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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91198013934
· 쪽수 : 616쪽
· 출판일 : 2023-05-01
책 소개
목차
머리말 004
I. 도쿄 요츠야선교부(Yotsuya Mission)의 한국선교 013
1. 한국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해방 전 명칭 015
2. 한국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시작 017
3. 동경사곡선교회 기독교회 021
4. 기독교회 조선선교회 027
5. 조선기독교회를 위해 헌신한 요츠야선교부 소속 선교사들 038
II. 기독교회선교부(Korean Christian Mission)의 한국선교 051
1. 기독교회(남대문통)의 출범과 J. 마이클 쉘리 선교사 053
2. 기독교회(남대문통)의 발전과 존 T. 채이스 선교사 064
3. 기독교회(남대문통)의 초기 내국인 사역자들 107
1) 김요한 목사 115
2) 최상현 목사 122
3) 성낙소 목사 127
4) 김문화 목사 148
5) 박판조 목사 155
6) 백낙중 목사 158
7) 성수경 목사 160
8) 이난기 목사 163
9) 윤낙영 목사 166
4. 기독교회(남대문통)의 새 출발과 존 J. 힐 선교사 169
5.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성장과 해롤드 테일러 선교사 210
III. 증가한 선교회들과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성장 255
1.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성장과 내국인 사역자들257
1) 최순국 목사(1933.02.08.-2002.09.16.) 258
2) 김동수 목사 268
3) 최윤권 목사 271
4) 안재관 목사 282
5) 김진문 목사 284
6) 독립투사 오현팔(吳鉉八, 1895-1972) 목사 286
7) 정인소(鄭寅笑, 1907.11.11.-1977.8.27.) 박사 291
8) 이기구 목사 294
9) 그리스도의교회가 낳은 사랑의 원자폭탄 진성구 장로 297
2.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성장과 고든 패튼 선교사 300
3. 선교사들과 내국인 사역자들 사이의 이견 305
4. 강원도와 경상도 지방의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성장 313
1) 장성만 목사 313
2) 리차드 래쉬 359
5. 부산에서의 라디오 방송선교 367
1) 알렉스와 베티 빌즈(Verlen Alex & Betty Bills) 367
2) 알렉스 빌즈의 동료들 385
(1) 엑시 제인 풀츠(Exie Jane Fultz) 385
(2) 플로라 매이 구른지(Flora Maye Guernsey) 387
(3) 조셉과 맥신 세걸키(Joshep & Maxine Seggelki) 388
(4) 버트와 마조리 엘리스(Bert & Marjory Ellis) 395
3) CRM 선교사가 되려고 준비 중이던 가족들 398
4) 한국 CRM 실패의 원인 400
5) 라디오 방송 선교를 위한 선교사들 404
IV. 한국 크리스챤 밋숀(Christian Mission to South Korea)의 한국선교 415
1. 존 힐 선교사의 생애 후반기 선교사역 417
2. 존 힐 선교사의 동료들 447
1) 노봉욱 장로 448
2) 고재윤 목사 450
3) 김히영 교수 451
4) 김치연 목사 452
5) 김순철 목사 453
6) 안일승 목사 455
7) 버지니아 힐Virginia Hill 456
8) 김찬영 박사 459
3. 존 J. 힐 선교사의 1976-77년 복귀 시도 461
4. … 한국 크리스챤 밋숀 소속 선교사들 464
V. 한국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사도 바울 김은석 목사 473
1. 김은석 목사의 생애 475
2. 한국의 사도 바울 김은석 목사 487
3. 떠돌이 전도인 김은석과 성경책 504
4. 예수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 예언자적 삶의 추종자 김은석 목사 509
5. 예수님과 사도들의 삶을 본받은 김은석 목사 518
6. 김은석 목사의 인생 추수 527
7. 김은석 목사의 반천련伴天連 537
1) 김명석주일 목사(1906-?) 538
2) 박점상 목사/장로(1928.03.23. 음력-) 539
3) 김교인 장로(1890-1970) 544
4) 신현창 장로 545
5) 정찬성 목사(1913.05.06.-1957.04.25.) 546
6) 김상호 목사(1922-2007.11.24.) 549
7) 만교 최춘선 목사(1921-2001.09.08.) 550
8) 창현 함태영 목사(1914.5.24.-1983.11.28.) 554
9) 이신 목사/신학박사(1927.12.25.-1981.12.17.) 563
10) 김정만 목사(1927.05.20.-2017.08.30.) 569
11) 장주열 목사(1923.05.04.-1983.12.18.) 572
12) 최요한(용환) 목사(1923.01.20.-1998.03.28.) 574
13) 고광석 목사 585
14) 지철희 목사 587
15) 심영진 목사(1921.2.28.-) 591
16) 김동열 목사(1922.09.05.-2008.08.23.) 593
17) 김성철 목사 596
맺음말 608
