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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7105227
· 쪽수 : 316쪽
· 출판일 : 2021-03-01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일본을 향해 쏴라 9
시카고 트라이앵글 26
꽃과 칼 43
피가 말하다 59
승리 뒤엔 함정이 67
친구 79
황금 거위 97
평화는 피를 마신다 106
시카고의 봄 115
샌프란시스코엔 금이 없다 124
악마와의 인연 137
샤론의 장미 153
별을 좇다 172
야망의 계절 187
그대는 내 사랑 200
뉴욕 VS 시카고 211
붉디붉은 양귀비 222
우리가 원하는 것 236
별들의 전쟁 257
사랑은 독약 273
당신은 누구? 286
시카고를 떠나며! 299
저자소개
책속에서
미코시를 중심으로 무라야마와 이에야스가 마주 섰다. 그들은 소지(?紙)에 불을 붙여 사전을 향해 살라 올렸다. 그때 북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노리던 기회는 바로 이때였다.
“펑.”
갑자기 터진 폭음은 비명소리와 함께 금세 뽀얀 연기를 피어 올렸다.
“펑.”
또 한 방의 폭탄이 날아들었다. 뽀얀 연기 속에서 붉은 혀가 날름거렸다. 여인들의 비명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여기저기서 울부짖으며 도망치는 노인들로 행사장은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노인들 사이에 섞여 건물 속으로 달아나는 검은 복장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잡아라. 저놈이 이에야스다.”
누군가 그를 보고 소리쳤다.
콩 튀듯 쏟아지는 총탄, 하얀 칼끝을 번득이는 일본도, 이에야스의 부하들은 사쿠라 꽃잎 위로 하나 둘 쓰러졌다. 바람도 놀랐는가, 꽃샘바람처럼 변덕을 떨며 불어왔다. 사쿠라 꽃이 한 움큼씩 드러누운 그들의 시신 위로 뿌려지고 있었다. 차라리 흰 눈이라면 좋을 것 같았다. 붉은 피와 조각난 시신을 감춰 줄 수 있기에. 그러나 도쿄 시내는 눈을 보기 힘든 곳이었다. 혹여 눈발이 휘날리기는 해도 바닥 위에 쌓이지 않았다.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흰 눈의 축복도 받지 못한 채 붉은 핏물을 흥건히 토해 놓고는 야수의 시체처럼 드러누워 있었다. 그래도 그들이 그렇게도 사랑해 마지않던 사쿠라 꽃잎들만은 피로 얼룩진 치부를 감추어주려는 듯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이윽고 첸과 영국의 손에 붙잡힌 이에야스, 그는 최후의 순간을 알기라도 한 듯 그악스럽게 저항했다. 그럴수록 이에야스의 몸에는 주먹세례가 퍼부어졌다. 이에야스는 마지막 운명임을 깨닫고 사지를 떨며 항거했다.
“나카무라, 그놈 힘줄을 모두 따 버려!”
첸이 외쳤다. 네 명의 사내들이 이에야스의 손발을 묶었다. 나카무라의 예리한 칼날이 허공을 향해 번뜩였다.
“아!”
이에야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진혼의 행진곡처럼 허공 속에서 나비처럼 흩날리는 사쿠라 꽃, 어지럽게 날리는 꽃잎의 난무를 마중 나가는 비명소리만이 야스쿠니 신사의 뜰을 오래오래 핥고 있었다.
재키는 그날의 일을 생생히 기억해 냈다. 그때 꼬마를 남겨둔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3명의 일본 야쿠자를 처치하던 그날은 시작부터 일이 꼬였다. 샌프란시스코의 봄은 안개로 유명한데 그날따라 달빛이 유난히도 밝았다.
미국인데도 일본풍(風)을 살린 그 집은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던가, 분분난난 하얀 꽃잎 조각들이 허공을 향해 날아다녔다. 세 사람은 사구라 꽃이 흩날리는 밤을 택해 그 집 담을 넘었다. 한국인을 잡아다 서부 쪽으로 팔아넘겨 돈을 버는 악랄한 장사꾼이었다. 곁에 야쿠자 둘을 데리고 다니는 터라 인적이 드문 밤을 틈타 그 집에 침입하기로 한 것이다.
어디선가 가냘픈 현악이 띠응띠응 울고 있었다. 아마도 일본의 고유 악기 사미센인 듯싶었다. 아마 사미센 소리에 맞춰 잠이라도 청하려는 것일까, 사방은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미닫이문 살창은 교교한 달빛에 흰 종이만 드러내고 있었다.
미닫이문을 열려는 찰나, 하얀 창문에 그림자가 비쳤다. 야쿠자였다. 순간 두 개의 일본도가 빛을 뿜으며 달려들었다. 순간 사미센 소리가 뚝 멎었다. 두 야쿠자를 영국과 재키에게 맡긴 제이슨은 미닫이를 힘껏 걷어찼다.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영국의 검이 야쿠자의 일본도를 가로막는가 싶더니 뒤로 밀려났다. 재키는 손에 휘감은 쇠줄을 휘두르며 나머지 야쿠자의 일본도와 맞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위험을 감지한 제이슨은 몸을 날려 영국을 덮치려는 야쿠자의 팔목을 꺾었다. 비명소리에 이어 칼을 든 사내가 잠옷 차림으로 마루 위로 나섰다. 제이슨은 번개처럼 사나이를 덮쳤다. 단 두 방의 주먹에 사내는 마당으로 굴러떨어졌다. 제이슨은 발을 뻗어 사내의 목을 찍었다.
“여긴 조선 땅이 아니야, 이 간나 새끼야!”
사내가 사지를 떨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발목의 힘이 스르르 풀렸다. 저항을 거둔 것이다. 순간 영국의 검과 재키의 쇠사슬이 두 야쿠자를 제압했다. 그렇게도 위용 있게 푸른빛을 쏘아내던 일본도는 영국과 재키의 발아래 기다랗게 누워 있고 검붉은 핏물이 하얀 달빛 아래로 뭉클거리며 흘러내렸다. 일본인 아내는 겁에 질려 숫제 눈을 감고 있었다. 재키는 검 하나를 취해 여자의 발에 꽂았다. 붉은 핏방울이 꽃잎처럼 허공을 향해 튀어 올랐다. 하얀 사쿠라 꽃잎들이 달빛 속으로 여전히 한 점 두 점 눈송이들을 뿌려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