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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 ISBN : 9791199250512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6-05-25
책 소개
: ‘광장 이후’의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하여
『광장 비판』은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탄핵 정국을 거치며 다시 증명된 한국의 ‘광장 민주주의’가 승리의 서사로 정리되면서 새로이 나타나거나 흐지부지 사라지는 한계와 문제들에 대해 다룬 책이다. 2024년 12월 3일부터 이듬해 4월까지 전국 광장에서 ‘윤석열 퇴진’과 함께 분출된 ‘사회대개혁’에 대한 열망이 대통령선거를 거치며 제도 정치로 수렴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는 이 작업은, 대통령을 두 번이나 광장 시민의 힘으로 탄핵한 한국 민주주의가 반복해서 위기를 겪는 이유를 여러 각도로 조명한다. ‘빛의 혁명’이라는 화려하고 거창한 수사 뒤에 여전히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를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광장 이후’는 이전과 다르지 않게 반복해서 위기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내세운 ‘광장 비판’은 정치 현실에 대한 총괄적 비판이다. ‘광장’의 한계와 ‘제도’의 한계는 상호작용한다. 윤석열과 그 일당에 의해 전에 없던 위기가 야기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은 또 ‘광장’에서 솟아났지만, 그 광장에 분명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제도 정치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보다 훨씬 적고 부족하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 광장을 ‘횡령’했었다. 그런데 ‘횡령’은 우리가 위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대통령의 관심이나 개인기에 맡기지 않는, ‘광장’이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에 의해 ‘조정’되는 데 그치지 않는, 다른 광장 즉 새로운 민주주의의 공간과 제도가 절실하다.
_「서문」에서
광장의 승리는 왜, 뜨거우면서도 착잡할까
: 이제 우리는 ‘정상’으로 복귀하는 것일까?
조형근은 「광장의 열기, 시장의 열기」에서 12.3 내란 위기를 극복하고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음에도 한국 민주주의가 여전히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근원적 이유에 대해 탐색한다. 조형근은 내란 발발 일주일 만인 2024년 12월 10일,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놓고 첨예하게 대결하는 와중에도 자본시장 안정을 명분으로 상위 1% 큰손을 위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 전격 합의한 사건을 통해, 두 거대 정당이 일하는 사람들의 고통보다 자본 투자자의 이해관계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없음을 비판한다. 또한, 현재 한국 사회의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공정성’ 신념이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등 자유주의 정치 세력의 신지식인 운동과 시장주의 개혁 담론에서 비롯되어 기득권 이데올로기의 공리로 안착했다는 점 역시 지적한다. 능력주의 경쟁의 결과로 승자의 자부심과 패자의 수치심이 차별 분배되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시민 간의 연대가 와해되고 우파 포퓰리즘과 극단의 정치가 자라나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산 불평등만큼이나 심각한 상황이 흔히 이중 노동시장으로 불리는 노동시장에서의 구조적 격차와 차별 문제다. 상대적 고임금과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는 공공 부문, 대기업 등 1차 노동시장의 일자리 비중은 전체의 15% 남짓에 불과하다. 여기에 진입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거의 ‘신분 차별’에 준하는 격차가 존재하며 역전은 매우 어렵다.
_본문 45쪽
한국 대학의 능력주의 파시즘
: 대학은 어떻게 망한 ‘비정치’의 공간이 되었나?
천정환의 「두 개의 자유」는 12.3 내란 당시 계엄포고령에 대학 휴교령조차 없었던 현실을 짚으며, 한국 대학이 공공성을 상실하고 권력에 위협조차 되지 않는 ‘비정치의 공간’으로 전락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천정환은 고등교육을 위기에 빠뜨린 근인으로 윤석열 정권 및 극우 진영의 이데올로기인 ‘극우의 자유’와, 무소불위의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의 자유’를 꼽는다. 오늘날의 대학은 이 두 자유가 결합한 능력주의 리버럴과 능력주의 우파의 합작품으로, 대학 서열 완화나 공공성 증진 대신 사적소유 구조와 성과주의 선별 보상 시스템만을 공고히 해왔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와 김건희 ‘Yuji’ 논문으로 대변되는 탈진실의 행진 속에서, 대학은 무한경쟁과 인사평가제도로 인해 학문의 창발성과 비평이 죽고 연구자들이 원자화되어 각자도생하는 병적인 공간이 되었다. 또한 연구 부정 의혹 등을 공유하는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이나 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 같은 이들이 거버넌스의 수장으로 출세하는 모습은 공동체성이나 학자적 윤리를 저버린 대학의 타락한 지배 윤리를 방증한다. 천정환은 턱없이 낮은 강사료와 ‘상징폭력’하의 비정규직 연구자, 교수들의 가혹한 노동 현실을 뚫어내고, 대학을 다시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공간으로 복원하는 일이야말로 이러한 사회 전반의 능력주의와 불평등을 극복하는 중요한 길임을 강조한다.
