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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91198687579
· 쪽수 : 500쪽
· 출판일 : 2025-09-01
책 소개
목차
추천사
서론
제1권
1편.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의인과 세속 나라를 살아가는 악인
2편. 하나님의 주권
3편. 고난 중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
4편.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을 고백
5편. 하나님의 보호를 구하며
6편.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찾음
7편. 쫓기면서 지은 시.
8편.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
9편. 하나님의 정의를 찬양
10편. 하나님의 부재처럼 보이는 악인의 번영 속에서
11편. 강한 확신 가운데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것
12편. 천박한 세대를 아파하며
13편. 얼굴을 숨기시는 하나님께 말하다
14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을 향한 외침
15편. 주와 함께 할 사람
16편. 하나님을 향한 확신
17편. 의의 호소
18편. 불의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
19편.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함
20편. 전쟁에 나가기 전
21편. 승리 후 고백
22편.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결국 예배로 이어짐
23편. 하나님을 향한 신뢰
24편. 하나님의 임재
25편. 환난에서 구원을 요청
26편. 하나님의 판단을 구하고 보호를 요청
27편. 주의 얼굴을 구함
28편. 하나님의 보호
29편. 하나님의 권능
30편. 죽음의 병에서 회복하고 감사
31편. 하나님을 향한 절대 의존
32편. 신음에서 찬양으로
33편. 창조주이며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찬양
34편. 곤고함에서 하나님으로 가득한 부요한 자로
35편. 문제를 만났으나 하나님을 신뢰하며 호소
36편. 악인과 의인의 삶에 대해
37편. 왜곡된 세상과 악인들 속에서 신앙인이 가야 하는 길
38편. 속죄제를 드리며
39편. 회개하며 용서를 구함
40편. 구원받은 경험을 말하며 구원을 간구
41편. 신앙인의 삶
제2권
42편. 사슴이 물을 찾듯이 성전에서의 예배를 갈망함
43편. 성전에서의 예배를 사모
44편. 이유 없는 환난에서 승리를 꿈꾸며 도움을 구함
45편. 왕의 결혼식
46편. 하나님이 자신의 요새임을 고백
47편.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
48편. 시온의 영광과 아름다움에 대해 찬양
49편. 부를 인생의 목적으로 사는 사람에 대한 충고
50편. 마음과 삶이 동반된 진정한 제사
51편. 회개
52편. 의의 승리를 확신
53편. 이스라엘의 구원
54편. 부당한 일을 당하여 하나님께 호소하며 감사 찬양
55편. 광야로 도망가고 싶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내
56편. 고난
57편. 고난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격
58편. 세상에 악이 가득함을 보고 있지만 결국 선이 승리하게 될 것을 확신
59편. 고통
60편. 전쟁의 패배와 승리
61편.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땅끝에서
62편.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63편. 주를 앙모
64편. 적들의 계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여 달라는 호소
65편. 삶을 복으로 가득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성전에서 감사 예배
66편.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로 초청
67편. 세상을 향한 제사장적 책무
68편. 하나님의 임재
69편. 깊은 고난이 깊은 찬양으로
70편. 하나님께 속히 도우시기를 간구
71편. 노인의 간구
72편. 왕의 통치
사진 설명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시편1-2편은 시편 전체의 서론 역할을 한다. 시편 1편은 의인과 악인에 대한 비교다. 인간다운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과 세속에 빠진 불행한 인생을 사는 사람의 비교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의인과 세속 나라를 살아가는 악인이 있다.