부록 미국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의 그리스도의교회 성명서 612
저자소개
책속에서
서문
한국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출범과 초기 50년 역사는 미국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선교사들과 그들이 조직한 선교회들이 이뤄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선교사들과 선교회들은 대부분 1970년대에 그들의 시대를 마감하였다. 그리고 그들과 별개로 내국인(indigenous nationals) 목회자들에 의한 토종 선교의 기반은 김은석 목사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서 닦여왔다. 따라서 한국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후기 50년 역사는 선교사들이나 선교회들이 아닌 내국인 목회자들에 의해서 쓰이고 있다. 내국인 목회자들은 선배들이 눈물과 고난으로 닦고 밟아 다져놓은 환원의 길을 따라가며 그 길을 더욱 견고히 다지는 성장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그 이야기들도 누군가에 의해서 반드시 쓰이기를 소망해본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진 십자가에 기대어있다. 제힘이나 능력으로 선 것이 아니다. 그 누군가가 그리스도(인)의교회들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일 수 있고, 그들과 동역한 내국인 목회자들일 수 있으며, 이름도 성도 모르는 무명의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성도들일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선배들이 짊어진 십자가에 기대어 환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선배의 십자가와 눈물과 땀과 배고픔과 고달픔과 외로움이 켜켜이 쌓이고 섞이고 다져져 딛고 설만큼 단단한 환원의 반석이 되고 안전하게 딛고 전진할 수 있는 길이 되었다. 그들에 대한 고마움이 어찌 하늘만큼 땅만큼 크지 않겠는가? 이 소박한 책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라고 확신한다. 그 보상이 반세기가 지나 이제야 겨우 소박하게 이뤄진 것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늦지 않게 찾아오신다(God is still on time).
존 J. 힐(John J. Hill) 선교사는 만 26세 때인 1939년 6월 21일 서울에 도착해서 선교사역을 시작하였으나 태평양전쟁의 징후로 1940년 11월 16일 급히 미국으로 철수하였다. 미국으로 돌아간 힐은 목회하던 중 1944년 10월 5일 군목학교에 입학하여 5주간의 훈련을 받고 중위로 임관되었다. 힐이 탄 배가 1945년 4월 7일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하였다. 도시는 일본군에 의해서 거의 파괴되었고, 끔찍한 잔학행위가 자행되었음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사람들이 산 채로 불태워지고 여성과 아이들이 총검에 찢겨서 신체가 벌어진 채였다. 힐은 규모가 큰 수용소를 찾아갔는데, 거기서 힐은 일본군에 잡혀서 수감된 후 기아 상태에 빠졌다가 회복 중인 그리스도(인)의교회들 소속 선교사들을 발견하고는 크게 기뻐하였다. 그들은 레슬리 울프(Leslie Wolfe)의 사모, 윌리스 헤일(J. Willis Hale) 부부, 레이 칼슨(Ray Carlson) 부부와 자녀들, 에디스 쉼멜(Edith Shimmel)과 에델 존스(Ethel Jones)였다. 그들은 여전히 수척하였지만, 해방 당시 그들의 건강 상태는 상당히 호전되고 있었다. 힐은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필리핀 선교의 개척자 레슬리 울프가 대략 두 주일 전에 사망하였다고 전했다. 선교사 울프는 수감생활로 인한 극심한 영양결핍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힐 중위는 군용비상식량들을 그들에게 가져다주었고, 저녁까지 남아서 그들과 함께 식사하며 위로하였다. 그들이야말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필리핀에 남아 희생적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고초를 겪고 있었던 헌신적인 선교사들이었다. 미군들이 수감자들을 구원한 날은 일본군들이 수감자들을 기관총으로 몰살하기로 계획하고 그 실행날짜를 하루 남긴 날이었다. 단 하루 차이로 그들은 하나님이 늦지 않게 그들에게 보낸 미군들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000 “4일 늦게”(Four Days Late)라는 찬양이 있다. 우리 주님은 여전히 늦지 않게 찾아오신다. 최후승리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은 한국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을 위해서 헌신했고 지금도 헌신하고 계신 분들의 수고와 눈물과 희생을 잊지 않으시고 늦지 않게 보상하신다.
