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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고전漢詩
· ISBN : 9791199540705
· 쪽수 : 406쪽
· 출판일 : 2025-11-25
책 소개
목차
□ 머리말 □
* 김시습, 우연히 만나 필연이 되다
□ 읽기 도움 자료 □
* 이렇게 썼으니, 이렇게 읽으세요
Ⅰ. 김시습, 손을 잡다
매월당 김시습에 대하여 알아보자 / 김시습, 관동(강원)과 어떤 관계인가 / 김시습의 강원 한시, 시조로 다시 탄생하다
Ⅱ. 오세신동(五歲神童), 이십 전후에 고난이 오다
천재 소년 김시습, 본관(本貫)은 ‘강릉’이다 / 강릉에서 어머니 삼년상을 모시다 / 고난이 이십대(二十代) 전후를 강타하다
Ⅲ. 철원(김화) 사곡촌에 숨어들다
여덟 명의 은사(隱士)를 만나다 / 사곡촌에 충혼(忠魂)을 남기다 / 첫 유람은 관서 지방으로 떠나다
Ⅳ. 내금강, 그 절경에 빠지다
김화 누각을 지나, 단발령에 이르다 / 장안사·표훈사·정양사의 만천 구역을 가다 / 만폭동·보덕굴·세암의 만폭 구역을 가다 / 마하연·원적암·만회암·만경대의 백운대·비로봉 구역을 가다 / 백천동·송라암·망고대·국망봉의 명경대·망고대 구역을 가다 / 원통암·개심폭·진불암의 태상 구역을 가다 / 내금강에서 불심을 읊다 / 내금강에서 선경(仙境)을 보다 / 내금강에서 세상을 읽다 / 내금강을 뒤로하고, 단발령을 넘다
Ⅴ. 1차 관동 유람 길에 오르다
원주에 들어서면서 관동을 만나다 / 횡성을 거쳐 평창 여러 역(驛)을 지나다 / 전나무 숲에서 월정사를 만나다 / 오대산의 여러 봉우리와 사찰을 둘러보다 / 나옹도 만나고, 소옥(小屋)도 짓고 선담(禪談)도 나누다 /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접어들다 / 강릉의 아름다운 풍광(風光)을 노래하다 / 강릉을 떠나 다시 평창으로 향하다 / 영월에서 단종을 만난 후, 호서(湖西)로 떠나다
Ⅵ. 경주에 머물며, 관동 남동부를 유람하다
어머니 품에 안겨, 울진을 돌아 보다 / 우릉도를 바라본 후, 태백산·정선에 이르다 / 다시 한성으로 올라가 폭천정사에 머물다.
Ⅶ. 한양에 머물며, 「춘천십경」을 쓰다
춘천 10경, 시작(詩作) 배경을 살펴보자 / 춘천십경, 누구에게 듣고 썼을까 / 춘천십경, 땅(地) 배경 다섯 편을 읽어보자 / 춘천십경, 강(江) 배경 다섯 편을 감상해 보자 / 환속, 재혼, 그러나 다시 한성을 떠나다
Ⅷ. 2차 관동 유람, 훌훌 털고 떠나다
사십 대의 한성 생활은 꿈이었다 / 한성에서 출발하여, 사탄(史呑, 사내)에 들리다 / 모진 나루를 지나 우두벌에 이르다 / 소양정(昭陽亭)에 올라 소양강을 노래하다 / 춘천의 절경(絶景)을 찾아 회포를 풀다 / 춘천 산하를 한 폭의 그림처럼 그리다 / 청평사 세향원에 머물다 / 겨울을 나니, 마음은 떠나고 있었다 / 인제 오세암에 들리다 / 홍천을 지나 평창 독산원에 이르다 / 사패(詞牌)에 전사(塡詞)하며 강릉을 노래하다 / 관향 강릉, 볼거리를 둘러보고 사연도 만나다 / 동산관(東山館)에서 동해를 바라보다 / 낙진촌(樂眞村)에서 산관(散官)과 젊은이들을 만나다
Ⅸ. 양양 검달동, 불꽃이 차츰 스러지다
검달동에 은거하며 세월을 낚다 / 마지막 사랑의 불꽃, 짧은 심지를 불사르다 / 오십 중반에 들어 노년기 현상이 나타나다 / 제자 선행(善行)을 놓아주다 / 검달동의 외로움, 시와 술로 달래다 /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삶을 돌아보다 / 낙산사 법회(法會), 번민을 보내다 / 벼슬아치는 힐난(詰難)하고, 백성 삶을 걱정하다 / 양양 부사 유자한과 깊게 교유하다
Ⅹ. 한성·설악에 들려, 무량사에서 잠들다
양양 검달동을 떠나 중흥사에 나타나다 / 다시 양화진에서 마지막 석별을 나누다 / 법수치에 들려 주변을 정리하다 / 설악을 떠나 만수산 무량사에 도착하다 / 방랑을 끝내고 잠들다 / 왜 무량사에서 입적하였을까
Ⅺ. 김시습, 손을 놓다
그의 글에서 ‘사람됨’을 살펴보자 / 그의 글에서 진심을 찾아보자 / 김시습, 조선 선비들은 어떻게 보았는가 / 김시습의 안식처, 관동(關東)을 다시 생각한다.