1:1 복 있는 사람. 시편의 첫 단어는'행복(히. 아쉐레)’이다. '복 있는'으로 번역할 수 있으나 이 단어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행복'이다. 행복하니 복이고, 복이니 행복하다. ‘이 사람은 행복하다’가 첫 문장이다. 시편의 전체 주제는'찬양이 있는 삶'이라 할 수 있다. 행복하게 찬양하며 사는 삶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찬양하는 것은 참으로 행복이다. '행복'이 시편 전체의 서론이다. 신앙인은 행복해야 한다. 신앙인이 행복을 놓치면 안 된다. 신앙인은 충만한 행복 가운데 찬양하며 살아야 한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악인들'은 복수형이다. 앞에 있는'행복한 사람이다'는 단수다. 한 사람의 신앙인이 악인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많은 경우 외톨이가 될 때가 많다. 함께 술 자리도 못하고, 함께 죄 짓는 자리에 가지 못하고, 함께 험담하지 못하며, 함께 나쁜 일을 도모하지 못한다. 마치 험난한 파도 속에 홀로 가는 돛단배와 같은 처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인들의'꾀'와'길'과'자리'를 피하여 홀로 고군분투를 해야 한다. 그렇게 홀로 싸우면 지치고 힘들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1:2 율법을 즐거워하여...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신앙인은'말씀'을 즐거워한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즐거워하고, 죄를 즐거워하고, 출세를 즐거워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을 즐거워한다. 그래서 행복이 가득하다. 말씀은 결코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돈은 있다 가도 없어지지만 말씀은 늘 우리편이다. 세상 사람처럼 돈을 즐거워하면서 의인의 길을 가려면 행복하지 못하다. 자꾸 곁눈질하게 된다. 그러나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말씀에서 즐거움을 발견하고 행복한 사람이 된다. 말씀을 즐거워하고 있는가?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된다. 말씀을 깨달을 때, 말씀을 따라 순종할 때 안으로부터 큰 기쁨을 알아야 한다.
1:3 시냇가에 심은 나무. ‘시냇가(히. 펠에그)’는 ‘관개 수로’를 의미한다. 물이 귀한 지역은 관개 수로를 잘 만들어야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다. '물'이 잘 공급되는 곳에 심겨진 나무는 철을 따라'열매'를 맺고 모든 일이 다'형통'하다. 물은 말씀을 상징한다. 나무에 물이 공급되면 그 물을 힘입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진정한 형통이 있다. 말씀의 길을 따라가니 당연히 형통이 있다. 그 형통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형통은 무엇보다 진정한 형통이다. 말씀을 따라 옳은 길을 가는데 그 길이 막힐 일이 없다. 혹시 막혀도 그것은 말씀을 더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서 형통이다. 헛된 아픔이 아니라 찬양으로 이어지는 아픔이 되고 형통이 될 것이다.
1:4 바람에 나는 겨.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이지만 악인은'바람에 나는 겨'이다. 그들이 다수였다. 그들은 꾀를 내서 형통한 것처럼 보이는 길을 갔다. 그들은 많이 가졌기에 교만하다. 그런데 영원한 진리가 되는 말씀의 물을 전혀 먹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 속은 텅 빈 껍질이다. 그들은 바람이 불면 사라지는 존재였다. 그들이 세상에서 그렇게 잘난 것처럼 보이고 형통하게 보였던 것은 모두 신기루일 뿐이다. 한 순간에만 그렇게 보였다.
1:5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말씀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악인들은 말씀의 조명 없이 어둠 속에 살았다. 심판은'말씀'이 기준이다. 말씀을 따라 산 삶은 심판의 때에 열매로 가득하지만 말씀이 없이 산 삶은 심판의 때에'견디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서 멀쩡해 보였고 그리 좋아 보였던 것들이 다 무너질 것이다. 그의 모든 삶은 거짓된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악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결코'의인들의 모임' 즉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지 못한다. 세상에서 그들은 교회를 전혀 부러워하지 않고 말씀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나름대로 행복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행복은'심판을 견디지 못하는' 행복이다. 심판의 때에 여지 없이 무너지는 행복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찌 행복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마약을 먹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행복이 아닌 것처럼 말씀이라는 진리의 기준이 없이 자신을 위해 살았던 그 삶은 결코 행복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행복'을 위해 산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들이 행복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결코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6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의인의 삶이 지금은 힘들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을'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다. 어려움이 있으면 중요한 순간에는 보호하신다. 그 길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인들의 길은'망함'으로 간다. 오는 세상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어느 순간 무너진다. 그 길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그래서 무너지면 그냥 방치되어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그렇게 이리 가도 저리 가도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 악인의 삶은 참으로 불행하다. 결국은 망하는 길을 가고 있으니 악인의 삶은 비참하다. 의인과 악인의 차이는 말씀의 유무 차이다. 지금 자신에게 말씀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
행복한가?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것을 다시 질문해야 한다. "말씀 때문에 행복한가?" 다른 것으로 행복한 것은 거짓이요, 말씀 때문에 행복해야 진짜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라. 갈망하라. 신앙인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말씀을 안 읽기 때문이다.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을 주야로 읽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을 다하고 있는 자신을 알면 매우 행복할 것이다.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 매일 말씀을 주야로 읽으라. 그러면 매일 주야로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