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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7926228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4-01-20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 _8
들어가는 글: 꿈에서 고래가 되었다 _13
1976. 아라비아의 열풍 그리고 신상神象 _17
어린 산보자, 읍내를 거닐다 _21
뒤죽박죽 외딴집, 불란서 양옥에 도착하다 _35
기찻길 옆, 불란서 양옥집의 고래는 잘도 잤다 _41
1978. 크로바 가방과 만화 손목시계 _46
1978. 마차 그리고 마부 _52
1978. 코코아 _57
1979. 고소미, 종합선물 세트 _61
주전부리에 관한 로망, 오리온 밀크캬랴멜 _65
‘양초 좀 씹어 본’ 아이들 _69
1979. 추풍령 휴게소에서의 핫도그 _73
1979. 마론인형과 함박스테이크 _77
시장에서의 스펙터클, 회충약과 네이키드 연필 _81
1979. 해태의 집, 데이트 아이스크림 _87
학교 앞 구멍가게 _90
1980. 사우디에서 온 연필깎이 _96
1980. 얼음 뗏목 _102
1980. 내 인생 최대의 장마 _107
장마 이후, 돼지를 잡다 _111
1980.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_114
1980. 빨간 롱부츠 _118
1980. 거짓말 탐지기 _124
1981.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_128
1981. 축제와 공연의 시대 _132
1982. 카레 _136
1982. 빨간색 피겨스케이트 _141
1982. 카바레, 아방궁 _145
1982. 영화 <날마다 허물 벗는 꽃뱀> _148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제일극장 _152
단체관람 _158
소년잡지와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그리고 살아있는 그림책 _163
게으름쟁이 천국의 나라 _170
오스칼과 ‘내 사랑 마리벨’ _175
1982. 우리가 사랑한 최초의 캐릭터 ET _182
1983. 수학여행 _186
1983. 템플스테이 _191
1984. 요절 작가의 매혹 _196
텔레비전 _200
1984. 쫄면 _207
1984. 컵라면 _214
검은 고양이 네로 _218
라디오 _222
1984. 내 나이키 _228
이모의 다락방 _184
공연의 메카에서 레슬링 시합과 고춘자 장소팔의 만담 _243
해외 펜팔 _247
1990. 명동 피자 inn _254
서울사람 _258
웬디스 햄버거와 & 로손 _264
1990. 오페라 <카르멘> _269
삐삐, 자동차 그리고 인터넷 익스플로러 _273
배낭여행 _279
작가의 말 _288
해설: 하승우 _291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기찻길 옆, 불란서 양옥집의 고래는 잘도 잤다
기찻길 옆에 바싹 붙여서 지은 불란서 양옥집이 있다. 오막살이는 아니었지만 낮이나 밤이나 지축을 울리며 내달리는 기차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벽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모두 잠든 깜깜한 밤에도 기차는 달렸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방안을 환히 비추던 열차의 전조등은 내가 즐겨보던 <환상특급> 속의 그 열차 불빛과 똑같았다. 플랫폼으로 변한 우리 집 앞에 기차가 멈추고 망토가 달린 코트를 입고 머리에는 실크 햇을 쓴, 한 손에는 트렁크를 들고 입에는 담배 파이프를 문 그 누군가가 내릴 것만 같았다. 우리 식구들 가운데 누구도 기차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지는 않았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삶이 고단했으니까 잘 잤다.
기차가 지나갈 때 말을 하면 당연히 잘 안 들린다. 특히 가는 귀가 먹은 증조할머니는 평상시에도 잘 못 들었기 때문에, 할머니에게는 기차가 지나갈 땐 어지간해서는 말을 걸지 않았다. 안방에 다들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빠아아앙 기차 기적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하던 말을 멈추거나 아니면 더 크게 소리를 지르듯이 말하는데 이 장면이 너무 웃겼다. 표정과 내용의 불일치는 흡사 코미디 무성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과장된 제스처로 재현되어 기차가 다 지나가고 고요가 찾아왔을 때면 그런 행동을 한 당사자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
역사(驛舍)가 이전하면서 건널목도 사라지고 기차도 더는 다니지 않았다. 집 외벽의 금도 갈라지지 않았고 기차를 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즐거움도 더는 누릴 수가 없었다. 달리는 기차의 기적소리와 굉음이 오히려 그리울 정도였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더는 한밤의 ‘환상특급’ 열차를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달리는 기차와 그 안에 탄 사람들을 보면서 다들 어디를 가고 있는 거지? 궁금했다. 이 철로는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까? 기차가 더는 다니지 않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친구와 함께 철길을 따라 모험을 떠났다. 햇볕에 달궈진 철로와 그 주변 자갈은 너무 뜨거웠고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계속해서 걸었다. 친구와 나는 굵은 쇠못도 몇 개 주웠다. 얼마쯤 지났을까. 주변이 너무나 한적해서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가도 가도 기찻길의 끝은 보이지 않고 이렇게 가다가는 돌아가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서 다시 집으로 향했다.
내달리는 기차가 사라지고 뭔가 내 인생의 스펙터클한 한 시기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쏘다니지도 않고 팝송이니 소설책에 빠져 괜히 심각한 척해 보이고 싶어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불란서 양옥집과 집 뒤 공터 600평은 도시계획에 포함되어 헐값에 정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보상금으로 85년도쯤 읍내에 막 지어지기 시작한 2층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와 함께 야생마처럼 날뛰던 나의 유년시절은 막이 내렸고 요절 작가들에게 심취했던 세상 고민 많고 멜랑콜리한 청소년의 삶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