□ 부록 □
* 부록 1 국역 매월당 전집 분석
* 부록 2 매월당 김시습 해적이
□ 참고문헌 □
저자소개
책속에서
강릉의 아름다운 풍광(風光)을 노래하다
김시습은 관동팔경 등을 둘러보며 2~3달을 그곳에 머물렀다. 그러나 과거 급제의 꿈을 이루지도 못하고 떠도는 입장에서 맹모같이 열정적으로 공부를 가르쳤던 어머님께서 잠들어 쉬시는 곳에 왔으니 죄송함도 넘쳤을 것이다. 성씨의 조상(祖上)인 명주 군왕에게도 가문의 영광을 다하지 못함에 가슴이 아팠을 게다. 어쩌면 명주군왕릉에 들려 눈물도 흘렸을 것이다.
강릉에서 첫 시(詩)는 문수당(文殊堂)에서 만나다
문수당은 통일신라 후반에 세워진 사찰이다. 문수사(文殊寺)로도 불렸으며 한산사(寒山寺)로 바뀌었다가 다시 한송사(寒松寺)로 불렸다. 고려시대에는 문인들이 이곳을 유람하고 시와 글을 남기기도 했다.
문수당(한송사)의 위치는 강릉시의 동쪽 남항진 바닷가로 두 보살상을 받치던 대좌(臺座)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중수(重修)가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나 19세기 이후 황량한 터만 남긴 채 폐사되었다.
문수당(한송사), 출처 : 디지털강릉문화대전
김시습은 ‘문수당’ 시에서 해변의 여유로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는 김시습이 아주 편안한 가운데 유람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김시습의 ‘문수당(文殊堂)’을 읽어보자. 현재 문수당(한송사)은 현재 제18전투비행단 대지 내에 편입되어 있어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b>문수당(文殊堂) 488
寺在東溟碧浪涯 (사재동명벽낭애) 절이 있는 동쪽 바다에 물가의 파도는 푸른데
野棠花裏鳥喈喈 (야당화리조개개) 들판의 해당화 꽃들 속에서 새들은 지저귀네.
白沙翠竹客相送 (백사취죽객상송) 흰 모래에 푸른 대나무 나그네 서로 전송하고
靑海黃茅風正喈 (청해황모풍정개) 푸른 바다 누런 띠풀 바람은 때마침 온화하네.
古佛有靈能善幻 (고불유령능선환) 오래된 부처 신령함 있어 능히 착하게 바뀌고
居僧無事坐淸齋 (거승무사좌청재) 거주하는 스님 일 없어 맑게 재계하고 앉았네.
禪宮亦似人寰變 (선궁역사인환변) 참선하는 절은 또한 사람 세계가 변한 것 같고
古砌草荒雲半埋 (고체초황운반매) 오래된 섬돌 거친 잡초를 구름이 반쯤 감추네.