가시성과 스펙터클의 서사는 비非시민적 몸들을 누락한다
: 탄핵 광장의 ‘퀴어한 연대’란 무엇이었을까?
연혜원의 「퀴어한 연대의 불가능성」은 윤석열 탄핵 광장의 상징이 된 ‘응원봉’이 실은 지난 20년간 거리에서 축적되어온 퀴어문화축제의 실천과 레퍼토리에 깊이 빚지고 있음을 상기하며, 광장의 스펙터클 속에서 소수자의 존재가 소비되고 배제되는 세련된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해체한다. 연혜원은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주체만을 ‘시민’으로 규정하는 근대 사회계약론의 경계를 짚으며, 이성애 핵가족 체제 및 재생산 중심성에 결박된 한국 시민권의 역사적 배제 구조를 들추고, 2024년 동짓날 밤 남태령 집회에서 나타난 성중립 공간이나 연대의 미담은 포용적인 정치 풍경으로 찬양받았을지언정, 본질적으로 ‘관리 가능한 차이’만을 포섭하는 제도적 조정일 수 있다고 말한다.
연혜원은 광장의 성취가 ‘성숙한 민주주의’나 ‘건강한 연대’ 같은 ‘좋은 시민의 이야기’로 번역되고 봉합되는 바로 그 승리의 순간에 불평등이 재생산된다고 비판하며, 가시성과 스펙터클의 무대를 내려놓고 규범 안으로 협상되지 않은 채 일상의 모든 곳에 존재하는, ‘좋은 시민으로 번역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을 촉구한다.
청년 남성이 극우의 증오 선동에 취약한 이유
: 세대와 젠더는 왜, 어떻게 분할통치에 동원되는가?
안희제의 「젠더의 새벽」은 21대 대선 정국에서 2030 남성 보수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이준석의 세대론을 해부하며, 청년세대의 불안을 젠더 갈등으로 치환해 세습 자산 불평등을 은폐하는 퇴행적인 분할통치 전략을 예리하게 분해한다. 안희제가 보기에 기득권 정치가 내세우는 세대론은 세대 내의 실제적 격차를 무시하고 표 구획을 위해 동원되는 정치 언어에 불과하며, 입시-취업-결혼-은퇴로 이어지는 ‘K-타임라인’을 강제하여 정작 불평등의 구조적 조건은 은폐하는 방패막이로 기능할 뿐이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의 혐오 네트워크는 성별·세대 간 연대를 차단한 채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을 지탱하는 유해한 분할통치 공학으로 전용되었다. 격화된 젠더 갈등 속에서 청년 남성들은 여전히 자산과 소득을 통해 가장의 자격을 입증해야 하는 가부장제적 ‘남자구실’의 압박에 시달리는데,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해진 ‘좋은 삶’의 이상을 버리지 못하고 이에 매달리는 애착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증오 선동에 취약하게 만들고 계급적 처지를 고스란히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안희제는 이러한 가부장제적 성공 서사에 매달리는 대신, 자신의 증명에 실패한 자리에서 터져나오는 주체들의 ‘변명’이라는 불순하고도 불순종적인 정치성을 통해 그 공고한 지배 규범을 안에서부터 내파해가자고 제안한다.
실패를 인정하는 데서 다시 시작하는 진보 정치
: 거대 양당이 문제라면 진보 정치는 왜 그토록 부진한가?
