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91198687517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4-09-01
책 소개
목차
서론.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심(1:1-4) 9
1부. 천사보다 탁월하신 존재(1:5-2:18)
1. 그리스도의 신성(1:5-14) 14
2. 그리스도의 인성(2:1-18) 17
2부. 모세보다 탁월하신 인도자(3:1-4:13)
1. 성육신 앞에 신실하게(3:1-19) 26
2. 안식에 들어가도록(4:1-13) 33
3부. 아론 제사장보다 탁월하신 대제사장(4:14-10:39)
1. 대제사장 예수(4:14-5:10) 40
2. 풍성한 구원(5:11-6:20) 44
3. 예수 대제사장의 특성(7:1-10:39) 53
4부. 탁월함을 따르는 삶(11:1-13:25)
1. 믿음으로(11:1-40) 90
2. 바른 태도(12:1-29) 106
3. 삶 예배(13:1-25) 116
저자소개
책속에서
1:6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이 때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3가지 가능성이 있다. 1.성육신 2.승천 3.재림. 이 중에 나는 2번이 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1번으로 생각하면 '다시'는 아마 창조하실 때 오신 이후 ‘다시’를 말하는 것일 거다. 그런데 성육신을 ‘다시 오신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상하다. 성육신 이후에 오시는 '다시'로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재림 때를 ‘다시’로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것은 완성된 시기이다. 7절의 사역과 어울리지 않는다. 주님이 승천 이후 영으로 다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가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7절과도 어울린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천사들을 사역자로 삼고 계신다.
3:1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저자는 말씀을 읽는 이들이 모두 성육신의 놀라운 은혜에 참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말한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사도(하나님의 대사,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 성육신에서 우리는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예수님은 또한 대제사장이시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깊이 생각하다(헬, 카타노에오)'는 면밀히 살피다, 숙고하다, 관찰하다, 묵상하다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백합화를 보라' '공중나는 새를 보라'고 할 때도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어찌 그냥 흘려 들을 수 있을까?
4:12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고 말씀하였다. 그렇게 힘쓰기 위해 해야 하는 두 가지 일이 있다. 첫 번째는 말씀이다. 말씀을 읽고 순종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함에 있어 죽은 글자를 대하는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마음을 느끼고, 힘을 경험해야 한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며 그 시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자주 만나야 하듯이 말씀을 정기적으로 읽어야 한다. 활력이 있어. 말씀은 활력이 있다. 말씀은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읽으면 읽은 만큼 움직이게 된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았는데 어찌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는 것만큼 행동하게 된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말씀은 날카로운 칼과 같다. 분별하게 한다. '혼과 영'은 구분하기가 어렵다. 혼과 영은 다른 2개가 아니라 하나의 두 측면이다. 혼은 정신적인 측면에 영은 조금 더 영적인 측면에 사용될 때가 많다. 그러나 두 가지를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다.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관절'은 뼈와 뼈를 연결하는 부분이고, '골수'는 뼈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둘을 나누는 것 또한 매우 어렵다. 말씀은 그렇게 구분하기 매우 어려운 부분까지도 구분하게 해 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정신적인 측면과 물질적인 측면 어느 면으로도 구분이 어려운 것을 구분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마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기 어렵다. 게다가 '뜻(헬, 엔노이아)’은 ‘의도'라 해석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을 구분하기는 더욱더 어렵다. 그러나 말씀은 그렇게 숨겨진 것에 대해서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한다. 가치관과 선과 악이 혼동된 세상에서 우리는 말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면서 살아야 한다.
말씀을 대충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말씀은 혼동된 세상에서 우리를 분별하게 한다. 말씀으로 분별해야 한다. 분별되지 못하는 것은 말씀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이 분별되어야 한다. 말씀으로 거룩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