<번안시조>
절 동쪽 바닷가에 푸르른 파도 일고
해당화꽃 사이에서 새들이 지저귀니
나그네 서로 전송하고 청해황모(靑海黃茅) 잠자네
부처님 신령하여 착하게 바뀌었고
스님은 일이 없어 재계하고 앉아 있네
참선은 사람 감추고 섬돌 풀은 구름이 감추네
재계(齋戒)는 제사에 참여하는 헌관(獻官)을 제외한 여러 사람이 해당 관서에서 1일간 유숙하면서 깨끗이 재계(齋戒)하는 의식이며 선궁(禪宮)은 사찰(寺刹)을 의미한다. 인환(人寰)은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를 뜻한다. 청해황모(靑海黃茅)에서 청해는 푸른 바다, 황모는 누런 띠풀이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즉 바다가 보이는 들판의 누런 띠풀을 의미한다. 가을이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김시습은 ‘거주하는 스님 할 일이 없어 맑게 재개하고 앉았네’라고 하였다. 상주하는 스님이 할 일이 없이 그저 몸을 깨끗이 하고 좌선하고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조금 쇠락한 사찰의 안타까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동여지도의 한송사와 백시정, 출처 : 대동여지도
백사정, 한송정을 노래하다
며칠 쉬다가 바닷가로 가보았다. 모래벌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아무래도 강릉은 동해를 바라보며 백사장을 걷는 것이 멋진 풍경 중의 하나이다. 김시습도 빠질 수 없어 바닷가로 나간다. 그리고 백사정(白沙汀)을 노래한다.
‘백사정’ 시를 이해하려면 해안지형을 알아야 한다. 다음 글을 참조하자.
해안지형으로는 곳(串, 바다로 돌출된 육지의 끝부분)과 양(梁, 들보, 다리, 둑, 제방 등을 뜻하는 한자)이라고 붙은 지명이 많다. 이외에 지형적 특색을 설명하는 백사(白沙)가 있다. 모래밭에 있는 해안 지방은 백사(白沙), 백사장(白沙場), 또는 백사정(白沙汀) 등으로 표현한다. 강릉에서는 백사정이라고 한다. 정(汀)은 곶과 같은 뜻을 갖는다. 동해안에는 양(梁)이 발달하지 않았다.
강릉 백사정은 대동여지도를 보면 오늘날 강문교(江門橋)가 있는 바로 위에 표시되어 있다. 경포호에서 나오는 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 강문교인데 여기서 호텔 현대 경포대를 왼쪽으로 올라가면 이곳이 경포해수욕장이다, 대동여지도에서는 이곳을 백사정이라 하였다.
김시습의 ‘백사정(白沙汀)’을 읽어보자. 하얀 백사장을 걸으며 드넓은 동해를 보면 더 넓은 세상에서 뜻을 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벼슬이란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목숨이 날아가기도 하는 것을 생각하며 여유로운 유람 생활에 만족했을 수도 있다. 삶은 양날의 검이다.
흰 모래 깔린 바닷가〔白沙汀〕 488
依依煙樹似雲屯 (의의연수사운둔) 한들거리는 안개 낀 나무에 구름이 진을 친 것 같고
沙軟風輕十里原 (사연경풍십리원) 십 리의 언덕에 가벼운 바람에 모래는 부드럽구나.
島影正同雲影杳 (도영정동운영묘) 섬 그림자 때마침 함께하며 구름 그림자 아득하고
松濤長伴海濤喧 (송도장반해도훤) 소나무 물결 짝하여 나가니 바다의 파도 시끄럽네.
煙開鯨口波聲壯 (연개선구파성장) 고래 입에서 안개를 뿜어대니 물결 소리 웅장하고
日射鼇頭曉色暾 (일사오두효색돈) 햇살이 비치는 거북이 머리에는 새벽빛이 비치네.
汀畔白鷗閑似我 (정반백구한사아) 물가 경계의 흰 갈매기는 나를 닮은 듯 한가하고
忘機相對弄春暄 (망기상대농춘훤) 서로 마주해 속새를 잊고서 따스한 봄을 희롱하네.
