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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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경주.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나 줄곧 광주(光州)에서 살고 있다.
1980년대 〈오월시 판화집〉의 판화로 대중에게 그의 존재를 드러낸 이래 현재까지 판화, 드로잉, 유화, 사진, 수묵화 등 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국내외에서 수많은 전시를 해오고 있다.
1983년 오월시 동인들과 〈오월시 판화집 -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있어라〉의 출간작업에 참여하면서, 김경주 특유의 표현력으로 오월의 아픔에 대한 제의적 해석과 민중의 삶의 시린 표정을 잡아내었다. 그렇게 '묵음(默音)된 고통을 침착하게 투사하는' 맑은 시야를 가진 그는 목판화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지속적인 작품 활동과 전시가 있었으며, 그의 판화는 1980년대 대학가나 깃발 그림으로, 공연이나 선전물의 삽화로, 사회과학 서적이나 민중시집의 표지로 활용되었다.
1985년, 황석영, 박석무, 송기숙 선생 등을 고문으로 '민중문화연구회'를 결성하고 미술분과위원으로 활동했고, 1985년, 노래패 활동과 공연 카세트테이프 보급 등을 통해서도 당시의 모진 현실에 저항했다. 광주지역의 젊은 미술인 모임인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의 결성에 큰 역할을 했고, 여러 전시를 이끌었다.
1980년대 말부터 그는 수묵화에 전념했다. 당시 민중미술 계열에 수묵화 작가가 드물던 터였고, 그가 기존에 구사했던 서양화의 구도와 필법이나 목판화의 맛을 살린 선묘법은 수묵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다.
1995년, 일방적인 광주비엔날레에 저항하여 안티-비엔날레 행사를 개최했다.
동신대학교 교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의 행정의 유능함을 신뢰한 학교는 여러 일꾼 보직을 그에게 맡겼다. 강의 또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쌓여온 몸과 마음의 피로는 그의 신체 일부의 감각을 사라지게 했고, 좀처럼 치료가 되지 않아 대숲이 있는 시골집을 얻어 은거했다.
넋 놓고 앉아 하루를 보내던 많은 날이 지나고, 죽순이 돋아나던 계절의 어느 날, 그의 감각은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붓을 들 수 있었고, 수묵화는 물론 유화와 황토, 과슈 등 다양한 안료를 시도하였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광주문화중심도시〉 기본구상 TF 활동에 참여했다.
2004년, 문화 중심도시 조성에 시민역량을 모으자는 취지로 〈사단법인 시민문화화의〉를 창립하여 운영해오고 있다.
폐 잠사 공장을 문화공간으로 바꾸고 시민을 대상으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였고, 나주 문화도시를 위하여 여러 역할을 맡아 진행했다.
2020년, 묵혀 둔 한지를 꺼내 수묵화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만든 고립의 시간이 그에게 도리어 창조의 시간이 되었다.
저서:
1983년 〈오월시 판화집 -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있어라〉(공저)
2002년 〈화창한 날의 상처〉 출간
2007년 〈복잡성 예술을 통한 문화적 역동성의 이해〉 출간
2008년 〈프랙털로부터 미의 추출〉 출간
2013년 〈문화기획 용어사전〉 출간
2014년 미나토 지히로의 〈생각하는 피부〉 번역 출간
2017년 미나토 지히로의 〈창조적 기억〉 번역 출간
2021년 〈결핍과 유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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