀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그리스도의 날을 소망하며 따가운 시선을 피하여 교회 안에 마련한 기숙사에 들어와 생활한다.
나는 이들과 함께 웃고 마시며 식탁을 즐기고 있다. 나는 그들 속에서 주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 자들에게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 3:35)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오늘 주님은 자기를 둘러 싼 사람들을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눅 5:36)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이 함께 보기 좋은 조화와 균형을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 예수님은 유대인들 속에서 죄인이라 비판받으며 서로 인사도 주고받지 않고, 함께 마주 앉아 밥도 먹을 수 없는 죄인들의 초대를 받아 그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즐기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주께서 내게 주신 이 아이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지지고 볶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하도록 저들을 섬기는 자가 되고자 한다. 주님 내게 은혜를 더하소서. 내가 저들과 이대로 살아 갈 것입니다.
[기도] 사랑하는 예수님! 죽음으로도 용서받지 못한 죄인을 용서하시고 당신의 종으로 삼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내 생애 끝나는 날까지 나는 애통하는 아이들과 함께 웃고 살 것입니다. 저들에게 더 큰 은혜와 사랑을 부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핵심연구]
1.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 이 땅에 오셨는가?
2. 죄 없으신 예수께서 죄인들을 용납하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
3. 당신의 친구는 누구인가?
4. 과연 동성애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죄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