<번안시조>
안개 낀 나무 곁에 구름이 진(屯)을 치고
저 멀리 모래바람 부드럽게 불어오니
아득한 섬 그림자에 파도 소리 드세다
고래는 안개 뿜어 잔물결 잠재우고
햇살은 거북 머리에 새벽빛 비추는데
한가한 갈매기들은 따뜻한 봄 즐긴다
의의(依依)는 고향을 떠날 때와 조금도 다름없다는 뜻으로 연약한 나뭇가지가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양이다. 아쉬워하고 사모하고 그러면서도 뭔가 섭섭해하는 모양을 뜻한다. 아쉽다는 이야기이다. 연수(煙樹)는 연기나 안개구름 따위에 둘러싸여 뿌옇고 멀리 보이는 나무를 의미하고 오두(鼇頭)는 큰 바다 자라의 머리이다. 망기(忘機)는 속의 일이나 욕심을 잊음을 뜻한다.
김시습은 모래바람, 파도 소리, 고래 안개, 거북 머리, 흰 갈매기 등 백사정의 정겨운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오늘날에는 강릉 해변의 백사장의 모래가 깎이며 해안침식이 발생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보도(2021.05.05. 강원일보 등 보도) 에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원인이 불명하다는 데 있다. 철저한 원인 분석과 그에 따른 올바른 처방으로 원래 모습대로 회복되기를 바란다.
한송정(寒松亭) 노래를 살펴보자.
한송정은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의 차(茶) 유적지가 있는 정자(亭子)이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한송정을 ‘동쪽으로 큰 바다에 임했고 소나무가 울창하다. 정자 곁에 차샘(茶泉), 돌아궁이(石竈), 돌절구(石臼)가 있는데 곧 술랑선인(述郞仙人)들이 놀던 곳이다’라고 기록하였다. 한송정이 언제 지어졌는지 또 언제 없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신라 진흥왕 때 화랑들이 한송정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고 그 이후 여러 역사적 인물이 한송정을 방문한 기록과 한시가 전한다. ‘한송정(寒松亭)’이다. 현재는 공군 제18전투비행단 안에 있어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
한송정에서〔寒松亭〕 489
海風吹斷浪滔天 (해풍취단낭도천) 바닷바람이 불다 끊기며 함부로 하늘 높이 퍼지고
松作雲和意外絃 (송작운화의외현) 소나무에 이른 구름 화답하며 뜻밖의 현악기 뜯네.
敗砌草埋狐兔過 (패체초매호토과) 무너진 섬돌은 잡초에 묻혀 여우와 토끼가 지나고
野棠花落鷓鴣眠 (야당화락자고면) 들의 팥배나무 꽃이 떨어지니 자고새가 잠이 드네.
神仙舊迹桑田變 (신선구적상전변) 신선들의 오래된 자취는 뽕나무밭으로 변하였고
塵世浮生甲子遷 (진세부생갑자천) 티끌 많은 세상 덧없는 인생 속에 갑자만 옮겨가네.
獨上高亭回首望 (독상고정회수망) 높은 정자에 혼자서 올라가 머리를 돌려 바라보니
蓬萊島在五雲邊 (봉래도재우운변) 신선이 사는 섬이 오색구름 가장자리에 있구나.
<번안시조>
바닷바람 불다 끊겨 하늘 높이 흩어지고
흰 구름 화답하며 현악기를 뜯고 있는데
섬돌에 잡초 우거지고 자고새가 잠잔다
신선들 간데없고 뽕 밭은 한창인데
덧없는 인생 속에 갑자(甲子)만 옮겨가네
누(樓)에서 봉래도(蓬萊島) 보니 구름 속에 잠겼다
도천(滔天)은 높은 하늘에 널리 퍼짐을 뜻하니 세력이 엄청나게 크게 퍼진다는 뜻이다. 봉래도(蓬萊島)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신선이 산다는 곳이다.
김시습이 한송정을 방문했을 때는 정자는 이미 많이 쇠락했었다. 다 쓰러져 가는 한송정. 글의 흐름으로 보면 도교적 감각으로 글을 썼다. 신선을 비롯하여 자연의 섭리가 시 한 수에 가득하다. ‘덧없는 인생 속에 갑자만 옮겨가네’하며 이룬 것은 없는데 나이만 먹어간다고 자기반성을 하고 있다.



