잊혀 있던 선배들의 발자취를 되살리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과연 그 일이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할 만큼 가치가 있고 중요한 일인가? 잊힌 그대로 두어도 누구도 아쉬운 것이 없고, 어쩌면 발굴하지 않고 묻힌 그대로 두어 영원히 잊히도록 방치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는가? 이 질문은 필자가 종종 자신에게 던졌던 물음이다. 하물며 독자들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우리 민족의 한이 맺힌 서글픈 역사에서조차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코끝을 찡하게 만들며 눈가에 이슬이 맺히게 하는 가슴 시린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이 바로 한국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이야기들 속에 담긴 감동이요, 한이며, 안타까움이다. 잘난 선배이든 못난 선배이든 우리는 모두 선배들이 몸 바쳐 겹겹이 쌓아 올린 지층 위에 발을 딛고 걷고 있다. 우리가 딛고 걷고 있는 지층들 속에 무엇이 매장되어있는지, 그것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들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그 속에 어떤 보물과 고증학적 파편들이 숨어있는지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만일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나라가 실재함을 믿는다면, 이 땅에서 가장 가난하고 누추하게 살면서도 가장 작고 약하지만,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온몸을 바친 선배들과 우리 자신들의 상급이 어찌 명예와 부를 누린 이들의 것보다 작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 하나님의 보상 축복이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한다.
참고로 본서에서는 협의회/총회에서 교단 명칭으로 부르던 ‘그리스도의교회’를 오늘날 미국에서 불리는 대로 ‘그리스도(인)의교회들’(Christian Churches and Churches of Christ)로 표기하였고, 교역자회에서 부르던 ‘그리스도의교회’를 역시 오늘날 미국에서 불리는 대로 ‘그리스도의교회들’(Churches of Christ)로 표기하였다. ‘제자들’(Disciples of Christ)의 경우에는 ‘그리스도(인)의교회’(Christian Church)로 표기하였다. 미국에서 한인 제자들(Korean Disciples)은 자신들의 교회들을 한글로 표기할 때 ‘크리스천 처치’라고 부른다.
환원운동의 선구자들은 자신들의 교회들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각각 불렀다: Disciples of Christ, Christian Churches, Churches of Christ. 그러다가 1세기쯤 지난 1906년에 근본주의자들이 Churches of Christ란 이름으로 갈라져 나갔고, 나머지는 Disciples of Christ로 남았다가 Disciples of Christ가 진보신학에 경도되자 여기서 뛰쳐나온 독립교회들이 대부분은 Christian Churches를 사용하였고, 더러는 Churches of Christ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에 이르러 진보주의자들인 Disciples of Christ는 Christian Church(Disciples of Christ)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신약성경교회가 조선 땅에 처음 전파된 이후 협의회/총회의 교단 명칭은 ‘기독교회’였고, 교역자회는 ‘기독의교회’였다. 그리고 해방 후 재건된 교회들이 ‘그리스도의교회’를 교단 명칭으로 사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에 필자는 오늘날 미국에서 불리는 대로, 협의회/총회와 교역자회를 구분할 목적으로 ‘그리스도(인)의교회들’과 ‘그리스도의교회들’로 구분하여 표기하였다. 다만 개개교회들의 이름은 가급적 현재 그대로 표기하거나 구분의 필요가 있을 때는 ‘○○그리스도(인)의교회’로 표기하였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진 십자가에 기대어있다. 제힘이나 능력으로 선 것이 아니다. 그 누군가가 그리스도(인)의교회들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일 수 있고, 그들과 동역한 내국인 목회자들일 수 있으며, 이름도 성도 모르는 무명의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성도들일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선배들이 짊어진 십자가에 기대어 환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선배의 십자가와 눈물과 땀과 배고픔과 고달픔과 외로움이 켜켜이 쌓이고 섞이고 다져져 딛고 설만큼 단단한 환원의 반석이 되고 안전하게 딛고 전진할 수 있는 길이 되었다. 그들에 대한 고마움이 어찌 하늘만큼 땅만큼 크지 않겠는가? 이 소박한 책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라고 확신한다. 그 보상이 반세기가 지나 이제야 겨우 소박하게 이뤄진 것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늦지 않게 찾아오신다(God is still on time).
잊혀 있던 선배들의 발자취를 되살리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과연 그 일이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할 만큼 가치가 있고 중요한 일인가? 잊힌 그대로 두어도 누구도 아쉬운 것이 없고, 어쩌면 발굴하지 않고 묻힌 그대로 두어 영원히 잊히도록 방치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는가? 이 질문은 필자가 종종 자신에게 던졌던 물음이다. 하물며 독자들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우리 민족의 한이 맺힌 서글픈 역사에서조차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코끝을 찡하게 만들며 눈가에 이슬이 맺히게 하는 가슴 시린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이 바로 한국 그리스도(인)의교회들의 이야기들 속에 담긴 감동이요, 한이며, 안타까움이다. 잘난 선배이든 못난 선배이든 우리는 모두 선배들이 몸 바쳐 겹겹이 쌓아 올린 지층 위에 발을 딛고 걷고 있다. 우리가 딛고 걷고 있는 지층들 속에 무엇이 매장되어있는지, 그것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들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그 속에 어떤 보물과 고증학적 파편들이 숨어있는지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