홍명교의 「거대 양당과 좌파 정치」는 21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가 거둔 0.98%득표율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통해 오랜 시간 누적된 진보 정치의 고갈과 방향 상실을 뼈아프게 성찰한다. 홍명교는 12.3 비상계엄이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성을 폭로했음에도, 거대 양당이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의 관리자’로 스스로를 축소한 채 자본의 이익을 공유하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진보 정당들이 ‘민주당 하청업체’나 ‘국힘 이중대’라는 냉소적인 비아냥을 듣게 된 현실을 지적하면서, 정치를 엘리트들만의 전유물로 가두고 직업 정치가에게 도덕적 예외권을 부여하는 막스 베버식 책임윤리를 거부한다.
따라서 홍명교는 이를테면 미국의 조란 맘다니 성공 사례처럼 ‘의회 안의 진지’와 ‘현장의 운동’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이중 권력 전략을 통해 지금의 신자유주의체제에 균열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럽식 복지국가나 과거 진보 정당의 영광을 이상화하는 미망을 버리고 패배를 솔직히 인정하는 데서 진보 정치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말벌 동지들이 아직 닫히지 않은 광장에 서 있다는 것이다
: ‘말벌 동지’들은 ‘그후’ 어디로 날아갔을까?
정고은의 「‘말벌’들은 어디로 날아갔을까?」는 탄핵 광장을 가득 채운 케이팝 팬덤 기반의 ‘휀걸’과 여러 투쟁 현장으로 달려간 자발적이고 개별적인 연대자 ‘말벌 동지’들의 역동성에 주목하여, 윤석열 파면 이후에도 연대를 지속하는 주체들의 현재진행형 목소리를 두텁게 기록한 글이다. 정고은은 광장의 청년 여성들을 ‘안전한’ 스펙터클로 납작하게 요약하는 공론장의 서사와 서울 중심성을 비판하면서, 광주, 대구, 부산 등 비수도권 현장에서 연대를 이어가고 있는 당사자들과의 구술 인터뷰를 통해 광장의 경험을 입체화한다. 더불어 비수도권 지역이 지닌 현재의 모순이나 갈등은 외면하고, ‘TK의 딸’이나 성지 순례식의 ‘오월 광주’ 이미지로만 소비하는 지역 차별적 시선과 표준화의 장력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정고은은 우리 사회가 규정하는 ‘좋은 삶’의 경로에서 비껴나 있는 주체들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이로부터 비관이나 비장함에 갇힌 기존 운동 서사를 넘어설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을 길어올린다.
목차
서문 이재명 대통령에게 민주주의를 위임해버리지 않기
—‘광장 이후’의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
광장의 열기, 시장의 열기
— 내란 이후의 민주주의
두 개의 자유
—자유대학과 신자유주의 대학체제
퀴어한 연대의 불가능성
— ‘좋은 시민’으로 번역되지 않는 퀴어들
젠더의 새벽
— ‘남자구실’, 그리고 낡은 꿈의 불침번
거대 양당과 좌파 정치
— 냉소와 좌절을 넘어서
‘말벌’들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 아직 닫히지 않은 광장에서
책속에서
이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단지 기업주나 가진 자, 권력이 저지르는 악행이 아니다. 시험이라는 경쟁을 거쳐 선발된 정규직 노동자와, 그런 정규직이 되고 싶은 청년세대가 자신의 ‘자부심’을 확인받고자 하는 필수 절차가 되었다. 비정규직을 차별하지 않는다면, 힘든 시험을 통과해서 정규직이 된 의미가 사라진다.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마지노선이 일단 사수되면 모든 사회경제적 권한을 정치 권력에 ‘신탁’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돌아간 일상에서는 시장에서의 능력주의 경쟁이 창궐하고, 자산 시장에서 얻을 투자수익에 몰입한다.
대학은 ‘조만대장경’ 같은 밈도 만들어내고 ‘내로남불naeronambul’을 위키피디아에까지 등재하게 만든 ‘조국 사태’의 주요한 공간적 배경 자체였다. 진리와 학문을 수호한다는 교수가 입시 부정과 연구 부정에 앞장서거나 옹호했다. 김건희의 석박사 학위와 ‘Yuji’ 논문, 그리고 국민대·숙명여대 등의 그 후속 조치들도 참으로 부끄러운 ‘탈진실’의 행진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